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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매거진<오늘>/문화선교연구원

지적설계론과 진화론 전쟁 (4)


지적설계론의 출발에 대한 이러한 오해와 더불어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가장 큰 오해는 지적설계론이 소위 창조과학과 유사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지적설계론은 창조과학에서 주장하는 우주와 지구의 연대를 몇 만년 이내로 본다든가, 무에서 각각 생명체 종의 개별 창조 그리고 노아의 홍수에 의한 지층의 격별설등의 주장에 대해서는 확답을 유보합니다. 대신 지적설계론은 생명체에서 지적 존재에 의한 설계의 증거가 존재하며 이에 대한 과학적인 설명을 시도하는 것일 뿐이고 따라서 설계의 원인이 되는 지적 존재가 누구인지는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다루지 않는다.

또 다른 논쟁의 핵심 이슈는 종교와 과학에 대한 범위와 관할권에 대한 것이다. 진화론자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와 진화론 철학자인 마이클 루즈, 진화론 전파의 핵심 단체인 미국 국립과학교육센터(NCSE) 유진 스콧 박사 모두 과학과 종교의 NOMA(겹치지 않는 교도권, Non-Overlapping Magisterium)을 주장한다. 종교의 교도권은 ‘궁극적 의미에 대한 질문들’을 다루는 반면, 과학의 교도권은 ‘경험적 영역’을 다루기 때문에 둘은 실체를 바라보는 두 가지 다른 각도라는 것이다. 이를 다른 형태로 말하면 빈틈의 하나님 (God of gaps)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현재 생명 현상을 자연주의 관점의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도 향후 연구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설명되어 질 수 있으므로 현재 그 빈틈에 초월적인 존재의 개입을 허용하는 것은 과학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NOMA를 주장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론을 거부할 수가 있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철저한 무신론 진화론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이러한 NOMA를 거부한다. 그에게 있어서 종교는 가장 흔한 형태의 미신일 뿐이므로 합리주의의 한 형태인 과학은 그 어떤 형태로도 이에 대한 허용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질과 에너지의 관점에서만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현재의 자연주의 과학이 종교와 형이상학 그리고 사이비과학을 과학의 범위 밖으로 몰아내고 현재와 같은 과학의 발전을 이룬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물학적 기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적인 부분이 있음에도 물질과 에너지 이외의 비자연주의적 설명은 과학적 증거의 유무에 상관없이 비과학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다양한 이론들을 함께 토론하여 발전하는 과학의 원칙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또한 생물학적 정보 생성의 난제를 갖고 있는 진화론이 자연선택이 정보의 생성과 증가를 가능하게 한다는 주장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될 당시에는 생명 현상의 근원인 유전자에 대한 지식의 부재로 인해 복잡한 생명체로의 진화를 복잡한 구조가 자연선택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만 집중하였다. 그러나 분자생물학의 발전으로 인해 생물학적 복잡성은 디지털 신호인 생명 정보의 생성을 요구한다는 커다란 난제에 해결해야만 했다.

지적설계론자들의 영향으로 인해 최근에 “자연주의적 설명”만을 과학이라고 정의하였던 미국의 대부분의 주 교육위원회가 과학의 정의를 “자연 현상에 적절한 설명”이라는 표현으로 바꾸었음은 매우 고무적인 것이다. 지적설계론의 출현으로 과학의 범위와 종교/과학의 영역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다시 한 번 요구되는 시점이다. 현재 미국에서는 지적설계론에 대한 논쟁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지적설계론이 과학적인 논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과학이론이 될 수 없을 것이므로 비자연주의적 관점을 말한다고 해서 종교로 치부하여 논쟁 자체를 차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만약 지적설계론이 혹독한 과학적 반증 논쟁에서 살아남는 다면 토마스 쿤이 말한 새로운 과학 패러다임으로 인정될 수도 있을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폐기될 것이다. 과학은 증거로만 말해야 하지 이론이 근거하는 철학적인 기반이 결론을 말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생명의 기원에 유일한 과학 이론으로 여겨지는 진화론은 증거에 기반한 정상 과학이 아니며 진화론이 근거하는 자연주의적 관점과 다른 유신론적 관점의 과학을 배제한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지적설계론이 기독교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고 하여 비판하는 것은 과학의 규칙을 모르기 때문이다. 지적설계론은 현재의 진화론 과학이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는 점에서 시작되었고 이를 설계론적 관점으로 해결하려는 과학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적설계론이 향후 과학의 체계로 인정받는다면 현재의 진화론에 대항하는 최초의 유신론적 과학이 될 것이다. 무신론적 관점에 근거한 진화론에 도전하는 유신론적 과학의 등장은 기독교적인 관점을 뒷받침한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다만 지적설계론은 과학일 뿐이고 성경적인 모든 것을 과학의 틀 안에 설명할 수는 없으므로 지적설계론은 기독교적 측면에서 세례요한과 같이 주의 길을 평탄케 하는 역할 만을 감당할 뿐이다.

이승엽|지적설계연구회 회장, 서강대학교 기계공학과 바이오융합과정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