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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나눔, 새로운 희망 l 편집장의 글 : 싸구려 잡지를 만든다


홀로 영화를 보는 것의 매력을 처음 알게 해 준 극장이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지 벌써 5년이 다 되어가는 종로의 코아아트홀. 요즘 멀티플렉스 극장들에 비하면 스크린이 크지도, 좌석이 편하지도, 화질이 썩 좋지도 않았지만, 나와 같이 90년대 중후반, 그곳을 드나들며 예술 영화를 접했던 ‘코아아트홀 세대’는 안다. 독특한 취향의 영화와 극장 특유의 공간적 정서가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 대학 시절, 학교와 교회, 연애의 틀에만 얌전히 있었던 내가  잠시나마 홀로 숨을 쉴 수 있었던 곳이었다. 노랑머리의 임청하와 ‘California Dreaming’이 물처럼 흐르는 <중경삼림>을 비롯해 <블루>, <레드>, <일포스티노>,<나쁜 피>, <화양연화> 등의 영화가 모두 코아아트홀의 작은 어두움 속에서 만난 보물이었다. 내 머리와 가슴을 해체시키고 저 밑바닥에 있는 것을 건드리고 마는 영화가 그렇게 고팠던 것 같다. 젊은 날, 알 수 없는 흔들림으로 곧잘 허망해지던 나를 말없이 구원해주기도 했던 극장. 그곳은 사라졌지만,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문화적 감성의 한 페이지로 여전히 살아있다.

문화란, 그런 것 아닐까. 밥을 먹어도 해결되지 않는 정신적 빈곤을 채우고, 우리의 가슴을 더욱 열정적으로 뛰게 하며,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수입은 줄어들어도 문화로 소비하는
지출은 줄이지 않겠다는 요즘 젊은이들의 설문결과도 비슷한 맥락이라 짐작된다. 이러한 문화는 이제 어느 한쪽에 집중된 소비와 향유를 벗어나 다양한 지역과 계층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나눔’의 형태로 거듭나야 할 때다. 단순히 돈과 물질을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달란트를 기부하며, 문화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문화나눔’을 통해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다.

6년 여 동안 무가지로 만들어오던 <오늘>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가격이 붙었다. (잘 나가던 잡지들도 폐간된다는 요즘 같은 때에 겁도 없다). 모든 잡지가 그렇듯, 건강을
기부하며(?) 온 에너지를 쏟아 만든 것에 비해 저렴한 가격이라고 보고 싶다. 요즘 한창 인기를 모으고 있는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의 <장기하와 얼굴들> 밴드는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위하여’ 싱글 음반을 손수 만들었다는데, <오늘>은 어떻게 ‘지속가능한 기독교문화 나눔’을 이루어 갈 수 있을까. 문화향유 계층이 2~30대 여성인 동시에, 교회 구성원의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은 여성 목사로서, 기독교문화 잡지를 만들어가는 내 삶의 자 리를 늘 돌아보게 한다. 교회와 세상, 기독교와 문화라는 지대를 동시에 살아가며 고민 속에 갈등하는 이들에게, 내 삶에서 발견한 나다운 시선과 솔직한 감성으로 다가가야 하지 않을까. 그 나눔 속에서 함께 찐한 수다를 떨 수 있는 편안한 싸구려잡지 <오늘>이 되면 좋겠다. 그렇게 기꺼이 같이 흔들려주고, 목마름을 함께 성토하며, 스스로 길을 찾아갈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는 친구, 부디 당신에게 <오늘>이 그러하기를. 나에게 코아아트홀이 그랬던 것처럼.

편집장 노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