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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아름다운 당신의 오늘

잘 놀 줄 아시나요? l 놀이연구가 편해문


“우리를 심심하도록 좀 내버려두세요.”라고 외치는 아이가 있다. “어른들은 일만하지 말고 좀 노세요.”라고 부탁하는 어른이 있다. 가끔은 아이로, 때로는 어른으로 그렇게 ‘10년 잘 놀았다’ 고백하는 사람, 편해문 씨. 놀이공부 10년째 되는 어느 날, 그는 위와 같은 ‘놀이 십계명’을 만들어 내며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라는 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그래서 그렇게 가벼웠다. 마냥 아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어서. 아이들의 놀이를 찾아다니다 아이들이 세상에 오는 이유까지 알아낸 그의 천국에 초대된 게 기뻐서.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도 “노는 거지, 이것도.” 하며 시작했다.  글·사진 신정은

놀이 , 살아가는 힘이 되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그는, 우리 것에 대한 공부를 위해 검정고시로 안동대 민속학과에 들어갔다. 그 이후 옛노래, 옛이야기를 수집하며 <깨롱깨롱 놀이노래>, <아기를 주시는 삼신할머니>, <산나물아 어딨노>등 연구서적까지 합쳐 십 여 권의 책을 냈고, 놀이와 아이에 집중하면서 느지막이 유아교육을 전공하기도 했다. 안동에 터를 잡은 지 벌써 7년이 됐다고.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안동까지 오게 된 이유를 그는 짤막하게 ‘살려고, 살고 싶어서’라고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무슨 힘으로 살아가나, 고민해 봤어요. 견디기 힘든 세상이잖아요. 그런 힘들이, 견딜 수 있는 힘들이 어디서 올까. 그건 놀이의 힘이었어요. 어릴 때 신나게 논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 삶의 고비마다 힘들 때, 그 힘을 꺼내 쓰는 거죠.” 전래 동요를 찾으러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놀이로 이동했다는 그는, 놀이와 노래가 따로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원형을 찾으러 가는 과정에 참여하면서‘원래 놀이의 모습이 이런 거구나.’라고 확인했다고. 그건 바로 어른이 되어 꺼내 쓸 수 있는, 꺼내 써야 하는 놀이가 축적시킨 힘이었다. “어른들이 세상에 대해 처절하게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잘 노는 거예요. 나이 들어 놀게 없으면 더 쓸쓸해지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여가와 놀이는 달라요. 돈 들이고 노는 게 아니거든요.”


잘노는 삶은 ‘자유’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 잘 노는 것일까. 영화 <왕의 남자>의 엔딩처럼, 줄타기를 하며 “한판 잘 놀아보세!” 외치며 출발해도, 이런저런 굴곡에 억지로 견디며 사는 인생사가 얼마나 많은데. ‘인생사, 한판 잘 놀다간다’는 그 초월한 듯한 말투에 주눅들 때도 있지 않은가. 우리네 길 가끔은 그렇게 가로놓이기 마련인걸.
“잘 논다는 건, 자유와 같은 말이에요. 실제로 아이들은 놀이에 몰입해 자유를 탐험하고, 동시에 평화를 체험해요. 즉, 잘 노는 어른들은 자기 결을 찾아가는 사람들이에요. 자기 삶에서 자유를 경험하는 거죠.” 어른들의 놀이라는 게 고작 술 마시는 것 밖에 없다는, 그거야 말로 정말 못 노는 사람들의 전형이라며 쓸쓸한 현실을 기억해낸 그는, 잘 논다는 건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이라 했다. 그런 놀이를 통해 자기다움의 본성을 찾아가는 길이며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노는 것, 이라고. 그렇게 보면 잘 노는 어른은 어릴 때 잘 놀았던 어린 시절을 간직한 사람이란 거다. “고무줄놀이를 생각해 보세요. 처음엔 높이 들면 안 되죠. 가장 낮은 단계에서 시작해요. 점점 높아지면서 한계를 경험해요. 그런데 나중엔 돼요. 안 되는 걸 되게 하는 거죠. 심지어 ‘깍두기’도 있어요. 이건 약자와 함께 놀수 있는 놀이가 가진 배려와 포옹력이자 동시에 공격력을 높이는 역할을 해요.” 그랬다. 놀이에는 고비마다 그한계를 넘어 다른 세계를 열어가는 지점들이 늘 있다. ‘땅따먹기’ 같은 금 놀이에도 금을 넘어가면 죽는다는 설정의 아찔함이 있고, 다음 판에 다시 살아나는 장치들이 늘 있다고. “그렇게 안 되고, 되고, 죽고, 살고 하면서 ‘계속 해보면 될 거야.’ 라는 마음이 키워지죠. 바로 긍정의 마음이에요.”

가족과 함께 , 그러나 자기 결대로
살아온 이야기가 놀이에 대한 이야기의 다름 아닌, 그의 인생의 지도는 그저 놀았기에 그릴 수 있었던 지도였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 10년도 더 잘 놀 것이라고. 더 잘 놀아야 한다고 말한다. “얼마 전엔 연구원으로 같이 일하자는 프로젝트 일거리가 들어왔는데, 아내가 때려치우래요. 그 돈 없이도 산다고. 이런 아내 없죠.” 그렇게 잘 놀았다고 고백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나보다. 서로의 맑은 얼굴을 닮아 더욱 오붓해 보이는 세 가족은 그렇게 편해문 씨의 힘이 되고 있었다. “딸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도 없어요. 우리와 딴 사람인걸요. 자식을 분신처럼 애완동물 사랑하듯 하는 부모들, 그거 다 거짓말이에요. 자기 결이 있겠죠. 자기 결대로 살아가면 돼요. 어차피 모두 빌려서 온 존재들인걸 뭐. 난 요즘은 아이 엄마 결을 본받으려 해요.” 부부는 정말 닮아가는 사인가보다. 요즘은 아내가 피아노 반주를 하고, 아이들과 함께 전래 동요와 놀이를 함께하는 콘서트 형식의 공연을 하고 있다고.
“놀이를 가르치진 않아요. 아이들에게 지금 놀게 안하면 부모 역할 안하겠다는 거죠 뭐. 이건 할 수밖에 없는 차원의 것이에요. 놀이는 이야기의 단계를 넘어 노래를 넘어 춤이자 몸짓이거든요. 즉 자기 내면의 표현이에요. 놀이엔 노래가 있고 춤이 있고, 이야기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야기, 책이 우선이 아닌 거지.” 그의 이름 속엔 해와 달(moon)이 있다. 하늘의 고마운 변덕을 온통 끌어 안아버린 사람이기 때문이었을까. 그의 삶은,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참여해 온 흔적이 보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길로 통합된 모습이었다. 마침 겨울을 보낼 장작들을 들여왔다며, 그 작은 일에 행복해하는 그의 얼굴엔 하루를 잘 살아내고, 1년을 잘 살아낸, 그리하여 10년 세월을 견딘 기쁨이 살아있었다. 때론 낱낱이 흩어져버린 파편 같은 삶의 조각들을 하나로 꿰어 ‘ 지금’이라는 그림을 그린 사람. 그렇게 우리네 삶은 모자이크 같다고 생각이 들 때쯤, 갑자기 그는 가족과 함께 구들의 온기로 말려 놓은 고추를 다듬는 놀이를 시작했다. 우리의 만남도, 서로에게 모자이크 한 조각이 되어 끼워졌음에, 감사하며 같이 놀아버렸다. 손끝에 남은 말린 고추 냄새가, 만남의 향기라는 걸 깨달았을 땐, 서울에서 여러 번의 해와 달을 만난 후였다. 자꾸만 고개를 들게 되는 가을이, 그 하늘이, 또 만남을 낳는다. 내겐 놀이 같은 만남을.




1. 우리는 밖에서 놀고 싶어요. 실내나 울타리 안에 가두지 말아 주세요.
2. 우리들끼리 동무들과 놀고 싶어요.
3. 우리끼리 놀 때는 끼어들거나 관찰하거나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4. 우리들이 심심하도록 좀 내버려 두세요. 우리 스스로 놀래요.
5. 우리에게 놀이 밥을 주세요. 놀면서 배우면서 몸도 마음도 커요.
6. 우리는 놀 때 가장 행복해요.
7. 우리에게 시키지 말고 도와주세요. 어른들이 시키는 놀이는 공부 같아요.
8. 우리를 사랑한다면 안전한 놀이터와 한가한 시간을 주세요.
9. 우리는 엄마 아빠 동무들과 놀고 싶지, 물건이나 장난감 교구들과 놀고 싶지 않아요.
10. 어른들도 일만 하지 말고 좀 노세요. 일만 하는 부모가 아이들 공부만 시킨대요.


소꿉 (Children’s Playing House)   편해문|고래가그랬어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인도와 네팔 등지를 오가며 ‘놀이에 빠진아이들’ 을 사진으로 답은 사진집이다. 어디를가나 우리나라 아이들 놀이와 비슷한 놀이를 인도와 네팔 아이들도 하는 것을 깨달으며, ‘놀이의 보편성’을 사진을 통해 친절히 알린다. 무엇보다 유독 맑은 아이들의 눈망울이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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