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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읽다/TV 상자 펼치기

TV 상자 펼치기 4 | 대한민국, ‘토론’으로 들끓다

쇠고기 수입협상으로 촉발된 이른바 촛불정국이 계속된 지난 석 달은 토론의 꽃이 피어난 시간이었다. 촛불집회의 근원지인 온라인 토론 광장인 다음 아고라에서는 집회의 구체적인 지향점과 앞날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TV 토론 프로그램도 유례없는 관심의 대상이었다. MBC TV <100분 토론>은 평소의 배에 가까운 최고 6%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와 더불어 토론 패널들도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시청자 전화 참여를 통해 미국의 평범한 주부가 야무진 문제제기를 해 하루아침에 스타로 떠오르는가 하면, 부정확한 정보로 집회 참가자의 명예를 훼손한 주성영 한나라당 의원은 당장 인터넷에서 오명을 뒤집어썼다. 이처럼 최근의 TV 토론프로그램들은 온-오프라인이 결합된 양상으로 상승효과를 일으키며 대중들의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

건강한 논쟁인가
‘토론’이라는 이름표를 달고는 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 토론 프로그램들의 토론 양상은 토론이라기보다는 논쟁에 가깝다. 스튜디오의 테이블 배치에서부터 양쪽으로 갈라 편을 딱 나눠놓는 <100분 토론>은 한 사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해서 어떤 결론을 이끌어 낸다기보다는 양쪽의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종종 어떤 합의점이나 결론을 찾기보다 그저 양쪽의 갈등만을 드러내려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토론프로그램이 어떤 결론을 찾아야 한다는 목표를 가진다면, 그것은 한편으로 의도된 결론의 도출을 위해 자유로운 공방의 여지를 얽어맬 가능성이 있다. 즉 한 사안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양측의 차이를 명확히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합의를 향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100분 토론>과 같은 대결 방식이 긍정적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논쟁이 지나치게 말싸움으로 흘러 건전한 대결에서 멀어질 때다. 흔히 인신공격과 정확하지 않은 근거, 그리고 서로 다른 전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등의 오류를 범함으로써 토론은 종종 초점을 잃는다. 사회자가 발언의 기회를 공평히 부여한다거나 찬반의 의견을 골고루 소개하는 등의 기계적 공정성을 발휘하려는 것과는 별개로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하거나 관련 없는 ‘튀는’ 비유를 하거나 동문서답을 반복하는 의미 없는 토론으로 흐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잘못된 토론 방식의 폐해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잘못된 토론 방식의 폐해
최근 케이블 TV에서 새롭게 시작한 <끝장토론>은 기존 토론 프로그램들이 방청객들을 소극적으로 활용하는데서 과감히 탈피해 방청객들을 적극적으로 토론에 끌어들인다. 기존의 토론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이나 방청객들이 아쉬워했던 기계적인 중립성을 과감히 벗어난 장점이 돋보이는 이 프로그램은 의도된 거칠음으로 방청객들이 일어서서 자유롭게 토론을 벌이도록 한다. 하지만 이들의 토론은 끝없이 남의 말을 자르고 끼어든다거나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목소리를 키워 자신의 주장만을 거듭한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것은 논리적인 근거 없이 토론의 상황에 대해 끝없이 비유만으로 일관하는 토론방식이다. 의미 없는 말싸움만을 반복하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시청자들이 토론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왜곡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점은 TV에서 계속해서 토론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어야 할 이유를 뛰어넘지 못한다. 거친 형태이든 잘못된 논쟁의 형태이든 공공의 토론의 장은 계속 확대되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논리학이나 말하기 교육을 제대로 받아오지 못한데다 토론의 장을 충분히 가져보지 못한 우리 사회에서 TV와 온라인의 활발한 토론은 좀 더 논리적이고 건설적인 토론을 만들어 나가는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윤정|일간지 기자로 10년 일하고 영화판을 잠시 기웃거렸던 경험으로 영화칼럼리스트로 글을 써왔고, 최근엔 TV로 눈을 돌려 TV 평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