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사랑은 피난처가 아니다|사과





사랑은 피난처가 아니다
영화 <사과> 속 현정의 이야기


해외 영화제 수상과 시사회의 좋은 평으로 기대를 모았던 ‘창고영화(영화가 만들어진 후 개봉이 늦어진 화)’ <사과>가 개봉되었을 때, 관객들의 평은 두 갈래였다. 너무 일상적인 이야기여서 지루했다거나, 우리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공감이 간다는 것이었다. 갈린 의견은 주인공 현정(문소리)의 태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너무 따분하다거나 정말 내 모습 같다거나.



당신은 나의 피난처
주인공 현정은 명예 퇴직한 아버지와 집안 경제를 담당하는 어머니, 그리고 천방
지축 백수 여동생을 둔 장녀다. 민석(이선균)과 7년 연애를 했던 그녀는 가족을 뒤로 하고 남자친구와의 여행을 선택할 정도로 남자친구를 사랑했다. 그런데 바로 이 여행에서 이별을 통보받는다. 이유는 고작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아서’였다. 다른 여자가 생겼다거나, 네가 싫거나 지겨워졌다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없어지는 것 같다니….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격인 이 말은 현정에게 큰 충격이었다.
장녀들의 어깨는 무겁다. 부모님을 도와 가정을 돌보아야 하고, 동생들에겐 모범이 되어야 한다. 대학 진학과 직장의 입사, 결혼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가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개인의 삶도 버거울 텐데, 가족의 무게까지 더하니 장녀는 지칠 수밖에 없다. 현정도 그랬다. 어머니는 집안의 대소사를 그녀와 상의한다. 아버지와 동생에 대한 일, 그리고 경제 문제까지. 가족은 그녀에게 벗어던질 수 없는 짐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누구에서 위로를 받고, 마음을 놓을 수 있을까? 바로 민석이었다. 적어도 그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장녀가 아니었다. 천진난만함을 드러내고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일종의 피난처였다. 그런데 언제까지나 자신의 소유일 것 같던 피난처가 떠나다니!

홀로여야 했기에, 홀로 설 수 없는
밀려드는 슬픔과 괴로움을 충분히 표출하기에 그녀의 현실은
버겁다. 허나 표현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음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은 몸과 달라서 더욱 여리고 상처받기 쉬우며, 잘 아물지도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아문 것처럼 보이나, 틈만 있으면 떠올라서 우리를 힘들게 한다. 그래서 반드시 치유가 필요하다.
마음의 상처를 극복할 시간이 필요한 현정에게 상훈(김태우)이 나타난다. 현정이 이 건물에서 제일 예쁘다며 꽃다발을 주는 사람. 현정에게는 선택의 순간이 왔다. 상처를 이겨낼 것인가, 아니면 상처로부터 도망갈 것 인가. 상처를 홀로 이겨내기에 삶이 무거웠다. 결국 상처의 보듬음과 치유보다는 외면과 도망을 결정한다. 그리고 확실한 피난처를 얻기 위해 상훈과 결혼한다.
결혼이 너무 성급했던 것일까? 상훈과 그녀의 공통점을 찾기란 도시에서 별을 보는 것만큼 힘들다. 집안 환경, 종교, 대화방식, 관심주제, 심지어 취미까지도 다르다. 현정은 다름을 극복하기 위해 남편을 자신의 가정 환경으로 끌어들이는데, 이는 장녀들이 결혼 후에도 원 가족을 돌보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오히려 다툼과 갈등을 증폭시키기 마련이다. 그러는 와중에 상훈은 지방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 결혼의 목적이었던 ‘피난처’가 떠나려고 하자, 현정은 직업과 경력을 포기하고 그를 따라 내려간다. 그러나 곧 남편의 지방행이 발령이 아닌 자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또 다시 피난처로부터 상처를 받는다.
다시 마음의 상처를 극복할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런데 영화는 그녀 앞에 민석을 등장시킨다. 반복되는 그녀의 선택. 돌보지 않는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는 것은 왜 모르는 것일까? 서울로 올라와서 아이를 낳고 다시 직장을 잡게 되면서 현정과 민석의 만남은 잦아진다. 예전의 민석은 원 가족으로부터의 피난처였지만, 이제는 남편으로부터의 피난처이다. 그러나 그녀는 차츰 깨닫게 된다. 그 누구도 진정한 피난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민석에게도, 상훈에게도 이별을 통보하면서 사과한다.


진정한 사랑은 상처를 직면하게 하는 것
우리는 사랑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많은 심리
학자들은 사람들이 사랑을 통해 자신의 상처와 부족함, 연약함이 덮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기대를 품고 사랑과 결혼을 하지만, 그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못 미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은 자신의 상처를 덧나게 하는 사람임을 깨닫게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상대방 역시 해결되지 못한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처에서 도망가거나, 상대방이 막연히 해결해 줄 것을 기대한다면 결코 문제는 해결되지 못한다. 서로의 상처들이 얽혀 곪고 썩게 될지도 모르는 일. 상처는 직면하고 들여다봐야 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변화와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방법들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근본적인 치유의 힘은 사람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가장 빈번한 것은 바로 치유였고, 그에게 치유 받은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 예수님이 찾아와주기를 막연히 기다린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요청이나 믿음의 결단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천년 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가능한 방법이 아닐까?
이런 면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긴 여운을 남긴다. 현정의 요청으로 이혼서류를 준비해서 온 상훈에게 현정은 다시 한 번 사과의 손길을 내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결말은 그들이 이혼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그 모든 여정을 마친 현정의 사과는 자신의 상처와 상훈을 이해하고 치유하기 위한 홀로서기의 시작이 될 것이다.


누다심|장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치료공동체에 대한 비전과 사람에 대한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이후 심리학 공부를 시작해, 대학원에서는 임상 및 상담심리학을 전공하였다. 현재‘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심리학’이라는 필명으로 글쓰기를 하면서, 치료공동체에 대한 준비를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저서로는 <누다심의 심리학 블로그>,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