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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매거진<오늘>/문화선교연구원

사람사는 세상,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의 마커스와 존 코너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살고싶은 기계 _ 인조인간 마커스
난 실패에 익숙한 사람이다. 결국
이 바닥에서는 끝난 인생이라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모두들 내가 그렇게 사라질 거라고 수군거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죽은 줄 알았던 나는 누군가에 의해서 다시 태어났다. 엄청난 힘도 생겼다. 누구보다 빨리 뛸 수 있고, 웬만한 무기로도 나를 해칠 수 없게 되었다. 기적이 일어난 거다. 덕분에 두 명의 아이를 살릴 수 있었다. 참 행복했다. 내 능력을 이렇게 사용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후로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이미 기계들이 온 땅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우리 편이냐 아니냐’ 양자택일만을 요구했다. 미친 듯이 톱니바퀴처럼 신속정확하게 살든지, 낙오자로 남든지, 그 중간은 없다.
기계들은 바벨탑을 세워놓고 사람들을 가두어 놓았다. 내가 구해준 아이들도 포로로 잡혀있는 게 분명하다. 난 차가운 금속음이 아닌 온기와 노랫소리를 듣고 싶었다. 놈들은 그 훈훈함을 위험하다 여겼던 게 분명하다. 생각해 보라! 어린아이의 웃음, 작은 촛불에 바이러스라는 딱지를 붙이는 세상을…. 땅 위에서 아름다움을 제거하는 게 그들의 본능이었다. 마구잡이로 다 잡아들였다. 나도 우여곡절 끝에 그들의 심장부에 들어갔다. 그건 엄청나게 거대한 시스템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몇 개의 고철덩어리를 이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어마어마한 힘을 과시하면서 나에게 권유, 아니 협박을 했다. 난 기계라고…. 자기들이 만든 작품이라고,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폼 나게 살자고, 인간들의 편에 서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했다. 혼란스러웠다. 그럴 듯한 유혹이었다. 그런데 내 속에서 더 진한 소리가 들려왔다. ‘넌 기계가 아니야. 넌 인간이라고! 선택할 수 있어.’
그래, 난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게 무모한 짓이어도 괜찮다. 결국 이 싸움은 나에게 모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내 목숨과 바꿀 정도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적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아니라 반란군의 정신적 지주 ‘존 코너’이고, 아직 젖비린내 나는 소년이지만 장차 코너의 아버지가 될 ‘카일’이었다. 그들을 지켜내야 한다. 이길 수 있냐고? 솔직히 모르겠다. 난 단순해지기로 했다. ‘존’과 ‘카일’만 보호할거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다. 지금은 너무 희미하게 보이지만 인간구원에 대한 전설, 그 예언이 이루어지기를 믿고 싶다.

우리가 인간인 이유는 _ 반란군의 지도자, 존 코너
다 끝났다. 핵이 터지고 그 아름답던 풍
경이 불타 잿더미가 되었다. 우리가 만든 것들인데, 다 편하자고 더 잘 살자고 한 짓인데, 이것들을 종처럼 부리려고 한 건데…. 이제 기계들이 우리를 지배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이것을 주도하고 시작한 이들, 박수치며 지지를 보낸 이들이 있다. 땀 흘리며 살기 싫다고 했다. 해가 지면 집으로 들어갔고, 주말이면 쉬어야 한다고 아우성쳤다. 휴가도 줘야 하고, 적당히 사기도 북돋아 줘야 한다. 인간들은 너무 복잡했다. 비효율, 그 자체였다. 하지만 기계는 달랐다. 명령을 내리면 무조건 움직인다. 말대답도 없었고 무엇을 하든 설득할 필요도, 마음을 얻기 위해서 안색을 살필 이유도 없었다. 무엇보다 사람을 키운다는 건 긴 기다림,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지만 기계는 바로 찍어내면 된다. 망가지고 찌그러지면 바로 버리고 다른 것으로 대체했다. 여기에 쓸데없는 죄책감이나 책임, 윤리 같은 것들이 거추장스럽게 따라오지 않았다. 세상이 실용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낙원이 다가올 줄만 알았다. 그러나 얼마 후 온 땅이 무쇠팔, 무쇠다리로 넘쳐났다. 그러자 마징가들은 우리가 약해 빠졌다고 호령했고, 쉴 새 없이 사람들을 몰아붙였다. 그놈들은 양심도, 이성도, 감정도 없었으며, 24시간 내내 달리고 뛰어도 전혀 지치지 않았다.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실용적이라는 말이 기계적이라는 단어와 비슷한 말임을 뼈저리게 알았다. 깨끗한 공기도, 맑은 물도, 푸른 숲도 다 시커멓게 변했지만 힘든 건 인간뿐이다. 그놈들은 환경이 어떠하든지 잘 살았다. 난 어린 시절부터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말을 지겹게 들어왔다. 그건 이상적인 개똥철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반드시 추구해야만 하는 사실이다. ‘진리’는 저 멀리 하늘 위에 반짝이는 장식품이 아니라, 내 발밑에 그것을 깔고 있어야만 제대로 서 있을 수 있는 발판과 같은 것이다. 이대로 죽을 순 없기에 저항군이 생겨났다. 긴 시간 투쟁해 오면서 너무 오래 푸른 바다를 보지 못했고, 싱그러운 꽃향기를 맡지도 못했다. 아기들의 칭얼거림과 여인들의 미소도 볼 수 없었다. 그러자 인간들도 얼음처럼 변했다. 이런 변화를 ‘타락’이라고 말하지. 터미네이터의 본부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잡혀있다. 저항군의 윗대가리들은 약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며 공격명령을 내렸다.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케케묵은 명분을 들이댄다. 언제나 희생당하는 소수에 윗대가리들은 빠져있다. 이럴수는 없다. 절박한 마음으로 흩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 말을 듣는 사람들은 저항군이다. 우리가 공격하려는 곳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갇혀있다. 부탁이다. 내일 아침까지만 폭격을 참아 달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은 무조건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 이상 ‘존 코너’였다.”
인간은 설득이 통하는 존재이다. 감동하고 눈물 흘리고 고민한다. 기계는 절대로 흉내 낼 수도 없는 힘이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은 내 말에 반응함으로 로봇이 아님을 증명했다. 징글징글한 전쟁은 우리들이 인간성을 얼마나 지켜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그놈들이 가지지 못한 유일한 무기인 ‘영혼과 심장’을 도려내고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싸움에서 이겨도 보고 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두려움과 떨림을 느낀다. 철없던 시절에는 이게 우리의 약점인 줄 알았다. 어떤 감정의 요동도 없는 저놈들에 비하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그러나!!! 우린 인간이다. 윗대가리나 매뉴얼이 없어지면 자동적으로 흩어지는 기계와는 수준이 다른 존재이다‘. 존 코너’가 사라진다고 저절로 게임이 끝나는 게 아니다. 녀석들, 명백한 전력의 차이에도 끝없는 연
장전이 이어지는 이유를 모를 거다. 명령과 굴종 밖에 모르는 것들은 아무리 분석해도 알 수가 없을 거다. 난 내 말에 의문 섞인 피드백이 돌아올 때 오히려 희망을 본다. 약함과 강함은 이렇게 공존하는 것이다.

김창호|입가에는 웃음을 터트리며 기쁨을 누리고, 눈가에는 눈물을 담고 이웃에 아픔에 공감하며 살고 싶은 사람. 본명보다는 ‘짱오’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주중에는 ‘대학로 동숭’에서 젊은이들을 만나고 있고, 쉬는 날에는 ‘광나루 상담나라’에서 놀듯이 공부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