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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9 05-06 고달픈 삶, 희망의 인문학

고단한 삶, 희망의 인문학 4ㅣ길 잃은 곳에서 다시 찾는 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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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책방 길담서원 박성준 교수

경복궁 근처 통인동 좁은 골목길 끝에는 작은 책방이 하나 있다. 대형서점과 온라인서점이 책과 독자를 장악하고 있는 요즘, ‘길담서원’이라는 흘려 쓴 간판이 주는 정취는 사뭇 진지하다. 성공회대학교에서 평화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남편으로 잘 알려진 박성준 교수. ‘서원지기 소년’으로 통하는 그가 나타났다. 청바지 차림에 한쪽 귀걸이를 하고 평화로운 미소를 지으며.


좋은 책만 있다
“작년 2월 25일에 문을 열었어요. 아니, 열어가고 있어요.” 누구에 의해 문을 열었던 공간이 아닌, 사람들과 더불어 만들어 가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지금도 길담서원은 열어가고, 만들어가고, 빚어지고 있단다. “이제 한 돌을 지났어요. 막 걸음마를 뗀 셈이죠. 이놈이 커서 뭐가 될 런지는 모르지만, 기대가 되네요. 하하!”
길담서원은 박성준 교수가 터를 마련하고, 이곳저곳에서 직접 고른 좋은 책 3천여 권으로 시작한 인문학 책방이다. “옛날 서당의 전통을 이어서 21세기의 현대적인 젊은 감각의 서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서점과는 다른 공부방 같은 곳이요.” 사방이 책으로 포근히 둘러싸인 공간은 공정무역커피 한 잔의 향기로 그득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속닥거릴 수 있는 테이블 위로 낮은 피아노 선율이 닿을 듯 말듯 한다. 꽂혀있는 책의 면면을 뚫어져라 살펴보아도 눈이 피로하기는커녕, 무언가 채워지는 듯한 뿌듯함에 앎의 행위로 뛰어들고픈 지적 열망까지 되살아난다. 그만큼 길담서원에는 ‘좋은 책’만 있다. 공간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일게다. 다른 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무언가 창조적이고 풍요로운 기운에 마음은 잔잔한 강물처럼 평화로워지고, 조용히 책 한 장을 넘기며 밑줄을 긋고픈 열정이 몸을 움찔거리게 한다.


서점이 아닌, 문화와 소통의 공간
1080명을 넘어서고 있는 온라인 카페 회원들 중 이곳을 안방 드나들듯 하는 30여 명의 회원들이 이러한 ‘길담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회원들 스스로 공부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분야별로 모임을 꾸리고 직접 강사도 모시며 강좌를 만들어 고전을 강독하기도 하고, 스페인어와 춤을 배우기도 한다. “요즘 시민단체나 문화예술기관 등에서 열리는 여러 강좌가 주최 측에 의해 기획된 일방적이고 타율적인 강의라면 ‘길담’의 공부는 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자발적 강좌라 할 수 있어요.”
‘책여세(책으로 여는 새로운 세상)’는 2주일에 한 번씩, 목요일 저녁에 열리는 책 읽기 모임이다. 최근에는 직접 ‘작가와의 만남’을 주최해 더욱 깊은 인문학적 이해와 교류를 만들어 간다. 일 년에 4번, 밤을 꼴딱 새면서 테마별로 진행되는 ‘백야제’는 더욱 밀도가 높은 문화축제다. 맛있는 먹을거리와 춤, 대금연주, 노래, 영화 등의 다양한 문화콘텐츠가 회원들의 주체적인 참여와 버무려져 길담만의 잔치를 신명나게 치러낸다. 어린이에서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와 갖가지 사연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함께 창의적으로 그려가는 작품인 셈이다. 얼마 전에는 비폭력주의 래퍼 박하재홍 씨가 ‘동네 책방, 랩퍼를 만나다’라는 인문학책방 순회공연을 열기도 했다. 책방과 랩, 이 어울리지 않는 ‘조우’는 책방의 모든 활자를 리듬으로 들썩이게 만드는 원초적 ‘조화’를 공연했다고.


나는 길을 잃었다

그는 이 노년에 왜 하필 책방을 열었을까. “60대 후반 즈음 나는 길을 잃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 칠순이 다 되어 가고 있었죠. 시간은 없는데 길은 잃었고, 해는 뉘엿뉘엿 지고 밤은 가까워 오는 순간의 당혹스러움은 말할 수가 없었어요. 다시 출발점에 서서 길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책과 함께 해온 인생을 돌아보며,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신념을 다시 확인했죠.” 그는 이 공간이 그와 같이 길을 잃은 사람들, 목마른 사람들이 들렀다가 숨을 쉬고, 목을 축이고, 길을 찾아가는 곳이 되기를 바란단다. “저는 그런 사람들 중의 단 한사람으로서 함께 지나가고 있을 뿐이에요. 무언가 답을 알고 이끌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가르치는 자도, 안내자도 아닌, 더불어 묻고 같이 찾아가는 길동무일 뿐입니다.” 그래서일까. 성공회신학대학교에서 가르치던 평화학도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란다.
스승이 넘치고 온통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들만 있는 이 시대, 진정한 스승은 꼭 이렇게 숨어 계시는구나, 싶다. “올해 1월, 내 나이가 칠십이 되었어요. 길담의 친구들이 이곳에서 조촐한 음악회와 함께 잔치를 열어주었는데 떡 케이크에 초를 하나 꽂았더라고요. 그걸 보며 이제 나는 다시 한 살이구나, 새롭게 생을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죠.” 그의 닉네임은 최근 ‘서원지기 늙은 소년’에서 ‘서원지기 소년’으로 탈바꿈했다.


왜 인문학인가?
우리는 왜 지금, 인문학을 논할까.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을 겪고 생존이 절대 절명의 과제였던 시대를 살아왔어요. 이후 경제발전과 80년대 민주화를 거치면서 배고픔을 면하게 되죠. 그러나 육신의 배고픔은 면했지만 영혼의 배고픔은 잊고 살았어요. 물질적 욕망으로 충족되지 않는 것은 어떤 종교에 의탁함으로써 해결하려 하기도 하죠. 그러나 그건 자아가 그것을 진정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주입된 것이었죠. 최근 그게 진정한 해갈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온 것 같습니다. 한 인간으로서 삶의 근원적 목마름을 인식하는 일은 성숙의 과정에 도달한 것입니다. 여기에 인문학의 필요성이 있는 거죠.” 경제가 어렵고 삶이 힘들어도 그것을 견디는 힘은 다른 데서 오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정신의 힘에서 온다는 믿음이다. “원전이 어렵다는 오해를 많이 갖고 있는데 원전은 그 시대 보통 사람들이 읽던 것이에요. 그 안에 시와 논리, 역사와 철학 등의 깊은 지혜가 녹아있죠. 맨눈으로 직접 부딪혀 읽어 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우리의 삶이 던지는 물음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인문학은 지식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생활인에게 필요한 공부라는 것.


성서는 흑인들의 유일한 인문학
분명 교회와는 다른 공간인데, 알 수 없는 종교적 힘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길담의 공간 속에 드나드는 사람과 무관하지 않아요. 공간이 사람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있다는 걸 느끼죠. 진정한 친구가 없어 외로운 우리 시대인데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공간 사이의 깊은 우정의 역동을 경험하며 숙연해져요. 그렇게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는 경험을 할 때면 오히려 종교적이라 할 만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라 부르셨잖아요.” 종교가 아닌 시공간에서 오히려 더 종교적인 만남과 문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종교의 본래적 자연스러운 일상 아닐까. “ 종교가 무언가를 담아내려 하다 보니까, 담아내는 그릇인 형식과 제도가 담아내고자 하는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해져서, 결국엔 담고자 하는 것을 해치기까지 하는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성서는 그 시대 흑인들의 유일한 인문학이었어요. 그 억압에서 흑인들을 해방시킬수 있었던 텍스트였죠. 그 텍스트가 지금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 지 돌아봐야 합니다.” 교회를 포함한 요즘 종교를 향한 안타까움이 배어난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많아지는 시대, 뼈아프게 들어야 할 충고다. “교회는 이제 일방적이고 폐쇄적인 소통의 구조를 벗어나 새롭게 이해하는 양식을 만들어 가야 해요. 제 흥에 겨워서 움직이도록, 의도하지 않는 거죠.”
길담의 ‘담’은 공동체와 보금자리, 쉼터를 의미한다면, ‘길’은 그 공동체가 외부에게 열려 있어 연결됨을 의미한다. 진정한 공동체란 상대를 계몽시키거나 전복시키려 들지 않고, 길을 통해 좋은 것을 주고받으며 존중할 수 있는 곳이 아니냐며 교회에서 이러한 소통의 공간을 하나씩 만들어 가면 좋겠다는 아쉬움 섞인 바람도 살포시 남긴다.


“저는 이곳에서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화적 실험의 장이 되어야죠. 재미가 없으면 안 해요. 삶은 축제인걸요. 괜히 지하 노래방에서 소리 지르지 말고, 인문학적 토양의 문화 위에서 카타르시스를 만끽했으면 좋겠어요.” 이제 일 년 남짓 된 공간이지만 십 년은 된 듯한 품위와깊이가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곳. 그럼에도 창의적 실험과 자율적 도전이 넘치기에 매일 다시 태어나는 길담서원은 다시한 살에서 삶을 시작하듯 살아가겠다는 나이 칠십의 서원지기처럼, 하고 싶은 게 많아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글ㆍ사진 노영신

길담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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