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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교회ㅣ나의 하나님은 농부시라

에디터 노영신

 


대형차, 대형서점, 대형백화점, 대형할인점. ‘큰 것’이 주류가 된 시대에 발맞추어 ‘대형교회’라는 단어가 이제는 매우 익숙해졌다. 높아지고 넓어졌으니, 놓치는 것도, 소외되는 것도 없이 교회는 그 너른 품으로 세상을 포근히 안을 것도 같은데, 어째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교회 건물의 크기와 성도의 숫자 등의 외형적 관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 속에서 오래 전‘작은교회’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한 교회가 있다. 더 커져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에게 다짐시키듯 하다. 크지 않아도, 교회의 본질을 고스란히 지닌 채 그리스도인의 영성적 삶을 살아가게 하는 깊은 힘이 느껴지는 곳. 아니, 어쩌면 그것은 크지 않았기에 외려 가능했는지도 모른다. 말씀과 생명, 영성과 예술을 넘나들며 한국교회의 대형화 속에 ‘작음’의 위대함과 숭고함을 농사짓는 ‘작은교회(예장통합)’의 곽은득 목사를 감히, 만나 보았다.


민중교회에서 생명목회로

시골마을 어귀에는 꼭 커다란 나무가 있다. 양쪽의 논밭을 가르며 달리는 길 저 너머 몇 백 년은 족히 됐을 아름드리나무가 보이면 매곡리 작은교회에 다 온 거다. 그 흔한 큰 교회 표지조차 없다. 마치 옛 시절, 은행나무 아래에서 만나자던 낭만 어린 약속의 설렘처럼 아름드리나무만이 이 교회의 위치를 알려준다.

대구의 시내 한 복판에서 도시 근로자들의 민중교회를 섬기던 곽은득 목사가 경북 군위 매곡리의 시골 마을로 자리를 옮긴 건 한 십여 년 전의 일이다. “민중의 현실에 변화가 온 이후 민중선교의 진로를 놓고 고민을 했어요.” 당시 그는 이직이 심한 노동자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며 선교하기 위해 노동의 현장이 아닌, 삶의 현장, 즉 퇴근해오는 거주지로 들어가 사역을 해왔다. “그런데 도시 노동자들 대부분이 농촌의 정서를 가지고 있더라구. 결국 돈 벌고 농촌으로 돌아가고픈 갈망이 밑바탕에 있는 거예요.” 민중선교의 새로운 지향점을 찾고 있던 차에, 그는 농촌이라는 장에 생명의 목회를 일궈 나가는 것이 곧 길임을 발견했다. 이렇듯, 그가 ‘공장’과 노동자들의 ‘거주지’를 지나 ‘농촌’으로 사역의 자리를 옮기게 된 데에는 그의 목회적 가치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목회란 자신 안의 자신도 모르는 사람, 그것을 발견하게 하고, 끄집어내게 해서 그 자신대로 살아가게 하는 거 아니겠어요?”


하나님 나라의 모형은 농업적 사회

지난 80년대 민중교회 시절을 돌아보면 기독교와 교회에 대한 안타까움에 비판의 목소리만 높았던 것 같다는 그는 대안이 없는 비판적 외침이 얼마나 허망한 지 잘 안다. “예언자의 외침에는 비판과 질책, 그리고 희망적인 대안이 있어야 해요. 나에게 이 대안은 농사짓는 거여.” 성서를 통해 농업을 새롭게 발견하기 시작한 그는 목가적, 전인적인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삶이 곧 영성적인 삶이라고 말한다. “영성이 뭐 특별한 건가? 농사를 제대로 지어보면 누구나 영성적으로 될 수밖에 없지. 쌀 한 톨 길러 먹으려면 여섯 달을 온 몸을 바쳐서 노동을 해야 하지만 먹는 데는 십분도 안 걸리잖아.” 먹고 배를 채운다는 측면은 배울 게 아무것도 없지만 농사를 지어보면 그 과정자체가 우주와 하나라는 것을 깨닫는다며 말한다. “하나님 나라의 모형은 농업적 사회가 그 구체적 형태라고 생각해요. 막연하게 떠들지 말고 일단 농사를 지어 보는 게 중요해요.” 그러나 모두 도시를 버리고 전원생활을 하라는 것도, 도인처럼 은둔하라는 것도 아니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도시를 다시 만나고, 도시를 치유하는 삶이어야 한다는 것. 생명력이 다한 도시의 무능력을 떨치고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거다.


삶의 예술가로 태어나라

집안 곳곳에는 곽은득 목사의 손재주가 묻어나는 작품들이 예술적 품위와 편안함을 더한다. 나무로 직접 만든 기도 의자, ‘곽은득체’라 불릴 만한 서각, 손수 빚어 빛깔도 고운 그릇, 차곡차곡 그릇을 올려놓은 수납장까지, 게다가 손글씨로 빼곡하게 적어 놓은 4장짜리 그림 같은 주보는 그의 작품의 정수이다.

“그동안 교회는 문자가 지배해 왔기 때문에 우리 신학에 미학이 빠져 있어요. 교회 구호나 강단 언어 등이 감성과 이미지를 배제한 채 문자로만 일관해왔지.” 그는 생명을 가까이 하면 미학에 눈을 뜨게 된다며, 특별히 신학생들이 문자적 신학에 갇혀 있지 말고, 신앙의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예술적 감성과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예술은 사람 속에 잠재해 있는 온갖 느낌과 생각들을 알아차리게 해줘요. 어떤 그림은 내 안에 있는 그리움을 그려주고, 어떤 음악은 내 안에 있는 실연의 슬픔을 노래하죠. 예술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거예요.” 그렇다. 태초에 감동이 있었다. 감동을 모르고 어찌 하나님을 알고,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예술적 신앙에 눈을 뜬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녹이고 포용할 수 있다. 더 이상 싸우지 않는다. 일상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창조성을 만나서 예술을 산다는 거예요. 우리 모두가 삶의 예술가들이죠.” 그는 이렇게 일상을 거룩한 예술의 경지로 끌어 올리고 승화시키며 살아가기 위해 자신만이 창조한 삶의 예술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을 텍스트로 삶을 배우는 학교

기독교 영성을 바탕으로 하는 ‘매곡리자연학교’ 는 그러한 삶의 예술가들을 키워 나가기 위한 작은교회의 대안학교이다. 2004년부터 대안교육위탁기관으로 지정되어 농사를 비롯해 집짓기, 도예, 목공, 서각, 천연염색, 자연식 요리 등의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작은교회의 교회당 앞에 펼쳐진 널찍한 땅에는 황토흙집, 목공소, 도예실, 도자기를 굽는 가마에 유기농산물을 직거래할 수 있는 농민장터까지 곽은득 목사가 손수 세우고 만들어온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텃밭에는 싱싱한 먹거리가 뜨거운 햇살을 받아 잘 자라고 있고, 호박이 넝쿨 지는 담을 끼고 토실토실한 닭들이 뛰어놀고 있으니, 이곳이 자연학교의 교실이다.

여름과 겨울방학을 이용한 ‘초등학생 생명학교’에서는 마을 어른들을 찾아 삶의 보물 같은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생명농업공부, 책읽기, 몸에 대한 공부, 자연계를 통한 생태체험 등도 이루어진다. 자연학교에서는 나무숟가락 만들기, 흙으로 밥그릇 만들기 등 아이들이 무엇이든 스스로 만들어 본다. 물건을 소비하고 소유하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이 사지 않고 직접 만들어 봄으로써 노동과 생산, 창조의 기쁨을 누려보게 하는 것. 이밖에도 주말학교, 주말가족농사, 1일 체험 프로그램, 기독교농부학교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은 모두 초자연적 계시의 위대함을 직접 경험하는 시간이 된다.

“이젠 ‘책’을 넘는, ‘대학’을 넘는 교육시스템이 나와야 해요. 단편적이고 일률적인 삶의 틀에 갇혀 있는 아이들에게 흙과 물, 산과 들, 우주 전체를 텍스트로 하는 삶의 방식을 가르쳐야죠.” 한창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과외, 학원에 치여 과도한 경쟁과 학업 스트레스에 묻혀 살아가는 한국교육의 현실은 참으로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자연체험교육조차 유행과 경쟁을 타는 때, 생명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관심으로부터 출발하여 영성적 삶으로 이끄는 매곡리자연학교의 정신은 더욱 값지고 귀하다.


작은교회는 마치 높은 빌딩숲 사이로 생명력 있게 자라나는 작은 한 그루 나무 같다. 사람들은 그 나무를 지나며 초록 향기를 맡기도 하고, 기억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던 것을 붙잡기도 하며, 다가올 미래를 그려가기도 한다. 그 나무는 비록 작지만, 뿌리가 깊어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그 흔들림이 오히려 나무를 더욱 견고하게 한다. 그리고 이 작은 나무는 모든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고, 사람을 사람답게, 삶을 풍요롭게 했던 예수의 정신을 끝내 열매 맺는다. 그래, 작은 것은 아름답다.



인·터·뷰

‘작은’교회의 ‘큰’ 사람
_ 작은교회 곽은득 목사


목사요, 농부요, 선생이요, 예술가인 곽은득 목사. 툭툭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낯이 뜨거워지는 부끄러움과 뒤통수를 치는 듯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한국교회는 교회력에만 관심이 있지, 정작 우리나라 삶의 절기는 잘 몰라요. 24절기에 관해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않아요. 삶을 가르치지 않는 거죠.”교회의 모든 행사와 프로그램은 사순절과 부활절, 성탄절과 같은 교회력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 계절이 바뀌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장마를 맞고, 혹한 추위가 찾아오는 자연의 흐름, 교회는 그 속에 있지 못했구나 싶은 깨달음이 그제야 온다.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이 절기대로 자연의 흐름을 따라 가는 삶이 중요해요. 교회는 신학을 위함이 아니라, 삶을 위함이어야 하지 않겠어요?”

한국교회를 향한 이러한 안타까움은 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학 강의를 통해 더욱 구체적으로 나눈다. “농사꾼이 무슨 인문학 강의냐 하겠지만, 깊이 보면 농사는 기술이 아니라, 농업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신학과 영성, 생명농업강좌, 성서와 인문학, 예수의 비유에 나타난 농사 이야기, 신학하기·예수살기, 성서와 미학, 글쓰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등, 듣기만 해도 귀가 솔깃해지는 강의제목이다. “예언자로서 기독교 진리의 맥락을 어떤 언어로 소통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학교에서 배워왔던 공부는 이제 세례를 받아야 해요. 종교적인 언어가 아닌, 새로운 세례를 받은 언어로 진리를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배우고 익혔던 지식은 세례를 받아 다시 태어나야 한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한국 땅에 맞게, 나의 교회 상황에 맞게, 나의 언어로.

“우리나라는 분단과 자본주의라는 현실의 이중고에 살고 있어요. 세계 어디서도 없는 독특한 모순이죠. 바로 이곳 한반도에 신음하는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는 것, 여기서 한국 신학이 나와야 해요.” 그는 우리나라가 분단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면, 세계평화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 문제가 깊다는 것. 모순과 질곡 속에 진리가 있기에, 이것이 좋은 기회이자 축복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손재주가 특별히 있냐는 질문에 빙긋 웃으며 말한다. “없어요! 그냥 하면 되요. 관심이 재주를 부르는 거지, 뭐.” 생명에 대한 관심이 농사로, 예술에 대한 관심이 손수 만드는 작품으로, 소통에 대한 관심이 넓은 인문학적 소양으로 펼쳐진 그는 분명, ‘작은’교회의 ‘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