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충렬
출연: 최원균, 이삼순, 최노인의 소
40년 동안 주인과 동고동락해온 소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 <워낭소리>가 매주 박스오피스를 거슬러 오르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독립영화 최고의 흥행작, <원스>의 기록을 이미 멀찌감치 뛰어넘었고, 조심스레 100만을 점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이쯤 되면 왜 관객들이 블록버스터 대신 <워낭소리>에 열광하는지 궁금해진다.
우선, 농촌을 배경으로 한 극장용 다큐라는 점이 독특하다. 농촌 생활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경북 봉화의 풍경은 확실히 낯설게 느껴진다. 소시장의 활기도, 아담한 동네 병원도, 벼 베는 기계의 소음도 모두 새로운 경험이다.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간간이 보아오긴 했지만 다큐멘터리의 특성상 그보다 훨씬 사실적인 일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런데 그러한 일상은 먼저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동시대에 상상하기 어려운 아날로그적 생활 방식이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진 이들에게는 거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과 거북함이야말로 관객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제대로 이끌어내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농사일을 하며 하루하루 고된 삶을 살아가는 할아버지 부부와 소의 모습은 육체노동을 기피하는 젊은이들에게 강한 부담감과 애수를 느끼게 한다. 할아버지의 바싹 마른 다리와 소의 등가죽이 스크린에 비칠 때마다 탄식이 절로 흘러나오고 오랜 세월 가족처럼 지내온 그들의 영원한 이별 앞에서는 눈물을 참을 수 없다. 예정된 결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극영화보다 더 큰 슬픔과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한 편으로 이 낯선 공간은 엘리스의 이상한 나라처럼 매혹적이다. HD 카메라로 담아낸 시골의 전경은 더할 나위 없이 청명하고, 석양에 비친 할아버지와 소의 실루엣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치열한 경쟁과 시간 싸움에 병들어가고 있는 도심의 현대인들에게 느릿느릿 걸음을 떼는 소의 이미지는 딴 세상에 온 듯 잠시나마 평온함을 선사한다. 시골의 삶을 선택할 용기는 없다 해도 자연이 주는 정서적 풍요로움에 잠시나마 매료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워낭소리>는 전체적으로 정적이면서도 잔재미 또한 쏠쏠한 영화다. 내레이터 역할을 하는 할머니의 잔소리와 혼잣말, 표정이 연신 웃음을 자아낸다. 자신보다 소를 위하는 남편을 향한 시린 눈초리는 그 어느 배우의 표정보다 더 리얼하다. 할머니의 끊임없는 푸념 속에는 본의 아니게 삼각관계가 되어 버린 당신과 할아버지, 그리고 소 사이의 애증도 잘 녹아있지만 먼 길을 고달피 달려온 노인의 지혜와 통찰도 번뜩인다. 한적한 시골집에서 매일 같이 할머니의 총기를 깨운 것은 이웃 사람들과의 대화도, 오래된 라디오도 아니요, 하루도 빠짐 없이 할아버지를 싣고 일하러 나가는 소의 워낭소리였을 것이다.
‘파란’을 넘어 ‘기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워낭소리>의 성공은 침체의 나락에 빠진 한국 영화계에 경종을 울리는 하나의 사건이라 할 만하다. 멋진 배우도 유명한 감독도 스펙터클도 없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을 웃기고 울릴 수 있는지 보여준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소는 영물이고 버릴 것이 없다더니 옛 말이 틀린 게 없다. 참말로 고맙다. 고맙다.
윤성은|서울기독교영화제 프로그래머. 한양대학교 영화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동아방송예술대 등에서 강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