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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오늘의 생각

지금 우리가 멈춰야 하는 것


지난 5월의 마지막 날들에 필자는 제네바에서 칼뱅 탄생 500주년을 맞아 열린 세계개혁교회연맹(WARC)과 개혁주의 복음주의협의회(REC)의 회의에 참석하였다. 분열을 계속하던 개혁교회들이 가칭 세계개혁교회연합(World Communion of Reformed Church)으로 하나가 되자는 역사적 만남이었기에 참으로 감개무량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 때 한반도에서는 이러한 연합의 흐름과는 대조적인 분열의 위기가 더욱 심화되고 있었기에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전 대통령의 영결식을 상징하는 노란색이 신문의 앞면을 장식하고, 동시에 그 왼쪽에는 북한의 핵실험과 전쟁 상황을 말하는 기사가 있었다. 그럼에도 소위 사회 안정과 경제지표의 중요한 한 측면을 말하여 주는 주가는 하락하지 않고 있었다.

과연 우리 신앙인들은 이러한 모순된 현실을 어떠한 눈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남과 북이 갈등하는 상황, 더욱이 남쪽에서도 정당, 언론, 시민사회, 기업들, 심지어 종교들 사이에서도 관점에 따라 날카롭게 나뉘어져 있는 오늘의 현실은 우리 사회의 위기를 실감케 한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하는 것은 서로가 모두 나름대로의 확신에 가득 차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을 필요를 못 느끼는 듯하다. 그러다보니 각자의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고, ‘말’로 안 된다고 생각하니 ‘힘’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하고 있다. 흔히 우리가 북한의 정책에 대해 ‘벼랑 끝 전술’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 사회 역시 이러한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자신의 입장이 명백히 옳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든지, 아니면 이렇게라도 해야 내 목소리가 들려질 수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리라.

아무리 생각해도 이러한 삶의 양식, 즉 이 문화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문화가 아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먼저 부르라고 하셨다. 그리고 자기 이야기를 먼저 주장하기보다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 것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 후에는 “일용할 양식”을 위한 간구를 하라고 일러 주셨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삶, 일용할 양식을 위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악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면서, 결국에는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과 그 분께만 영광 돌리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부르셨다. 이제 우리는 자신들의 소리와 주장을 멈추고, 주님의 뜻을 먼저 묻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오늘>이 지금의 위기 시대에 ‘쉼’과 ‘안식’을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는 것들이 사실은 자신을 형성한 기존의 세계관, 나아가 문화에 힘입은 바 크다는 사실을 깨닫는 자각이 필요하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오직 은혜로(Sola Gratia)!” “오직 성서로(Sola Scriptura)!”

하나님의 진정한 뜻, 복음을 향한 갈망은 오늘의 위기 속에서도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경이롭고 신비한 세계로 우리를 초대할 것이다. 서로의 다른 주장과 편견으로 인한 갈등 속에서도 ‘오래 참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오히려 이웃의 유익을 돌아 봄’으로써 사회적 공동선(Common Good)을 꿈꾸고 실천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이러한 꿈과 실천은 오로지 하늘로부터 허락되는 ‘사랑’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임성빈|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