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교회야, 놀자! 1ㅣ교회교육, 지겨움인가, 즐거움인가?


풍경 하나

대학원 수업이 끝나자 아주머니 학생이 따라 나왔다.

“교수님. 울 애가 교회를 안가겠다고 선언하는데 어떻게 할까요?”

“따님이 왜 교회를 안가겠다고 그러는데요?”

“잠 오는 주일 아침에 교회에 가면 전도사님이 30분 이야기하고 선생님이 30분 말하고 자기는 멍하니 있다가 오는 교회를 왜 가야하는지 모르겠대요.”

그 순간 주마등처럼 내가 받았던 교회교육이 떠올랐다. 중학교 3학년부터 다녔던 교회에서 졸음이 엄습하면 졸음마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기도로 물리치던 시절과 설교가 들리지 않으면 눈을 뜬 채로 생각에 생각의 꼬리를 물면서 공상을 하던 교회학교 학생시절 말이다. 지금도 교회교육은 힘들다고 한다. 어른예배를 우선시하고 아이들과 학생의 예배는 부수적으로 취급되어 어른예배가 끝나면 무섭게 자녀를 데리고 나가는 뒷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는 교회교사도 있다. 시험 때면 공부를 위해 우수수 빠지는 학생들의 빈자리가 바로 우리 교회교육의 현실이다. 신학생도 어제의 설교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피교육자인 학생과 아이들은 어떻겠는가?



강창욱 그림

그때와 지금

당시에는 전부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아무소리 안하고 조용히 회개하고 넘어가던 문제가 요즘 학생들에게는 싫으면 싫다고 당당히 말하는 대상이 되었다. 또한 나만 그러려니 했던 자동영상시스템(교육이나 설교가 지루하면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영상장치)이 이제는 모든 학생들이 하나씩은 장착된듯하다. 이런 교육 환경 속에서 부족한 신앙교육은 수련회를 통해 한방(?)에 해결하려 하거나 하나님에게 맡기고 금요 기도회나 산 기도에서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 약효도 점점 떨어지는 분위기다. 친구 목회자의 말을 빌리자면, 산기도 가자면 이젠 순종하며 따라 나서는 학생은 없고, 산 넘어 집에 가버리는 세대들만 있다는 것. 시험 시즌에는 학생예배에 참석하는 숫자가 눈에 띠게 줄어들고 그런 현실을 이제는 모르는 척 하고 지나간다고도 한다. 교회에 잘 출석하지 않는 학생에게 지나가는 말로 “너 그렇게 신앙 생활하다가 천국 갈거니 하니 지옥 갈거니?” 물으면 “어디가 커트라인이 높은데요?”라고 대꾸하는 세대들이라고! 

이렇게 교회교육현장은 보이지 않는 갈등의 연속인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꼭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유럽 비블리오드라마 콩그레스에서 만난 스웨덴 교사에게 스웨덴 청소년 문제를 묻자 돌아온 말은 “너희나 우리나 똑같이 전 세계화적인 문제”란다. 세계는 급변하고 아이들은 예전의 우리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어디로 가야하나?

어차피 변화해야 할 일이라면 화끈하게 변하자! 공교육은 몸이 무거운 공룡이 되어 변화가 힘들다. 오죽하면 엘빈 토플러 박사가 학교는 문 닫아야 한다고 했을까? 그 말은 단순히 지식전달교육에만 머물고 있는 학교는 창의성과 자발성의 미래지향적 인재를 키워내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교회교육은 다른 시각으로 보면 공교육 같은 무거운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변화가 쉬울 수 있다. 국가가 운영하는 교육은 변화를 위해 거쳐야 할 단계가 복잡하지만 교회교육은 맘만 먹으면 바로 변화를 위해 질주 할 수 있다. 항상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위기는 곧 기회이기 때문이다. 공교육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교회교육이 담당하겠다는 의지와 믿음만 있다면 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변해서 어디로 갈 것인가이다.



김세준|자칭 호가 ‘대충’이란다. 대충 살라는 뜻과 크게 충성한다는 이중적 의미를 즐겨 사용하면서 대학교, 교회 등지에서 몸으로 하는 성경공부를 전파하고 있는 목사. ‘크리스찬마음연구원’ 대표이며 사이코드라마 수련감독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