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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9 03-04 문화나눔, 새로운 희망

문화나눔, 새로운 희망 9 l 가난하다고 해서 꿈이 없겠는가


가난하다고 해서 꿈이 없겠는가
나누는 학교

“우리는 한국 봉천동에 살고 있어. 분리장벽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 동네 철조망이 생각어. 가난한 아이들은 넘어오지 말라고 옆 마을에서 친 거야. 우리가 제일 힘든 줄 알았는데, 더 크고 무서운 장벽이 있는 걸 알았어. 도울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서울 봉천동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이들이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자이투나 나눔문화 학교’ 친구들을 향한 마음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손수 수확한 고구마를 직접 팔아서 돕는 ‘나눔 고구마 프로젝트’! 바로 ‘나누는 학교’를 통해 배운 사랑의 실천이다.



손쉬운 자선보다는 창조적 나눔을

매주 토요일 오후, 나누는 학교 50여 명의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인다. '친구교사'라 불리는 자원봉사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 오늘은 무엇을 보고 느끼며 경험하게 될까. 아이들의 눈망울은 들뜬 기대로 가득하다. 나누는 학교는 ‘나눔문화’에서 열고 있는 빈민지역 어린이 주말체험학교이다. 다양한 문화체험과 좋은 독서를 통해 ‘생각의 힘’을 기르고, 손수짓는 농사활동으로 ‘생명과 노동의 힘’을 깨달으며, 성적과 지식보다 더 소중한 사람됨의 가치를 통해 ‘나눔과 사랑의 힘’을 삶으로 배워간다.
빈부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는 이 시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머나먼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대물림되는 가난으로 인해, 이미 출발선이 뒤처진 아이들은 척박한 삶의 환경을 떨쳐 내기가 죽도록 힘겹다. 모두가 못 먹고 못 살던 시절, 가난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오히려 따뜻함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소득 2만 불 시대에 가난한 아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거대하기 그지 없다. 나누는 학교는 바로 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되, 거기서부터 다시 ‘꿈’을 꾸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들에게 ‘나눔’을 이뤄가는 희망의 씨앗을 심어주고 싶었다. 단순히 손쉽게 물질을 지원하는 자선이 아닌, 아이들의 삶 전체를 돌보고 ‘사람다움’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창조적 나눔을 선택한 것이다.

“봉천동에 산동네가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재개발 임대아파트가 들어섰는데, 2003년 처음으로 그곳 아이들과 함께 시작하게 되었어요.” 나누는 학교의 이미경 선생님은 친구교사로 자원봉사를 하다가 아예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다고.“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이 어느새 중학생, 고등학생으로 자랐어요. 그러면서 중학반, 고등반이 자연스럽게 생겼죠.”
봄과 가을, 각각 16주씩 진행되는 나누는 학교가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한 작은 벤처회사의 순수하고도 아낌없는 지원 덕택.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매년 빠짐없이 후원금을 보내고 있는 휴맥스의 변대규 대표는 나누는 학교의 든든한 아버지이다. 그의 나눔이 있기에 주말을 반납하며 아이들을 돌보는 자원봉사 교사들의 나눔이 있었고, 팔레스타인 친구들을 향한 아이들의 나눔이 있었다. 나눔은 더 숭고한 나눔을 낳는다는 믿음은 그저 꿈이 아니었다.


커리큘럼은 ‘삶’의 아름다움
“이 아이들에게는 문화가 사치였죠.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문화적 감수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가난해도 꿈을 가질 수 있다, 가난해도 정신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나누는 학교를 섬기고 있는 이준범 선생님의 말이다.“ 중학반의 한 아이가 그러더군요. 예전에 산동네 살던 때가 더 행복했던 것 같다고요. 구멍가게 할머니네 식구들이랑 뒷산에서 밤새 놀고, 집 앞마당에서 지는 해를 오래도록 바라봤던 그 때가 지금보다 더 좋았다구요.” 재개발 열풍이 불면서 깨끗한 임대아파트가 들어섰지만, 좁은 골목길의 따뜻한 정과 놀이터,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목소리는 사라져갔다. 오히려 일반아파트와 임대아파트 사이의 보이지 않는 장벽만 더 발견할 뿐이다. 같은 땅에 살지만, 같아질 수 없는 낙인은 우리 시대 또 다른 차별과 슬픔을 생산한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른 채 소외와 단절이 반복되는 현실 속의 아이들은 이제 나누는 학교를 통해 밥을 먹는 법, 양말을 빨아서 너는 법부터 대화하는 법, 어른에게 예절을 갖추는 법등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자신과 타인, 자연과 문화, 그리고 세상을 향해 새로운 눈을 떠간다.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아이들, 이미경 선생님은 그들의 변화가 늘 고맙다.

“틀릴까봐 글 쓰는 것에 공포를 느끼던 아이가 있었는데, 끊
임없는 신뢰와 칭찬으로 돌보았더니 어느새 시인이 다 되어 있더라구요. 참 뿌듯했죠.” 늘‘ 난 바보야.’라고 써왔던 아이의 글이‘ 난 바보가 아닌 것 같애.’로 바뀌어 있는 걸 발견한 순간,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성적을 올리기 위한 지식교육이 아님을 더욱 절감했다고. 그래서 나누는 학교의 커리큘럼은 꿈과 사랑, 나눔, 그리고 생명과 평화이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음악, 미술, 공연 등을 접하게 하고 가르쳐 주는 차원의 문화교육, 혹은 문화나눔도 소중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본질적인 차원의 문화적 소양을 일깨우고, 아름다운 존재로 살아가도록 삶의 밑바탕부터 어루만지는 나누는 학교의 커리큘럼이야말로 진정한 문화나눔 아닐까.
“나눔 고구마 사세요! 우리가 키운 유기농 고구마에요!” 지난겨울, 아이들은 서울 홍대 앞에서 자신들이 직접 쓴 피켓을 들고 따뜻한 군고구마를 열심히 팔았다. 전쟁으로 힘들어 하는 친구들을 돕겠다고 나선 이 아이들은 이제 자신의 가난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루 먹고 사는 것이 힘든 아이들도 ‘나눔저금통’을 채우며 즐거워한다. 팔레스타인 친구들에게 공책과 필기도구를 사주고 싶어서란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아이들의 나눔은 이들 스스로에게도, 저 멀리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이 따뜻한 현장을 목도하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다시 살아갈만한 세상, 그 희망을 그리게 한다. 팔레스타인 친구를 향한 아이의 편지 마지막을 읽다가 참
았던 부끄러움에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폭격에 죽지 말고, 추위에 아프지 말고, 굶어 죽지 말고, 우리 꼭 만나자!”



노영신
사진
정미희

‘나눔문화’란
지난 2000년 시작된 나눔문화는 임박한 생태재앙, 심화되는 양극화, 전쟁과 기아질병, 영성의 상실이라는 네 가지 위기를 직시하며 ‘생명. 나눔. 평화’의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꾸준한 사회적 실천에 힘써 온 비영리 사회운동 단체이다. 나눔문화포럼, 글로벌평화나눔, 평화나눔아카데미, 대학생나눔문화, 나누는 학교 등의 일을 일구어가고 있으며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자이투나 나눔문화학교’를 만들고, 현지인을 교장으로 세워 운영하고 있다.

서울시 종로구 신문로2가 1-103 진학기획빌딩 3층 02-734-1977
www.nanu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