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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9 07-08 떠나라, 삶은 여행이다

떠나라, 삶은 여행이다 5 ㅣ 착한 여행, 떠나보실래요?

오래 전, 여행은 ‘비밀을 만드는 일’이라 써내려 간 적이 있었다. 아무리 풀어내도 다 전하지 못하는 언어의 한계에 굴복하고 내린 나만의 정의였다.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은 비밀 한 덩이와 한 덩이가 만나듯 그렇게 미묘한 부딪침이었다. 그즈음 나는, 여행지로 공통점을 애써 찾아내 대화를 이으려는 사람들을 힘들어 했다. 그렇게 여행은 스스로에게도 비밀이 되어갔다. 그리고 최근 비로소 여행은 ‘빚지는 일’임을 깨달았다. 삶이 여행이라면, 왜 사는가, 왜 사는가, 물었던 물음 앞에 ‘ 외상값’이라고 내뱉고 만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여행도 결국 그런 꼴이었다. ‘빚진 자’의 얼굴로 다시 돌아와 반성으로 허덕일 때 쯤, ‘이매진피스’라는 공정여행단체와 평화여행가로 알려진 임영신씨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평화운동’이 아닌, ‘평화여행’으로
‘강물’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그녀는 파마 끼 없는 자연스런 머리칼을 흘리며 강물처럼 흘러왔다. 얼마 전 출간된 책 <희망을 여행하라> 출간기념으로 제주도 올레길 걷는 행사를 마치고 와서인지 더욱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10여년 가까이 NGO에서 일을 하다 2003년 이라크로 날아가 평화활동가로 살아낸 그녀는, 이후 피스보트를 타고 했던 여행을 시작한 걸 계기로 20여개국을 여행했다. 지금은 평화활동가가 아닌 평화여행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직함보다 어느새 이름 그 자체가 더욱 익숙하다. “그동안 시민운동을 했지만 시민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삶과 함께 경계를 넘나드는 운동을 하고 싶었어요. 전쟁의 한복판에 있었던 이라크에서 오히려 평화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연속선상에서 풀어내는 평화를 경험했죠.” 자신은 출장 가듯 비장하게 전쟁지역에 들어갔으나, 이라크 현지인들은 그저 자신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이들을 찾아가더라고. 교사는 전쟁지역의 학교로, 의사는 전쟁지역의 병원으로 가서 일상의 삶을 이어가더라는 거다. “자기가 소통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 거죠. 굳이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도, 함께 있는 거 그 자체가 평화를 이루는게 되는 거예요. ‘we are here with you’하면서요.” 평화란 소리 없이 머무는 친구가 되는 것! 일상에서 스밀 수 있는 평화에 대한 고민은 평화 ‘운동’이 아닌 ‘여행’으로 언어를 치환하게 했고, 이는 ‘이매진피스’라는 단체가 만들어지는 출발점이었다. ‘평화’라는 거대한 담론과 ‘여행’이라는 미시적 일상이 만나 그 경계를 넘나드는 것. 평화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희망을 여행하라’ 출판기념회


공정 여행이 만들어가는 더 좋은 세상
이매진피스는 2006년 가을, 이런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기반으로 모이게 됐고, 2007년 공정여행 카페를 온라인상에 열면서 출발했다. 단, 조직화시키지 않고 긴 호흡으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자는 것이 그들의 약속이었다고. ‘평화’라는 렌즈로 한국의 여행문화를 들여다보니 여러 가지로 문제가 많았다. 히말라야 산을 오르면서 무리한 짐 꾸리기로 네팔 현지인 가이드의 몸을 상하게 하며 여행하는 한국인들이 있는가 하면, 태국의 코끼리들이 공연 한번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어내야 하는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만의 여행을 즐기기도 한다고. “여행은 사적 경험에 국한되지 않아요. 여행은 하나의 산업이고 국제적 정책이죠. ‘내 돈 내고 하는 내 여행인데’하는 생각은 여행을 사적 경험으로 축소시켜요. 나쁜 여행으로 간주 되죠. 여행은 소비가 아니라 만남이고 관계니까요.”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즐기는 여행이 어느 누군가에게, 혹은 어떤 자연에게,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 지구에게 심각한 피해가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착한 여행’ 혹은 ‘공정여행’의 길로 이끌었다. 그렇다고 쉼을 얻고자 떠나는 여행에서 부담스러운 규범을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다고 할 때요. 강정마을이라는 곳을 지나게 되는데 지금 그 마을은 해군기지 유치를 반대하는 깃발들로 가득 차 있거든요. 올레길만을 따라 걸으면 그냥 지나쳐도 되는 곳이지만, 잠시 강정마을로 내려와서, 일을 젖혀두고 마을 회관에 모여 있는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도 들어보고, 사진도 찍고, 블로그에도 올리면서 ‘소통’하는 여행을 하는 거죠. 해군기지 문제를 거시적으로 풀 수 있는 힘이 여행가들에게는 없지만, 이러한 작은 소통을 일으킬 수 있는 미시적 안목은 있잖아요. 평화여행, 공정여행은 바로 그런 거예요.” 그 미시적 소통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음을 우리는 이미 보고 있다.

희망을 여행하라   이매진피스 임영신ㆍ이혜영|소나무

이매진 피스에서 공정여행 가이드북으로 지난 6월 발간된 따끈따끈한 책이다. ‘새로운 여행에 대한 즐거운 상상’이란 부제목답게 인권, 경제, 환경, 정치, 문화, 배움 등 여섯 가지의 시선으로 여행을 바라보고 공정여행 스토리, 공정여행팁, 공정여행 루트, 새로운 여행과 여행자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어디로’가 아닌 ‘어떻게’ 떠날지를 생각하는 여행이 되어야 한다는 고민, 함께 시작해보자.


여행으로 그리는 세계지도
최근 발간된 책 <희망을 여행하라>는 그동안 활동하고 고민해온 이매진피스의 결과물이자 또 다른 출발점이다. 같이 활동해 오던 한 쌍의 커플이 결혼을 했고, 이 커플이 ‘희망의 지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세계 일주를 떠난 것이다. “여행으로 세계지도를 그려보고 싶다는데서 출발했어요. 어학연수가 보통 3천~5천이 든다죠. 세계 일주는 최소 2천이에요. 인생의 전환점을 여행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자기의 자리에서 희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곳곳에 많구요. 그렇게 세계여행을 원하는 친구들을 위해 시작했어요.” 주제를 잡고 여행자의 정보를 모아 도움을 주고자 고민하며 여행 중 인터뷰를 통해 또 다른 시선을 맛보는 일, 그래서 ‘희망의 지도 프로젝트’는 미완성이다. 앞으로도 언제 완성될지 모르지만 서두르지 않는다. 그게 바로 여행의 호흡이라고. 행동만이 오롯이 살아 숨 쉬는 여행이 주는 벅차오름. 그건 가만 생각해보면 그녀의 반복된 말처럼 일상, 삶과 직결된다. 그녀는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자신은 더 이상 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했단다. 그동안 보고 들은 걸로 살기도 벅차다는 고백. 꿈꾸는 사람들을 찾고 모아 진정 그 꿈을 살아낼 수 있도록 돕는 자리. 그녀의 자리가 고스란히 희망을 여행하는 중이란 생각이 든다. 떠나지 않은 여행이면서 동시에 매순간 도착하는 여행. 그 일상이 희망을 입을 때, 우리를 가슴 뛰게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늘 이별에 서툴러 ‘빚진 자’의 모습으로 돌아서야 했던 나를 안아, 이미 완성되었기에 축복받은 미완성인 나의 여행을 되새긴다. 희망의 빛을 짊어진 나와 너의 등장이, 서로의 빚을 탕감해줬음을 믿으며. 이제, 긴 호흡을
내쉰다.
글 신정은 | 사진 노영신

공정여행(Fair travel)이란?
여행에서 쓰는 돈이 그 지역과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되는 여행, 우리의 여행을 통해 숲이 지켜지고, 사라져가는 동물들이 살아나는 여행,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경험하는 여행, 여행하는 이와 여행자를 맞이하는 이가 서로를 성장하게 하는 여행, 쓰고 버리는 소비가 아닌 관계의 여행이다.

공정여행자가 되는 10가지 방법
1. 지구를 돌보는 여행 : 비행기 이용 줄이기, 1회용품 쓰지 않기, 물을 낭비하지 않기
2. 다른 이의 인권을 존중하는 여행 : 직원에게 적정한 근로조건을 지키는 숙소ㆍ 여행사를 선택하기
3. 성매매를 하지 않는 여행 : 아동 성매매, 섹스관광, 성매매 골프관광 등을 거부하기
4. 지역에 도움이 되는 여행 :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 음식점 가이드, 교통시설 이용하기
5. 윤리적으로 소비하는 여행 : 과도한 쇼핑 하지 않기, 공정무역 제품 이용하기, 지나치게 깎지 않기
6. 친구가 되는 여행 : 현지 인사말을 배우고 노래와 춤 배우기, 작은 선물 준비하기
7. 여행하는 곳의 사람과 문화를 존중하는 여행 : 생활방식, 종교를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기
8. 고마움을 표현하는 여행 :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말할 줄 아는 마음 갖기, 사진을 찍을 땐 허락을 구하고, 약속한 것을 지키기
9. 기부하는 여행 : 적선이 아니라 나눔을 준비하자. 여행 경비의 1%는 현지의 단체에!
10. 행동하는 여행 : 동식물을 해치는 일, 매춘 등 현지에서 일어나는 비윤리적인 일에 항의하고 거부하기, 세상을 변화시키는 여행

출처: 이매진피스


이매진피스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85-1 2층
www.imaginepeace.or.kr
평화여행, 평화행동, 평화교육, 평화놀이터를 열어가며 사람, 관계 속에서 평화의 그물망을 만드는 네트워크. 2006년부터 어린이, 청소년 평화교육과 분쟁지역에 평화도서관 만들기, 평화를 배우는 여행을 해오고 있다.
공정여행카페
http://cafe.naver.com/fairtravel
희망의 지도카페 http://cafe.naver.com/hope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