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2009 11-12 골목아지트, 카페와 벗하다
골목 아지트, 카페와 벗하다 4-4 l 우리 동네,이 카페 <커피한잔>
문화선교연구원
2009. 12. 22. 13:30

종로도서관까지 걷는 길은 길고 멀었다.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가파른 언덕길 좌우로 난 나무가 싱그러운 내음을 풍기는 사직동은 서울이라기보다는 한적한 시골을 연상케 했다. 배화여대와 도서관으로 갈라지는 길목에서 길을 잘못 들어 전화를 두세 번 쯤 더 걸었다. 알고 보니 갈림길 바로 옆에 가게가 있었다. 오후의 북촌 공기는 싸늘했다. 얼른 가게에 몸을 들이밀었다. 좁은 가게 안을 흐르는 커피 냄새가 몸을 데우는 듯 했다.
가만히 앉아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동네 문방구를 개조했다는 소문 그대로다. 가게 안은 오래된 LP판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테이블 하나엔 동네 사는 소녀 혼자 조용히 앉아 커피를 조금씩 홀짝였다. 
사직동 <커피한잔>은 계동에 위치한 <커피한잔>의 2호점이다. 가게의 콘셉트는 작고 아담한 ‘동네카페’다. 왜 굳이 도심에서 벗어나 이런 외진 곳, 전혀 카페가 들어서지 않을 자리에 가게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변화에 민감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이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 아닌가. 가게의 주인 이형춘 씨가 답했다. “시대에 역행한다고요? 그건 세상의 차별이죠. 물론 마음만 먹으면 시내에 버젓한 핸드메이드 커피 가게 하나 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전 좀 다른 가게를 하고 싶었습니다.” 
가게의 모든 가구들은 그가 직접 동네에서 주워 모으고 망치로 두들긴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낡고 조잡하면서도 동네 카페의 소박함을 부드럽게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곡이 끝날 때마다 틈틈이 LP를 바꾸고 커피를 내렸다. 흑인 오페라 가수 마리아 앤더슨(Maria Anderson)을 그 날 처음 알았다. 그녀의 소프라노 음색이 고조됨에 따라 이야기도 오래오래 깊어졌다. “제게 있어 커피는 기도이고 신앙이에요. 로스팅부터 핸드드립까지, 전부 다요. 커피에 제 모든 걸 담습니다. 저도 신앙인인데 제가 신앙을 시작한 시기와 커피를 시작한 시기가 같아요.” 그의 커피론(論)이 몹시 경건하다 싶었다. 이토록 진지한 그는 또한 지독한 경험주의자다. “나는 바보가 더 재밌게 산다고 생각해요. 난 머리가 나빠서 몸이 먼저 나가더라고.(웃음) 세상이 각박할수록 자신의 일을 차근히 하고, 좀 더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가게는 그 주인을 닮을 수밖에 없다는, 빤한 생각이 떠올랐다. 결국 카페란 그 주인의 마음의 방이다. 그 방에 들어설 때 수줍게나마 자신의 마음을 열 줄 아는 사람이라면, 커피에 깃든 믿음을 마실 줄 아는 사람이라면, 타인과 타인이 만나 마음을 나누는 그 순간을 결코 놓치지 않을 것이다. 글 김주원 | 사진 정미희

커피한잔
서울시 종로구 사직동1-6번지
02-764-6621
■찾아오는 길
경복궁역 1번 출구에서 직진해 파출소를 지나 올라가다가 배화여대 가는 길목에 들어서면 바로 오른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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