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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10승 투수!!!

나름 야구광인 나는 인생의 많은 부분들을 야구에 비유하며 야구하듯(?) 살아왔다. 무대에 올라갈 때면 늘 마운드를 오르는 투수의 심정으로 마음을 다 잡곤 했었다. 때론 역투하는 선발이 되기도, 때로는 잠깐 흐름을 바꿔주는 중간 계투가 되기도, 때로는 행사의 마지막에 등장하여 철벽 마무리를 자랑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말 그대로 펄펄 날아 노히트노런 내지는 퍼펙트를 기록하는 날도 있지만, 어떤 날은 정말로 처참히 깨지기도 한다.

성실한 10승 투수가 필요하다
언젠가 해설가 하일성 씨가 10승 투수가 되려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꾸준히 마운드에 올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컨디션이 좋은 날도 나쁜 날도 묵묵히 공을 뿌려야 하고, 팀이 지든 이기든 또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
20승 이상을 올리는 슈퍼투수가 아닌 대부분의 10승 투수는 대략 10승 12패 내지는 10승 9패 정도의 그리 화려하지 않은 고만고만한 성적을 기록한다. 이기는 것과 지는 비율이 엇비슷하지만 팀에서 이들이 너무나 중요한 이유는 성실하게 많은 경기들에 출전해 주었다는 점이고 그래서 결과적으로도 한 팀에서 10승 투수는 두세 명에 불과하다. 20승을 올리던 전성기의 화려함은 빛을 잃었으되 꾸준히 마운드에 올라 10승 이상은 해 주는 투수가 고마운 건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타자가 3할을 치는 것보다도 어렵다.
한국의 음악사역계에 눈에 띄는 루키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걱정을 해댔는데, 생각해보니 성실한 10승 투수도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음반이나 공연의 흥행과 무관하게 꾸준히 녹음실과 무대를 오르는 이들이 적다면 경기에 이기기는 힘들다. 많은 이들이 다음 시즌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라 비관하고, 등판만 하면 실투에 홈런 세례라 차라리 벤치를 지키겠다하고, 긴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대고 있지만, 나는 그들이 하루빨리 회복하여 마운드에 복귀하길 기대한다.

초심을 잃지 않는 노련한 플레이
이 글을 쓰는 한 해의 끝자락에 새 해를 겨냥하며, 지난 나의 노래들과 글들을 생각해 본다. 20승을 올린 눈부신 시즌도, 10승은 해 준 시즌도, 부상으로 등판 한번 못한 시즌도, 슬럼프로 내내 고전하던 시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또 당연하게도 다음 시즌을 기약하며 우직하게 마운드에 오르려 한다. 여러분의 지난 한 해는 어떠하셨는지…. 또 어떤 마음으로 새 해를 맞이하고들 계신지….
일본인 메이저리거 이치로 스즈키는 말한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초심으로 플레이를 하면 안 됩니다.” 나는 겸손하지만 노련한 10승 투수가 되어 벤치에서 몸을 풀고, 마운드에 올라 숨을 고른다. 신중히 포수와 사인을 나누고, 홈런타자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서서히 와인드업, 온 힘을 다해 볼을 던진다. 공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 나는 진정 자유로워진다. 배트는 허공을 가르고 주심의 손이 번쩍 들려지자, 터질 듯 함성 소리가 가까워 온다. 나는 아랑곳 않고 침착히 2구를 준비한다.

민호기|소망의 바다 사역과 함께 찬미선교단 리더로, 대신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로, 오늘도 세상과 소통하는 음악을 위해 밤새워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