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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출발점에 이르는 순례의 여정

걸어서 길이 되는 곳, 산티아고 | 아더 폴 보어스

구약성서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한 인간을 선택한다. 그가 바로 아브라함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린 인류 구원 여정의 첫 명령은 바로 순례였다“. 내가 있는 곳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어찌 보면 밑도 끝도 없는 떠남의 명령에 아브라함은 용기 있게 순종하였고 그는 순례의 길을 떠남으로 비로소 구원받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그렇게 순례의 여정은 구원의 여정이 되었고, 오늘도 여전히 그러하다. <걸어서 길이 되는 곳, 산티아고>, 이 책은 한 그리스도인(아더 폴 보어스)이 보낸 31일간의‘ 카미노 산티아고’(스페인 생장 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길)라는 순례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건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속에서 깨달은 한 그리스도인 순례자의 성찰과 깊은 묵상을 담담한 필체로 담아내고 있다.
해마다 세계 각지에서 온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800킬로미터나 되는‘ 카미노
산티아고’를 순례한다고 한다. 무거운 배낭,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낯선 이들과의 불편한 잠자리를 감수하며, 물집투성이 발을 끌고 뜨거운 태양 아래 매일 40킬로가 넘는 길을 걷고 또 걷는 이유는 단순하다. 800킬로 떨어진 산티아고에 있는 산티아고 교회에 가기 위해서. 그러나 무모해보이기까지 한 800킬로미터의 긴 노정을 통해 그들이 도달하고자 한 곳은 단지 한 교회당이 아니었으리라. 그 순례의 목적은 도리어 내면의 여정이자 신의 임재를 느끼며 그와 동행하는 법을 배우는 영혼의 순례가 된다. 때론 육체적 한계 상황 속에서 주저앉고 싶고, 때론 받아들이기 힘든 내면의 진실과 마주치며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순례의 여정은 결국 자신과 화해하며 그 속에 드리운 신의 섭리 속에서 스스로의 삶을 경축하는 일생일대의 축복의 시간이 된다. 누구보다 삶의 출발점을 찾지 못했던 이들이야말로 순례의 여정을 마친 후 비로소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되리라. T.S. 엘리엇의 보석 같은 시구처럼.

탐험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 탐험의 끝에 도달하면 / 우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올 것이며, / 그때서야 출발점을 바로 알 게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절망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니, 삶을 어디서 출발해야 할 지 도무지 알지 못하는 모든 이들에게 <걸어서 길이 되는 곳 산티아고>는 어쩌면 그 길이 어떤 곳인지 보여줄지 모른다. 그러기에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동하여, 간절해진다면 용기를 내어 그 순례의 길로 과감히 떠나라고 말하고 싶다. 감히 신이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글 백광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