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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오늘의 생각

교회, 영화에 말 걸다

영화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교회는 영화를 복음 전파의 도구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로 영화가 신앙전파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그 자체로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 시작하자 교회는 영화를 의심의 눈으로 경계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신앙적인 것보다는 세상적인 재미로 향하게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미국의 경우 경제 불황기를 맞아 영화계가 존폐의 위기에 놓이자, 영화는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선정성과 폭력성의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교회는 이러한 영화에 대하여 적대시하게 되었고, 결국 검열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을 주도하게 되었다. 대중들을 미혹하여 대중문화를 타락시킨다는 것이 그 주요한 이유였다.

오늘날 보편화된 등급제는 영화계에 대한 교회의 우려로부터 비롯된 사회적 합의의 과정과 결과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영화와 교회의 만남은 ‘영상을 통한 표현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 사이에서의 충돌과 타협으로 상징되는 편치 않은 만남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사적 배경을 고려할 때, 신앙인들이 교회의 도움을 받아 영화제를 연다는 것은 매우 의미가 깊은 사건이다. 우리는 9월 17일부터 일곱 번째 ‘서울기독교영화제’를 만나게 된다. 영화를 단순한 복음 전파의 도구로 생각하는 입장과 신앙의 걸림돌로 적대시하는 입장으로 갈리었던 교회와 영화의 관계가 이제는 전혀 다른 상황에 놓이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기독교영화제의 존재는 이제 교회가 영화를 심각한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게 되었음을 말한다. 이러한 진지한 대화는 교회와 영화의 공통적인 관심의 대상이 ‘이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이처럼 사랑하신”(요 3:16) 세상 안에 존재하면서, 이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의 목적이자 사명이다. 한편 영화는 세상의 작은 소리, 작은 몸짓 하나 하나를 다양하게 반영하여,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의 다양성을 볼 수 있게 하여 준다. 또한, 이 세상의 한계를 인식한 이들이 꿈꾸고 욕망하는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게 한다.

나아가 이제 교회는 영화에 대하여 진리를 향한 동반자로서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모색하고 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 이 세상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를, 교회는 영화를 통하여 더욱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영화가 욕망하고 꿈꾸는 다른 세상의 실체를, 교회를 통하여 증거 되는 하나님 나라에서 바로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에, 올해에도 우리의 발걸음은 ‘서울기독교영화제’로 향할 것이다.

이 세상 안에 살면서도, 이 세상에는 속하지 않는 삶! 하나님 나라에 속한 시민이면서도, 동시에 이 땅의 시민인 기독시민으로서의 이중적 정체성! 우리는 오늘 이러한 삶의 구체적 모습들을 영화와의 만남을 통하여 모색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초반에 우리가 꿈꾸는 영화와 교회의 새로운 만남이다.

임성빈(서울기독교영화제 집행위원장, 문화선교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