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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길에게 길을 묻다

붉은 땅, 생은 계속 된다. 우간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을 여행했지만 우간다는 이번이 처음이다. 왠지 여행과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우간다하면 먼저 오랫동안 귀에 익숙한 잔인한 독재자 ‘이디 아민’과 지금도 여전히 내전이 빈번이 일어나는 나라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1987년 이후 20여 년간 정부와 반군 사이에 벌어진 끔찍한 내전으로 사망자 3만 여명, 난민 약 2백만 명, 반군에게 납치된 어린이만 해도 약 2만 5천 명정도로 추정되는 나라. 과연 실제로 만나는 우간다는 어떤 곳일까?


슬픔을 이긴 강렬한 화려함
우간다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지금껏 본 다른 아프리카의 나라들보다 이곳의 컬러가 훨씬 화려하다. 길가에 늘어선 상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입고 있는 옷차림에서도 화려한 컬러가 인상적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화려한 컬러를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아프리카 모든 나라가 우간다처럼 화려하게 치장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들이 겪는 어려운 현실을 피하고 싶은 마음에 더 화려한 색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무척이나 복잡하다. 그야말로 교통지옥이라 불러도 될 만큼 교통량이 엄청나다. 머릿속에 맴돌았던 내전이라는 단어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활발한 거리의 모습과 웬만한 도심보다 화려한 거리의 모습에서 우간다의 선입견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었다. 거리의 활기찬 사람들과 빼곡한 자동차들의 행렬은 이곳이 우간다라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었다. 낯선 동양인을 바라보는 신기한 그들의 눈빛을 마주치며 눈인사를 건넨다. 그런내가 싫지 않은지 어깨를 들썩이며 반겨준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간격은 결국 스스로 만들어 놓은 마음의 벽이라고 생각한다. 그 벽을허무는 것은 내 자신의 몫인 것이다.

이땅의 아픔은 먼지가 되어
우간다의 흙색은 상당히 붉은 색을 띄고 있다. 문득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아프리카의 흙 색깔이 붉은 이유는 사람들의 피가 흙 속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라는…. 우간다의 땅을 밟으면서 이 땅에서 스러져 간 사람들의 영혼을 위해 고개 숙여 묵념을 했다. 내가 아무런 의식 없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도, 이곳에서는 아픔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이처럼 평화롭고 순박한 사람들이
사는 이 땅에서 말이다. 우간다에서는 자동차가 일으키는 흙먼지도 붉은 색을 띄고 있다. 그 사이를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오는 사람이 보인다. 마치 내가 끝없이 달려오던 그 길을 뒤쫓아 오는 것처럼…. 우간다의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의 주인들은 거의가 아랍인들이라고 한다. 몰랐던 이야기들을 들으며, 아프리카의 새로운 단면을 보게 된다. 먼지가 풀풀 나는 우간다의 황량한 들판에 푸른 빛깔의 사탕수수밭이 주는 신선함이 왠지 이곳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을 그 순간 하게 됐는지 모르지만, 어쩌면 이 땅의 주인이 아닌 이방인의 손에 쥐어진 그 부유함이 거북스러웠나보다. 마치 내가 우간다 사람들의 풍요를 책임져야하는 사람인 것처럼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면서….

이것이 진짜 평화다

우간다의 북쪽 지역은 아직도 내전이 일어나는 지역이다. 내가 찾아간 쿠미 지역도 한때는 반군들이 점령했던 곳으로 많은 희생자들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내가 찾아갔을 때는 어디에서도 그런 느낌을 전혀 받을 수가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과거의 아픈 흔적들이 곳곳에 배어있다는 것 뿐. 지금은 아주 평온한 상태로 여느 시골 풍경처럼 사람들의 모습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질 정도다.
인간은 왜 전쟁을 선택하는 것일까? 결과는 너무나 참혹할 뿐인데 왜 그렇게 서로를 아프게 짓누르려는 것일까? 지금처럼 웃음 가득한 이 땅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면 되는 것을. 내가 만난 우간다 사람들은 모두가 순박해보였다. 이방인들에게 경계심을 품기보다 가슴에 안으려 노력하는 사람들뿐이었다. 어쩌면 어떤 아픔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이들의 낙천성이 끝없이 이어진 전쟁과 가난의 땅에서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땅에 산재한 가난과 질병은 아무리 많은 나라들이 물질로 원조를 한다 해도 결국 이들 스스로 해결할 의지가 없다면 요원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이들의 웃음소리와 열심히 살아가는 평화로운 일상에 감사했다.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순박한 미소를 보내준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아름다운 붉은 땅은 나에게 두고두고 잊혀 지지 않는 그리움이 될 것이다.



신미식|디자인을 전공한 후 15년 가까이 그 분야에서 일해 왔다. 서른이라는 나이에 처음 카메라를 장만하고 사진에 미치기 시작하면서 17년 동안 세상을 향해 새로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사진으로 담아내는 것을 가장 큰 행복으로 여기며 여전히 여행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지독한 방랑벽을 소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