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고사 뷁이야!” 작년 연말에 시행되었던 일제고사에 대한 보도를 접한 후, 우리 딸이 밝힌 소감이다. 일제고사가 ‘학력이 부진한 학생은 보충지도를 실시하고, 우수학생에게는 성취동기를 부여해 학교 교육을 내실화할 수 있다’고 밝힌 교육과학기술부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찬반토론을 벌이며, 20년 전에나 존재했던 강제, 강압을 통해 시행되며, 잊혀진 해직 교사들을 또 다시 만들어 냈을까?
딸과의 담합으로 조용히 거부하다
작년 12월 23일에 치러진 일제고사엔 당시 중2였던 우리 딸도 시험 대상이었다. 며칠 전부터 시험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나는 아이와 생각을 나누었고, 아이는 시험을 안보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몇몇 학부모와 현직 교사인 선후배와도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 중 남편의 의견이 제일 황당했다. “학교를안 갈 수는 없으니 백지 내고 나오라고 해.” 허걱! 그렇게 드러내놓고 하는 항거, 반항의 후폭풍을 아이는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중2나 되었으니 뭐 달리 체험학습을 보낼 필요는 느끼지 못했고, 시험 당일 담임선생님께 전화해서 ‘아이가 컨디션이 나쁘니 쉬게 하겠다’고 말씀드리자, “네. 잘 알았구요. 처방전 보내주시면 병결로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셨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는 아이라 내친 김에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으니, 낯익은 의사 선생님께서 한 말씀하신다. “얘, 너 만화공부하는 아이지? ‘우린 일제고사 싫어요. 국산고사 보게 해 주세요’라고 만화로 그려보렴. 허허.” 그렇게 한 번의 일제고사는 엄마와 딸이 담합하여 조용한 거부로 결말을 맺었다. 그런데 올 봄, 그렇게 많은 반대와 사회적인 파장이 생긴 일제고사를 교육부는 연기까지 하면서 또 강행을 했다. 아이가 하는 말, “엄마, 이번 3학년 담임선생님은 어렵겠어. 내내 일제고사 꼭 봐야 한다고 강조하셔.” 그래서 3학년 전체 결시율 0%의 일제고사를 치러 냈다는 후문이다.
일제히 시험보기의 의미 찾기
학부모인 입장에서 아이에게 시험을 보라, 보지 말라 강요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게다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초등 때와는 달리 출결 상황이 점수로 직결된다. 뭐 이런 현실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곧장 담임선생님께 닥칠 불이익도 생각해야 한다.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상황이 사실, 2009년의 오늘, 이해가 가질 않는다. 문제도 보지 않고, 답안지에 표시하고 내내 자고 나왔다는 아이, 공공연한 시험 부정을 믿지 못해 시험 감독을 했다는 학부모, 채점을 외주로 맡기고 그 결과를 기다린다는 학교, 무엇보다도 소신 있는 행동을 한 교사에게 내려진 중징계…. 그 의미 없는 일들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일제고사는 한 날 한 시에 같은 학년의 학생들이 같은 시험지를 가지고 문제를 푸는 시험이라는 뜻이라는데, 우린 이미 고입 시험(일부 지역에서 아직 치루는)과 대입 수능시험이 있다. 그리고 이미 매 학년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와 내신 성적으로 아이들의 청소년기는 멍이 들어 있다. 앞으로도 어떤 명목으로든 일제고사는 계속될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이 지난한 고민과 토론은 반복될 것이다. 이 말 많은 일제고사를 가지고 학부모, 시민, 학생, 교사들이 모여 진한 대화를 해보았으면 좋겠다. 소통과 조율, 일제고사를 놓고 보는 해법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정희수|월간 새가정사 편집부장으로 일하다가 6년 전부터 출판사를 직접 차려 운영 중. CBS TV 행복채널 <가족>에 2년여를 고정패널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전문 북 디자인, 잡지 편집 디자이너로 활약한다. 이미 잡지에 등단까지 한 만화가가 꿈인 중3 딸과 함께, 훗날 엄마와 함께 만드는 딸의 만화책을 위해 내공을 쌓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