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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9 11-12 골목아지트, 카페와 벗하다

골목 아지트, 카페와 벗하다 4-4 l 우리 동네,이 카페 <커피한잔>


종로도서관까지 걷는 길은 길고 멀었다.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가파른 언덕길 좌우로 난 나무가 싱그러운 내음을 풍기는 사직동은 서울이라기보다는 한적한 시골을 연상케 했다. 배화여대와 도서관으로 갈라지는 길목에서 길을 잘못 들어 전화를 두세 번 쯤 더 걸었다. 알고 보니 갈림길 바로 옆에 가게가 있었다. 오후의 북촌 공기는 싸늘했다. 얼른 가게에 몸을 들이밀었다. 좁은 가게 안을 흐르는 커피 냄새가 몸을 데우는 듯 했다.
가만히 앉아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동네 문방구를 개조했다는 소문 그대로다. 가게 안은 오래된 LP판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테이블 하나엔 동네 사는 소녀 혼자 조용히 앉아 커피를 조금씩 홀짝였다.


사직동 <커피한잔>은 계동에 위치한 <커피한잔>의 2호점이다. 가게의 콘셉트는 작고 아담한 ‘동네
카페’다. 왜 굳이 도심에서 벗어나 이런 외진 곳, 전혀 카페가 들어서지 않을 자리에 가게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변화에 민감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 아닌가. 가게의 주인 이형춘 씨가 답했다. “시대에 역행한다고요? 그건 세상의 차별이죠. 물론 마음만 먹으면 시내에 버젓한 핸드메이드 커피 가게 하나 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전 좀 다른 가게를 하고 싶었습니다.” 


가게의 모든 가구들은 그가 직접 동네에서 주워 모으고 망치로 두들긴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낡
고 조잡하면서도 동네 카페의 소박함을 부드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곡이 끝날 때마다 틈틈이 LP를 바꾸고 커피를 내렸다. 흑인 오페라 가수 마리아 앤더슨(Maria Anderson)을 그 날 처음 알았다. 그녀의 소프라노 음색이 고조됨에 따라 이야기도 오래오래 깊어졌다. “제게 있어 커피는 기도이고 신앙이에요. 로스팅부터 핸드드립까지, 전부 다요. 커피에 제 모든 걸 담습니다. 저도 신앙인인데 제가 신앙을 시작한 시기와 커피를 시작한 시기가 같아요.” 그의 커피론(論)이 몹시 경건하다 싶었다. 이토록 진지한 그는 또한 지독한 경험주의자다. “나는 바보가 더 재밌게 산다고 생각해요. 난 머리가 나빠서 몸이 먼저 나가더라고.(웃음) 세상이 각박할수록 자신의 일을 차근히 하고, 좀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가게는 그 주인을 닮을 수밖에 없다는, 빤한 생각이 떠올랐다. 결국 카페란 그 주인의 마음의 방이다. 그 방에 들어설 때 수줍게나마 자신의 마음을 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커피에 깃든 믿음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이라면, 타인과 타인이 만나 마음을 나누는 그 순간을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글 김주원 | 사진 정미희



커피한잔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1-6번지
02-764-6621

■찾아오는 길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직진해 파출소를 지나 올라가다가 배화여대 가는 길목에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