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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유니스의 정원 ㅣ 정원을 가꾸듯, 낙원을 꿈꾸듯


혹독했다. 모두의 낙원을 꿈꾸다 몸을 던진 이를 견뎌내야 했던 지난 늦봄은. 도저히 초여름이라고 가볍게 불러줄 수 없을 것만 같던 시간, 한 계절의 끄트머리를 매여잡고 자그마한 정원을 찾아 나섰다. 그즈음 나는 한 사람의 작은 뜰 ‘정원’이 모두의 즐거운 ‘낙원’이 될 수 있다고 확인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작게 꾸민 당신의 정원이 차라리 우리에겐 커다란 낙원이었노라고 뒤늦은 고백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의 몸이 고향을 떠난 시점, 나도 서울을 출발했다. 낙원으로부터의 도피가, 다시 나를 낙원으로 도착하게 하리라 믿으면서. 그렇게, 5월의 마지막 금요일이 가고 있었다.  글ㆍ사진 신정은

허브향원

건강을 입은 공간

유니스의 정원은 서울에서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행정주소상 안산시 상록구 팔곡동. 이름을 가만히 보면 가히 문화공간으로서는 최적의 장소다. 편안한 산(안산시)에 항상 초록인(상록구) 여덟 개의 골짜기(팔곡동)이지 않은가. 거기에 더해 반달을 품은 물, 반월호수를 끼고 있으니 정말 좋은 건 다 챙겼다. 이토록 충분한 공간이 서울 근교에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 그렇게 모든 ‘있음’은 이미 충분한 것이라고 얘기하는 듯하다. 입구를 지나 처음 만나는 곳은 ‘the picnic table’이란 카페다. 호젓한 테라스에 여유롭게 거리를 두고 놓인 테이블들이 시원한 웃음처럼 사람을 반긴다.
이 카페에선 홈 메이드 디저트 메뉴들을 만날 수 있다. ‘정원의 오후’, ‘꿀벌의 휴식’, ‘사과나무의 꿈’같은 유기농 차들은 그 이름만으로 입 안 가득 달콤함이 머물고, 정원에서 수확한 허브로 직접 만든 수제 아이스크림은 가슴 속까지 청아한 공기를 마시는 듯하다. 그 뿐 아니다. 카페와 연결된 선물가게에는 허브 힐링 용품들이 즐비하고, 꼭 허브가 아니더라도 나무, 돌, 흙 등을 이용한 자연소재 핸드메이드 제품들을 만날 수 있다. 마치 색동저고리처럼 사이좋게 놓인 색색들이 물건들. 널뛰기 하는 아이처럼 저마다 튀어 올라 손님의 눈에 들려고 애쓰는 것만 같다. 가장 높이 튀어 오른, 눈에띄는 놈을 하나 턱 잡는다. 누군가의 선물로 제격이다. 그렇게 동심 같은 예쁜 맘 하나를 꿀꺽 삼킨다.

자연을 호흡하는 쉼
선물가게를 나서면 레스토랑 ‘the grill’과 연결된다. 카페와 다르게 코스 요리를 맛 볼 수 있는 정통 레스토랑으로, 역시 허브를 이용한 스테이크, 바비큐와 같은 그릴요리를 포함해서 간편히 즐길 수 있는 파스타까지 선보인다. 특히 레스토랑 안에도 나무를들여놓아 숲 속에서 즐기는 만찬처럼 느낄 수 있게 한 배려가 돋보인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식사, 그보다 맛있는 공기가 어디 있겠는가. 숲에서 즐기는 꿀맛 같은쉼. 그러고 보니, 레스토랑(restaurant)이라는 단어엔 ‘휴식(rest)'이 숨겨져 있다. 부른 배를 소화시키기 위해 본격적인 산책로가 시작된다. ‘허브 향원’을 시작으로 ‘바람의 정원’, ‘숲속 그늘 쉼터’로 이어지는 긴 산책로다. 걸음 하나씩 뗄 때마다 피어오르는 생각을 키우고, 땅에 디딜 때마다 생각을 끊어낸다. 바람처럼 날마다 여행을 떠나는 영혼을 놓아주고 허브의 향기로 취하게 해 다시 붙잡아 둔다. 이 지난한 반복이, 여기 작은 정원에서 반복되듯, 거기 당신의 낙원에서도 반복되는 건 아니냐고 허망한 질문으로 원망해 본다. 문득 멈춰선 ‘숲속 그늘 쉼터’엔 텅 빈 그네 의자가 놓여 있다. 결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끌려 돌아가는 그네의 움직임이 야속하다. 그 반복을 더 이상 억울해하지 않기로 오래 전 약속했음에도 오늘 만큼은 그 약속을 잊겠다며 털썩 앉아본다. 두 발이 땅에 닿는다. 그네를 타기 위해선 땅에 발을 굴러야만 한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그네의 일정한 진폭 같은 우리네 삶, 발을 구르면 바람이 인다. 스치듯 두 뺨을 두드리고 지나가 뒷목을 감싼 바람의 무게. 이내 고개를 떨군 채 툭 내뱉는 말, 항복이다.


새들의쉼터

투박한 정성을 채우다
어김없는 그네의 움직임처럼 틀림없이 찾아오는 존재함의 서러움을 직면하는 일. 그건 어쩌면 자연스런 호흡일 게다. 생의 한가운데, 그런 지점을 지나지 않는 만물이 있다면 그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을 터. 문득, 어느 영화 속에서 강하게 남던 이미지 ‘발 없는 새’가 떠오른다. 생의 고단함을 처절하게 드러내는 이미지지만, 동시에 묘한 자유가 요동친다. 그래, 산다는건 그렇게 요상한 거다. 고통 속의 평온, 슬픔 속의 기쁨, 비통 속의 환희처럼. 고개를 드니 한가득 새장이 즐비하다. ‘발 없는 새’들도 쉬어갈 수 있을 만큼 친절한 모양새다. 바로 ‘새들의 정원’. 사실, 유니스의 정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이 여기다. 정원 전체가 따뜻함이 물씬 느껴지는 손때가 묻어 있지만, 무엇보다 이곳엔 나무로 만든 새집들이 그 멋을 더하기 때문이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새집은 저마다 방향이 제각각이다. 무엇보다 출입구의 방향이 다 다르다. 어디로 날아가는지, 어디서 출발했는지 새집은 침묵한 채로, 제 주인을 기다린다. 새장과는 다른 새집. 인간의 손으로 만든 서투르고 투박한 정성을 자연이 보듬어 주는 셈이다. 정원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다시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는 입구 건물에 도착한다. 그제야 유니스의 정원 브랜딩 컬러가 보인다. 바로 분홍빛과 연두빛. 꽃과 풀잎의 색 같은 이 두 가지 색의 대비는 건물이 정원으로 확장되고, 정원이 건물에 물들어가는 듯 묘한 조화와 대조를 이룬다.


어느 인디언 부족에게 7월은 ‘천막 안에 앉아 있을 수 없는 달’이라고 한다. 하늘도 구름도 공기도 바람도 엉덩이를 들썩이는 계절. 그 완연한 여름을 알리는 지혜의 말일 게다. 한마디로 소풍 떠나기 좋을 때. 갑갑한 집을 나와 그저 조물조물 짐을 챙겨 떠나보자. 포근한 햇볕에 가슴이 뛰는데 문득 옆을 지켜 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 말하기 부끄럽다면, ‘소풍’이 안겨 주는 ‘작은 바람’이 당신의 말을 대신해 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그 착한, 바람의 말을 듣는 사람이, 지금 내 곁에, 우리 옆에, 살아있지 않은가. 문득,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떠나는 날’이라고 말했던 천상병 시인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아니, 마음의 바닥에서 솟아난다. 작은 ‘바람’을 품다 ‘작은 바람’을 끝낸 그와 함께. 비로소 정원은 낙원이 된다.

유니스의 정원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팔곡일동 163-2
031-437-2045
www.eunicesgarden.com


유니스의 정원에서 만나는 또 다른 공간

the picnic table
유기농 차와 홈메이드 디저트가 주 메뉴 인 유니스의 정원 안의 카페. 각종 허브티와 커피 등의 음료를 비롯 샹그리아와 허브 칵테일까지 취급한다. 허브를 이용한 홈메이드 쿠키와 생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이 무엇보다 압권.



the grill
홈메이드 컨트리푸드 레스토랑. 스테이크, 파스타, 야외 바비큐와 샐러드를 비롯 정통 코스요리까지 즐길 수 있다. 특히 평일 점심에는 할인된 가격으로 맛 볼 수 있는 게 특징. 단, 평일엔 3시까지만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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