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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UALITY/문화선교리포트

삼청교회 ㅣ ‘담’을 허물고 ‘쉼’을 짓다



쌓인 낙엽 위로 눈이 살포시 덮은 거리를 걷는다. 코끝이 싸해지는 차가운 기운은 영혼을 감싸고, 시린 몸을 잔뜩 움츠리면서도 따뜻한 자동차 타고 지나치기에는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아, 자꾸만 걷고 싶어지는 거리. 길가에 자리한 아기자기한 소품가게와 문화적 향기로 그득한 갤러리, 진한 커피와 책이 어우러지는 북카페가 줄지어 있는 곳, 삼청동이다. 그저 거리를 걸으며 둘러보기만 해도 뭔가 여유로워지는 매력을 전해준다. 삼청동길을 들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왼편에 작지만 아늑한 나무 톤의 북카페 하나가 눈에 띈다. 얼른 들어가 몸을 녹일 커피 한 잔과 책을 집어 들고 싶어진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 북카페가 자리한 담벼락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교회가 아닌가. 이 북카페와 교회의 관계는 무엇일까.


100살 된 교회가 품은 것, 청년과 문화

언젠가부터 삼청동이 ‘문화의 거리’로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커다란 카메라를 매고 출사를 나오는 이들로부터 나들이 하는 가족들, 데이트 하는 연인들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것. 교회에서 전도를 해도 어려운 이 형국에, 사람들이 오히려 몰려오는 이 길에서 삼청교회(기독교대한감리회)는 이들을 맞을 준비를 하였다. 문희수 담임목사가 교회에 부임하자마자 한 일은 교회의 담을 허무는 일이었다. 교회와 길의 경계를 분명히 했던 담을 없애고 바로 그 자리에 누구나 앉아 쉴 수 있도록 파라솔과 벤치를 놓아 ‘쉼터’를 만든 것. 그리고 담을 허물면서 길가 방향으로 현재 카페 ‘엔’을 만들 자리를 공사했다. 그 누가 봐도 교회가 운영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삼청동길의 여느 카페나 다름없는 곳으로 단장한 것.

“선교가 힘들다고 해서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삼청동에 자리한 우리 교회가 지금 이 때에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병남 목사(문화청년담당)는 교회가 세상을 향한 소통의 자세를 가다듬으며 이 시대에 걸맞는 새 옷을 갈아입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더구나 삼청교회는 내년이면 100주년을 맞이한다고 하니,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가 이토록 변화하는 데에는 만만치 않은 진통이 따랐을 거라는 예상이 당연하다. “쉽지 않았죠. 하지만 담임목사님께서 청년과 문화라는 두 가지 핵심사역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지가 크셨어요. 자신의 사택 2층을 청년을 위한 공간으로 내어주기까지 하셨으니까요.”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씩 그 열매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자연스레 교회는 한마음이 되어 갔다.


카페가 어린이도서관을 낳다

요즘 들어 ‘카페’는 교회 문화선교의 일환으로 각광을 받고 있어 카페가 있는 교회를 쉽게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회가 교회 안의 교인들을 대상으로 성도의 교제와 친교의 목적으로만 카페를 만들고 있으며 영업허가 없이 세금도 내지 않은 채 운영하고 있는 것이 현실. 그러나 삼청교회의 카페 ‘엔’은 처음부터 어렵지만 제대로 된 길을 택했다. 카페공간을 위해 용도를 변경하고 공사하며 정식 허가를 받았다. 커피 또한 최고급 수준인 독일 달마이어 원두를 사용하고 자원봉사가 아닌 바리스타 전문가가 직접 커피를 내리지만 가격은 시중보다 저렴하다. 다양한 맛의 샌드위치 또한 신선한 재료로 모두 직접 만든다고. 여름에는 팥빙수를 내놓기도 했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모든 팥을 놓고 여러 명이 맛을 보며 투표를 해서 가장 맛있는 팥을 골라 뽑았다. 뽑아놓고 보니 호텔에 들어가는 가장 비싼 팥이었지만 그대로 그걸 사용했단다. 덕분에 여름 내내 팥빙수가 맛있는 카페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고.

인테리어 또한 까다롭게 신경을 써서 직접 목수들이 제작한 가구로 꾸며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프로젝트와 스크린을 통해 오페라나 음악회 등의 영상과 음악을 함께 즐길 수도 있어 아늑한 공연장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게다가 한쪽 벽면을 가득 장식하고 있는 책은 이미 그 존재만으로도 카페 ‘엔’의 가치를 드높여준다. 그리 크지 않아 보이는 책장인데도 무려 1200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으며, 특별히 젊은이들의 요즘 취향을 깊이 고려하여 영성, 여행, 자기계발 등의 분야의 책들이 유난히도 많이 꽂혀 있다. 그에 반해 기독교 관련 책은 1% 정도에 그치는데 이는 카페가 교회적 색깔을 도리어 드러내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고.

무엇보다도 이 카페 ‘엔’의 자랑은 카페의 수익으로 어린이도서관 ‘꿈과 쉼’을 낳았다는 것이다. 카페 수익이 늘어나자 이를 어린이도서관을 만드는 데에 사용키로 한 것. 지금도 카페의 수익은 카페의 운영 외에 모두 어린이도서관의 운영을 위하여 사용된다. 문화의 거리, 젊은이들을 끌어안고자 시작했던 카페가 어린이들과 가족을 위한 문화공간까지 꿈꿀 수 있는 계기로 이어진 것이다. 문을 연 지 만 3년, 삼청동 어느 카페에도 뒤지지 않는 수준의 카페다운 카페로 알차진 ‘엔’은 ‘샘물’이라는 뜻의 이름처럼 이제는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문화적 안식처가 되고 있다. 


책 읽는 어린이가 아름답다

세대교체를 꿈꾸며 청년사역에 힘을 쏟고 있는 삼청교회는 어린이 또한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해야 할 대상이라 여긴다. 어린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교회야말로 무슨 희망이 있을까. 교회학교 어린이의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요즘, 어린이들이 교회에 신나고 재미있게 드나들 수 있게 하기 위한 전환적 모색이 절실할 때임은 분명하다.

‘책 읽는 어린이가 아름답다’를 모토로 지난 2006년 3월, 처음 문을 연 어린이도서관 ‘꿈과 쉼’은 삼청교회 교육관 건물에 자리한다. 1500권의 책에서 시작한 도서관은 현재 6500여권의 책으로 가득 차 있고, 질적인 수준 또한 어느 관공도서관에 뒤지지 않기 때문에 지역의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근처 직장인, 삼청동 나들이를 나왔다가 회원이 되는 타지역인들도 많아졌다. “이곳에 와서는 좋은 책을 따로 고르지 않아도 되요. 꽂혀있는 책이 모두 좋은 책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회원들이 올수록 더욱 신뢰를 갖는 것 같아요.” 어린이도서관장인 강성혜 교육사는 “물론 첫 해는 삼청교회 교인 중심으로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교인이 아닌 외부 기독교인, 일반인들의 이용 또한 많아지더라고요. 이곳에 와서 책을 읽는 이들도 많지만 대출반납 이용회원들이 많은 편이죠.” 연회비는 1년에 만원이며 현재 300여명의 회원이 있다. 회원 중에서 비기독교인의 비율은 3분의 1정도. 나머지 모두 삼청교인들은 아니고 그 중 3분의 2는 타교인이다. “요새 아이들이 친구들에게 그냥 교회가자고 하면 안가잖아요. 어린이도서관 가서 책 보자고 하면 보다 쉽게 교회에 데리고 올 수 있어요. 게다가 어린이들이 오면 자연스레 가족이 같이 오게 되죠.”


가족문화공간으로 자라나는 꿈 

강성혜 교육사는 ‘꿈과 쉼’만의 특성화된 프로그램과 다양한 문화교실 등을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누구나 와서 책을 보고, 대여해갈 수 있는 공간을 넘어서서 어린이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가족문화공간으로서의 도약을 이루어가고 있다. “어린이도서관은 결국 가족도서관이 되어야 합니다. 어린이를 위한 좋은 콘텐츠가 있을 때에 어른들까지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는 길이 열리거든요.” ‘어머니를 영화상영’, ‘가족영화상영’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도 그 때문. <델마와 루이스>, <그녀에게> 등의 영화를 함께 보고 나누는 이야기들은 어머니들의 속내를 시원케 하는 수다 한마당이 된다고.

또한 한 달에 한 번씩 ‘꿈과 쉼’만의 체험학습을 떠난다. 근처 작은 박물관이나 방송국에서부터 멀리 양떼목장까지 부모와 함께 떠나는 체험학습은 아이들에게 매우 인기다. 좋은 동화책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만나고 그에 따른 놀이교실을 이어 진행하는 빛그림공연과 플롯, 바이올린 등을 배우는 클래식 악기교실, 영어동화책 읽기 교실 등 매월 다양한 문화마당에서 자신의 은사를 나누는 선생님과 배움에 고픈 아이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씨를 뿌리고 기다리듯이  

“어떤 분들은 교인이 아니면 이용하지 못하냐고 질문하시기도 해요. 참 마음이 아프죠. 책이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경계를 없애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교회가 도서관을 한다니까 그런 책조차도 선을 긋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 같은 인상을 받나 봐요.” 강성혜 교육사는 교회가, 또는 교회에 부속된 시설이 일반인들에게는 그만큼 다가가기 힘든 영역처럼 느껴진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아 속상하단다. “문화선교는 단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가시적인 결과를 보려고 하지 말고 지속적이고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해나가야죠.” 삼청교회가 이곳에 100년 가까이 있었어도, 담을 허물고 카페를 열고 쉼터와 도서관을 개방하고서야 “아니, 여기에 이런 교회가 있었네?” 한다는 지역주민들의 이야기는 웃지 못할 씁쓸한 우리네 모습이다. 강성혜 교육사는 교회의 공간을 열고 함께 공유하려는 교회의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교회 공간에서 악기교실, 영어동화교실 등을 열기 때문에 교회를 다니지 않는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교회 공간 안에 발을 들여놓게 되더라고요. 교회 시설이 아무리 좋아도 근접하기 어려운 공간이라면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 없거든요. 목회자들과 지도자 그룹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대목이죠.”

정작 가족이 가볼만한 문화공간이 많지 않은 이 땅에 가족이 함께 행복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을 교회가 제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장의 유익은 미미할지라도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교회가 경계를 흐리고 우리만의 공간이 아니길 거부하기 시작할 때에 소통이 가능한 눈높이를 비로소 맞출 수 있지 않을까.


단절과 경직의 담을 허무는 대공사를 시작했던 삼청교회는 이제 소통과 쉼, 유연함을 기초로 하는 새로운 집을 튼튼히 짓게 되었다. 파라솔 있는 벤치와 커피, 그리고 책이 있는 한 폭의 멋진 그림도 걸어 놓았다. 삼청동이라는 지역의 문화에 품위 있게 녹아, 다시 건강하고 새로운 문화를 탄생시키고 있는 삼청교회의 또 다른 날갯짓을 기대해본다.


글. 사진|노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