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 느티나무 어린이집
평택 시내에서도 한참, 느티나무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초행길에 나침반 역할을 해줄 커다란 건물이나 표적이 될 만한 상가도 없는, 드문드문 집들이 잇따라 있는 그야말로 시골이었기에 더 그랬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참빗으로 탄 가르마마냥 가지런한 밭이랑에 “예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렇게 붉고 윤기 나는 흙을 밟기는커녕 본지도 오래구나 생각하니 반가웠다. 마음은 이미 이삿짐을 꾸려 평택시 오성면 양교리 어딘가를 헤매고, 여기 사는 아이들은 좋겠다고 만나기 전부터 부러워진다. 그렇게 ‘농촌’, ‘마을’ 그리고 ‘공동육아’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서울에서 떠난 지 2시간 여, 바람 부는 언덕에서 드디어 느티나무 어린이집을 찾았다. 글 정미희ㆍ사진 김준영
사방에서 빛이 들어오는 건물 안, 아이들이 ‘고양이’(본명 배은정)의 구령에 맞춰 함께 아침체조를 하고 있다. 조그만 몸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방바닥을 구르기도 하고, 기어 다니기도 하고,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얼굴에 곁눈질도 하면서도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평온하게 아침체조 중이다. 오전 10시까지, 일과 시작 시간을 맞추기 위해 분주하게 달려왔던 마음도 조금씩 아이들의 호흡을 따라 정돈된다. 방바닥에 앉으니 아이들 눈높이로 난 창을 통해 놀이터, 텃밭, 연못, 이웃집들이 펼쳐졌다. 이곳의 아이들은 굳이 책을 통해 가르치지 않아도 사시사철 농사짓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새싹이 자라고, 열매를 맺고, 낙엽이 지는 한 해의 흐름을 몸으로 익히고, 제 손으로 채집한 제철 먹을 거리들을 먹으며 건강하게 자라난다.
전국 60여 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 중 3분의 2 정도가 대도시와 대도시 인접한 지역에 위치해 있고 평택 같은 중소도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농촌으로 갈수록 아이들도 적고, 교통이 불편하다 보니 교사 수급도 어려울뿐더러, 자연이 삶의 터전으로 그냥 주어지는 것이다 보니 공동육아 프로그램에 대한 공감이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 사실 ‘느티나무 어린이집’의 문을 열기까지도 어려움이 많았다. 설립 초기 멤버인 ‘독수리’(본명 유승명·46)도 처음부터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평택 지역이 도농복합도시로 보수적 성격의 도시에요. 처음에는 부모님들이 어린이집을 위해 출자금을 내는 것이나 적극적으로 교육에 참여하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죠. 그러다 공동육아에 대한 강연회를 통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발을 담그게 됐어요. 사실 일반 어린이집을 보냈을 때에 대한 문제의식은 다들 동감하고 있었거든요.”
1999년, 일반 어린이집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준비 모임은 그렇게 공동육아에서 지향하는 유기농 먹을거리와 자연 친화적 프로그램에 대한 호감으로 공동육아 준비 모임으로 전환됐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역시나 터전 문제.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평택 도심 부근에서는 전세 비용과 적당한 환경에 맞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출자금의 문턱을 낮춰 부모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 끝에 마을 이장님의 소개로 양교리 마을회관에서 2000년 3월에 처음 문을 열었다. 마을회관 옆의 400년 된 느티나무가 아름드리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주위에는 2만 평의 넓은 밭과 소나무 숲이 있어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이자 쉼터였다. 주변 자연환경뿐 아니라 동네를 거닐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느 곳보다 풍부한 세시歲時활동의 자원을 제공해 주었다. 부모들은 일손이 부족한 어른들에게 주말을 통해 농사일을 도와드리며 차곡차곡 이웃의 정을 쌓아갔다.
처음 24평 건물에 13가구, 18명의 아이들로 시작했던 느티나무 어린이집은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25가구까지 늘어나 더 이상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다른 건물로 이사를 할 것인가, 신축을 할 것인가의 문제로 부모들은 논의 끝에 지금의 건물을 짓기로 했다. “건물을 짓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죠. 그래도 조합원들 사이에 어린이집이 ‘우리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어요. 당시 이 부근에 공장이나 창고가 하나도 없고, 자연환경이 참 좋았어요. 다들 늘 이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만이라도 이런 환경에서 자라게 하자는 마음이 있었죠.” 땅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독수리’와 일부 부모들은 아예 어린이집 옆에 집을 짓고 살기로 했다.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새로운 마을이 태어난 것이다.‘ 독수리’는 이곳에서 아이 넷을 낳고 키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에 비해 조금 더딜지라도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과 다른 부모들을 보았다. “함께 키우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나눈다는 것. 그게 중요하지요. 지금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나눔이 필요한 시대잖아요.”
어린이집 책상 위에 놓여있던 느티나무 어린이집이 ‘독수리’에게 전달한 10주년 감사패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숨 쉬는 흙과 바람, 따듯한 햇볕,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가 살아있는 마을이라고 생각한 우리들이 양교리에 터전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함께 키운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평택공동육아협동조합의 10년의 삶이 있기까지 늘 함께 계셔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의 삶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진심이 담긴 그 감사패를 찬찬히 읽어가며 순간 깨달았다. 같은 가치를 가지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은 힘이 세다는 것. 이곳의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한 뼘 한 뼘 자라는 동안 ‘마을’이 아름드리 느티나무처럼 든든한 그늘이 되어줄 것이라는 것을.
평택 느티나무 어린이집
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양교 4리 642번지 l 031-681-9650
평택 시내에서도 한참, 느티나무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초행길에 나침반 역할을 해줄 커다란 건물이나 표적이 될 만한 상가도 없는, 드문드문 집들이 잇따라 있는 그야말로 시골이었기에 더 그랬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참빗으로 탄 가르마마냥 가지런한 밭이랑에 “예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이렇게 붉고 윤기 나는 흙을 밟기는커녕 본지도 오래구나 생각하니 반가웠다. 마음은 이미 이삿짐을 꾸려 평택시 오성면 양교리 어딘가를 헤매고, 여기 사는 아이들은 좋겠다고 만나기 전부터 부러워진다. 그렇게 ‘농촌’, ‘마을’ 그리고 ‘공동육아’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서울에서 떠난 지 2시간 여, 바람 부는 언덕에서 드디어 느티나무 어린이집을 찾았다. 글 정미희ㆍ사진 김준영
사방에서 빛이 들어오는 건물 안, 아이들이 ‘고양이’(본명 배은정)의 구령에 맞춰 함께 아침체조를 하고 있다. 조그만 몸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방바닥을 구르기도 하고, 기어 다니기도 하고, 갑자기 나타난 새로운 얼굴에 곁눈질도 하면서도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평온하게 아침체조 중이다. 오전 10시까지, 일과 시작 시간을 맞추기 위해 분주하게 달려왔던 마음도 조금씩 아이들의 호흡을 따라 정돈된다. 방바닥에 앉으니 아이들 눈높이로 난 창을 통해 놀이터, 텃밭, 연못, 이웃집들이 펼쳐졌다. 이곳의 아이들은 굳이 책을 통해 가르치지 않아도 사시사철 농사짓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새싹이 자라고, 열매를 맺고, 낙엽이 지는 한 해의 흐름을 몸으로 익히고, 제 손으로 채집한 제철 먹을 거리들을 먹으며 건강하게 자라난다.
전국 60여 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 중 3분의 2 정도가 대도시와 대도시 인접한 지역에 위치해 있고 평택 같은 중소도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농촌으로 갈수록 아이들도 적고, 교통이 불편하다 보니 교사 수급도 어려울뿐더러, 자연이 삶의 터전으로 그냥 주어지는 것이다 보니 공동육아 프로그램에 대한 공감이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 사실 ‘느티나무 어린이집’의 문을 열기까지도 어려움이 많았다. 설립 초기 멤버인 ‘독수리’(본명 유승명·46)도 처음부터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평택 지역이 도농복합도시로 보수적 성격의 도시에요. 처음에는 부모님들이 어린이집을 위해 출자금을 내는 것이나 적극적으로 교육에 참여하는 것들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죠. 그러다 공동육아에 대한 강연회를 통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발을 담그게 됐어요. 사실 일반 어린이집을 보냈을 때에 대한 문제의식은 다들 동감하고 있었거든요.”
1999년, 일반 어린이집을 만들기 위해 시작된 준비 모임은 그렇게 공동육아에서 지향하는 유기농 먹을거리와 자연 친화적 프로그램에 대한 호감으로 공동육아 준비 모임으로 전환됐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역시나 터전 문제. 조합원들이 모여 있는 평택 도심 부근에서는 전세 비용과 적당한 환경에 맞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출자금의 문턱을 낮춰 부모들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 끝에 마을 이장님의 소개로 양교리 마을회관에서 2000년 3월에 처음 문을 열었다. 마을회관 옆의 400년 된 느티나무가 아름드리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주위에는 2만 평의 넓은 밭과 소나무 숲이 있어 아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놀이터이자 쉼터였다. 주변 자연환경뿐 아니라 동네를 거닐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느 곳보다 풍부한 세시歲時활동의 자원을 제공해 주었다. 부모들은 일손이 부족한 어른들에게 주말을 통해 농사일을 도와드리며 차곡차곡 이웃의 정을 쌓아갔다.
처음 24평 건물에 13가구, 18명의 아이들로 시작했던 느티나무 어린이집은 점차 자리를 잡으면서 25가구까지 늘어나 더 이상 아이들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다른 건물로 이사를 할 것인가, 신축을 할 것인가의 문제로 부모들은 논의 끝에 지금의 건물을 짓기로 했다. “건물을 짓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죠. 그래도 조합원들 사이에 어린이집이 ‘우리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어요. 당시 이 부근에 공장이나 창고가 하나도 없고, 자연환경이 참 좋았어요. 다들 늘 이렇게 살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만이라도 이런 환경에서 자라게 하자는 마음이 있었죠.” 땅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독수리’와 일부 부모들은 아예 어린이집 옆에 집을 짓고 살기로 했다.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새로운 마을이 태어난 것이다.‘ 독수리’는 이곳에서 아이 넷을 낳고 키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들에 비해 조금 더딜지라도 조금씩 성장하는 자신과 다른 부모들을 보았다. “함께 키우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나눈다는 것. 그게 중요하지요. 지금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나눔이 필요한 시대잖아요.”
어린이집 책상 위에 놓여있던 느티나무 어린이집이 ‘독수리’에게 전달한 10주년 감사패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숨 쉬는 흙과 바람, 따듯한 햇볕, 사람과 사람들의 관계가 살아있는 마을이라고 생각한 우리들이 양교리에 터전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함께 키운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평택공동육아협동조합의 10년의 삶이 있기까지 늘 함께 계셔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의 삶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라고. 진심이 담긴 그 감사패를 찬찬히 읽어가며 순간 깨달았다. 같은 가치를 가지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은 힘이 세다는 것. 이곳의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한 뼘 한 뼘 자라는 동안 ‘마을’이 아름드리 느티나무처럼 든든한 그늘이 되어줄 것이라는 것을.
평택 느티나무 어린이집
경기도 평택시 오성면 양교 4리 642번지 l 031-681-9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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