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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아트 뮤지엄 ㅣ 영성적 예술, 예술적 영성

에디터 노영신


 

양평에서 횡성으로 가는 길목 어디쯤일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이곳에 뮤지엄이 있다고?’하는 의구심이 물씬 드는 시골길을 지나고 나니, 산 중턱에 널찍이 자리한 거대한 조각들이 눈에 잡힌다. 한번 쭉 둘러만 보아도 탄성이 나오는 넓은 면적, 그리고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작품들은 과연, 개인 미술관으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임을 실감케 한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차가운 겨울 기운이 맑은 산 속 공기와 어우러져 몸과 정신을 깨우는 오후, 정관모 관장(성신여대 명예교수, 영암교회 은퇴장로)을 통해 C 아트 뮤지엄의 세계를 만나 보았다.


C 아트 뮤지엄이 자리하는 지점

‘Contemporary(이 시대에) Creativity(창조적이고) Christianity(기독교적인 정신으로) Chung(정관모가 설립)’ 의 뜻을 담고 있는 C 아트 뮤지엄은 지난 2005년, 양평의 양동면에 첫 문을 열었다. 2000년대가 지나면서 보다 더 많은 대중들이 현대미술을 친근하게 접하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게 된 정관모 관장은 이제 새로운 미술활동과 운동이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는 이 기회에 제주도의 신천지미술관을 정리하면서 지금껏 가지고 있던 미술품과 기독교적인 현대 미술을 함께 모아 그동안 마음에 담아 두었던 그만의 새로운 뮤지엄을 탄생시켰다. 자연과 예술을 버무려 영성적 삶으로 인도하는, 가장 큰 개인 미술관이자, 복합예술문화공간으로서의 꿈을 이룬 것이다. 일반 관객들이 찾아오기에도 부담스럽지 않도록 기독교의 색채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 누구나 올라와 자연과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예술동산으로서의 면모를 다져왔다. “그러나 일반 관객들이 이곳을 돌아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종교적 정취에 자연스레 젖게 되면서 거부감을 갖기 보다는 오히려 엄숙하게 작품을 관람하는 것 같습니다. 종교성과 궁극을 향한 갈망이 현대인들에게 있음을 깨닫게 되죠.”정관모 관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C 아트 뮤지엄의 정체성과 존재의 이유를 발견한다. 비기독교인들에게는 기독교 문화를 소개하고, 종교적 영성을 느끼게 해주는 공간으로서, 기독교인들에게는 자신의 영성을 돌아보고 진정한 신앙고백의 확인을 일으키는 공간으로서 다가가고 싶다고.


관람과 묵상 사이 

야외 조각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은 ‘침묵의 길’로 이루어져 있다. 산책을 하며 자신의 삶과 시간을 잠시나마 돌아 볼 수 있는 명상을 허락한다. 말씀 한 구절씩 새겨져 있는 석상을 따라 조금씩 십자가의 길로 다가간다. 산 중턱에 이르렀을까. 탁 트인 광활한 땅 위, 갖가지 모양의 아름다운 ‘십자가의 숲 광장’ 사이로 거대한 예수상 ‘JESUS CHRIST'이 영혼을 단숨에 압도한다. 얼굴상의 높이만 무려 15m, 작품 전체 높이는 22.56m인 이 예수상의 표정은 그 크기만큼이나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예수님 얼굴 표정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었죠. 고통을 이기신 후 ‘다 이루었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한다’ 고 하신 후 표정이 어떠했을까 상상해보았어요.” 모든 아픔과 두려움을 견뎌 내었기에 가장 평온할 수 있는 순간, 그는 그 ‘무표정의 평온함’을 선택했다. 예수상에 한걸음씩 다가서면서 한 눈에 들어왔던 형상이 조금씩 시야를 넘어선다. 그를 가까이할수록 눈과, 생각과, 마음에 갇혀 두었던 예수가 자유로워져 마침내 저 하늘을 가득 메운다. 고개를 치켜들어도 보이는 건 한쪽 턱의 끝자락 뿐. 두 눈으로는 다 채울 수 없는 그 분의 광대하심에 다시 겸손히 작아지는 순간이다. 작품을 받치고 있는 기둥 사이에는 마치 카타콤을 연상시키는 기도실이 마련되어 있어 관람으로만 그치지 않는 묵상의 길을 인도한다.

예수상을 뒤로 하고 조금 더 길을 오르면 C 아트 뮤지엄의 또 다른 백미, ‘미라클존’에 다다른다. 기적과 같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제작이 가능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 7.7m의 화강석 11개가 둥근 원으로 이루어져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이 작품명은 ‘AMEN(혹은 HOLY STONE)’. 각각의 화강석 위에는 “내 영혼아 주님을 송축하라 경배하라 찬양하라 기뻐하라”라는 시편의 구절 머리글자가 도안되어 새겨져 있다. 작품의 중심부에 들어가 조용히 사방을 둘러보면 온 만물이 송축하고 경배하는 찬양 소리가 울리는 듯 영혼을 뜨겁게 한다.


사람을 부르는 미술관

내려오는 길 따라 펼쳐지는 ‘시가 있는 동산’과 ‘동물조각가든’,‘추상조각가든’등은 야외조각공원을 한층 더 풍요롭게 하며, 저 높은 하늘 길로 올라가는 듯한 형상의 산책로는 오늘도 사유와 명상의 발걸음을 기다리고 있다. 기념관, 전시관 등의 실내 미술관은 정관모 관장의 작품 세계가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뉘어져 있어 조각가의 풍부한 예술적 감성의 역사를 살펴 볼 수 있다. 한국적 현대 조각의 의미는 과연 무엇인지를 고민한 흔적과 천지창조, 성령, 구원의 역사, 종말론 등의 기독교적 교리를 미술로 풀어낸 놀라운 상징적 작품들이 그의 영적인 삶의 여정과 맥락을 같이 한다. 깔끔한 외관의 교육관은 미술교사를 위한 특별 연수회를 비롯해 학생들을 위한 다양한 체험학습을 실시하며, 지역주민을 위한 교양프로그램도 운영한다. 150~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과 소그룹 모임을 위한 세미나실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멀찌감치 떨어져 관람하고 돌아가는 미술관에서 능동적인 참여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창조해내는 미술관으로 옮겨가야 하는 때임을 스스로 보여준다. 게다가 편의관의 식당에는 간단한 도시락이나 뷔페 등을 나눌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어 ‘미술관 음식반입’의 편견을 말끔히 삭제해준다. 사람과 소통하고 사람을 배려하려는 C 아트 뮤지엄의 품위는 그래서 더욱 따뜻하다.



 

C 아트 뮤지엄

476-884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단석2리 40-1 Tel. 031)775-6945  www.cam1.co.kr



인·터·뷰

커다란 예술가의 겸허한 고백

-C 아트 뮤지엄 정관모 관장-


유난히도 강아지가 짖어대는 뮤지엄 내 사택의 문을 활짝 열고 그가 반긴다. 물감이 여기저기 묻은 바지와 목에 살짝 두른 머플러가 무척이나 멋스럽게 잘 어울리는 정관모 관장. 쑥스러운 듯 슬며시 지어 보이는 미소가 어딘지 모르게 장난스럽다. 명예교수님의 나이를 가늠키 어렵도록 만드는 이건, ‘겸손’이다.

“2002년 대한민국기독미술상을 수상하게 되었어요. 이것이 제가 기독교현대미술관 건립의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상을 받을 만큼은 결코 아니었는데, 이렇게 소중하고 큰 상을 받게 되다니, 필경 제가 감당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어요.”그의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기독교’의 주제를 담기 시작한 건 이 때 부터다. ‘상’이란 노력의 끝과 결과를 의미하기 마련인데, 그에게 있어 ‘상’은 오히려 다시 태어날 수 있는 기회와 깨달음의 시작이었던 셈. “바이블 스토리와 십자가의 형상의 의미 등을 연구하고 그려보고 만들기 시작했죠. 기독교가 현재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능(자선사업, 치유, 화해, 평화 등)에 대해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렇담, 그가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어떤 계기일까. 늘 교회는 다녔지만 남들이 말하는 드라마틱한 신앙경험은 없었다. “나는 늘 매사에 늦되요. 근데 시간이 흐르면서 두고두고 푹푹 익은 신앙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삶의 의미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늘 질문하며 살아왔지만 그것을 제대로 표현해보지는 못해왔던 시간. “이제 이즈음 되니까 깨달아지는 게 있어요. 삶과 예술, 그리고 신앙이 모두 ‘하나’라는 사실이에요. 인생이라는 것과 참된 예술, 하나님의 존재는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통한다는 것이죠.”곧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신앙이며, 신앙이 다시 삶이라는 것. 삼위일체는 이렇게 이루어진다. “교수일 때 삶이 예술이라고 가르쳤으나 정작 내 삶에 있어서는 이원화된 것이었어요. 이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것이 하나임을 체화할 수 있게 되었죠. 삶은 삶대로 편안하고, 나의 영적인 세계는 예술적 가치와 같이 만나는 걸 느낍니다. 참 행복하죠.”

허리를 숙여 인사하며 배웅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처럼, 그에게서 유독 흘러나오는 ‘겸손’의 내공은 아마도 진정한 삼위일체를 경험한 자의 모방할 수 없는 은혜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