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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가사는 소설이 아니다 ㅣ 뮤지션 이장혁


인디 : 구름에 달 가듯이 산다

사진 : 최규성



2008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온 이장혁의 2집 <Vol.2>는 처음 듣는 그 순간에 알아챌 수 있는 노래들로 채워져 있어 평론을 하기 위해서 그리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음반이다. 사실 생각을 하기 이전에 ‘내 마음은 이장혁의 노래들에 이끌렸기’ 때문에 ‘생각 없이’ 음반 전체를 들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건 내 삶이 너무 고단하게 느껴지는 순간 임의진의 “강물은 누구의 눈물일까?”를 듣고는 멍하니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매우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난 앨범 <vol.1>(2004)과 마찬가지로 이장혁의 이번 앨범 <vol.2> 또한 그의 ‘진심을 담은 노래’들이란 점이다. 그리고 그 ‘진심을 담은 노래’들에는 섬뜩할 정도의 성찰이 담겨 있고, 때로는 가슴이 메어질 정도로 슬프다는 점인데, 그건 그 노래들이 충분히 공감이 가기 때문일 것이다.
이장혁은 청중을 가사에 집중시키고, 그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충실하게 전달하고 싶어서 1집과는 다른 형태의 적절한 세션을 고민한 것 같다. 그는 아무밴드 이후 전형적인 록밴드 세션에서 벗어나서 점점 더 미니멀한(정확하게 얘기해서 공간을 비운) 세션을 추구하고 있는데, 이는 자신의 고통스런 내면을 드러내는 고통스런 노래들에 담긴 ‘자기 이야기’에 사람들이 집중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통기타 반주 하나만으로 노래하는 ‘1인 세션’을 택하기도했고, 심지어 2005 광명음악밸리축제의 메인무대에서 2만여 관중 앞에서조차도 통기타 하나 들고서 “스무살” 같은 노래들을 불렀다.
물론 처음 우려와 달리 무척 감동적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세션을 간소화한 이유에는 실험보다는 ‘절실함’이 더컸을 것 같고, 2집의 ‘thanks to’에 ‘누가 뭐래도, 누구보다도 역시 하나님’이라고 적은 이유와도 일맥상통할 것으로 보인다. 그의 이번 앨범에는 그를 제외한 한국의 어떤 뮤지션들도 다룰 것 같지 않은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아우슈비츠 오케스트라”는 ‘아우슈비츠의 참혹함’으로 박제화된 역사적 사실을 현재적 감각으로 느끼게 하는 힘이 있어서 놀랍다. 또한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을 일으킨 조승희의 어린 시절 흑백사진에서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만들게 됐다는 “조” 역시 마찬가지다. ‘수학을 잘했었던 너무 말이 없었던 벙어리 같던 아이 조/ 아무도 니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지 누구도 널 몰랐어 조/ 모세가 되고 싶던 그러나 니 손엔 지팡이 대신 총/ 예수가 되고 싶던 그러나 니 맘엔 사랑 아닌 분노, 분노만이/ (후략)’ 이런 종류의 관심을 보이고, 이를 실제로 노래로 만들어서 부르는 이는 아마 ‘한국에서는’ 이장혁 외에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 노래들에서 내가 느낀 것은, 기본적으로 그가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낀다는 점과 함께 ‘세계시민’으로서의 정서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내 노래에는 ‘농담’이 없다”고 강변하는 한대수의 말처럼 이장혁의 가사는 ‘소설’이 아니다. 치장하고는 거리가 먼 ‘진심’에 가깝다. 그의 노래는 내게 오늘날에도 ‘진지한 음악과 뮤지션’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래서 없는 힘까지 쥐어짜내어 이 순간에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준흠|10대 후반부터 열망했던 대중음악 관련 일을 하기 위하여 32살에 전업하여 97년 대중음악전문지 ‘서브(SUB)’를 창간했다. 현재는 문화예술전문매체&문화기획자. 그룹 ‘가슴네트워크’(
www.gaseum.co.kr)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축제, 공연, 매체, 출판, 아카이브, 아카데미, 정책 기획 등을 추진 중인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