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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햇빛 아래 노니는 삶

소박하게, 그러나 단단하게

풀, 꽃, 나무를 좋아하고, 흙을 만지며 사는 나는 경남 산
청 작은 시골 마을 민들레공동체에 살고 있다. 공동체에서 생활하며 농사짓고, 공동체에서 운영하는 민들레학교에서 아이들도 가르치며 함께 산다. 원고 청탁을 받고 무슨 글을 써야 할지 많이 고민했는데 농사짓고, 흙을 만지고, 시골에서 사는 내 소소한 일상 말고는 딱히 쓸 이야기가 없어 그냥 약간 사소할 수 있는 내가 사는 이야기를 써내려가려 한다.


# 1. 내가 농사짓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때였을 것이다. 집이 시골이다 보니 자연히 어른들이 농사짓는 것을 도우며 농사에 대한 좋은 인상이 많았는데 농사꾼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마도 그때 인 듯하다. 무엇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아서 그림을 그려서 먹고살 생각도 했고, 놀러 다니길 좋아해서 여행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농사짓는 농부만큼 흥미로운 것이 없었다. 그렇게 집 옆에 작은 텃밭을 가꾸는 것에서 시작한 농사일이 지금은 쌀농사에서부터 콩, 고추, 호박, 감자 그리고 각종 채소까지 웬만한 건 다 키우는 조금은 그럴듯하게 농사짓는 농사꾼이 되었다. 아직 서툰 것이 많아 배우며 일하는 짓는 농사지만 그래도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일인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요즘은 봄 농사가 한창이다. 밭과 논에 농사짓기 위해 거름을 뿌리고 두둑과 고랑을 만드는 것부터 씨앗과 모종을 심고 물을 주고 관리하는 것까지, 큰일에서부터 자잘한 일들까지 많은 일로 정신없이 일한다. 며칠 전 채소와 꽃, 허브 씨앗을 하루 종일이 걸려 심었는데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서 싹이 나다가 죽지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씨앗이 흙을 비집고 나와 싹을 틔우는데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그 작은 새싹을 보면서 그렇게 많던 걱정과 피곤한 일상의 잡념들이 눈 녹듯 사라지고, 얼핏 보면 보이지도 않을 그 작은 새싹을 어떻게 키울까 생각하니 가슴만 설레었 다. 일을 할 때 이런 순간이 때때로 있다. 힘들고 피곤한 일들로 포기하고 싶고 마냥 쉬운 것을 하고만 싶을 때 정말 사소하지만 절대적인 위로를 주는 것들이 있다. 논일을 하면 논에 진흙과 물이 많다 보니 진흙에 늘 발이 무릎까지 빠지기도 하고, 괭이질을 한다거나 잡초를 뽑을 땐 정말 힘들다. 그런데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감사하고 좋은지 모른다. 그리고 또 하늘은 어찌나 푸르고, 구름은 또 어찌나 예쁜지 그것은 그냥 생각만으론 알 수 없다. 땀을 흘려야지 바람이 시원하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땡볕에 일을 해봐야만 구름이 해를 가릴 때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 2. 난 내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나 사물을 늘 찾아다니는 것 같다. 하지만 결국에 나에게 위로가 되는 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다. 가까이 있는 작은 것들, 잘 눈길 주지 않았던 그런 소박한 것들이 내 일상의 대부분의 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갖고 싶은 것을 갖는다거나 혹은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다는 것은 일시적인 즐거움과 행복을 줄 수는 있겠지만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소박하지만 지속적인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작은 행복을 찾는 것이 어쩌면 삶의 대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소박하지만 스스로 만족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사물에게 행복과 아름다움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멋진 삶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가 농사짓는다고 하면 한결같이 다 또래들이 대학을 다닐 때 대학도 가지 않고, 농사짓는 것을 신기해하기도 하고 특이하다며 질문을 퍼붓기 일쑤다. 농사를 짓는 것이 뭐가 그리 신기하고 이상할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한편 흙을 만지며 사는 청춘들이 흔치 않다는 사실에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다.
우리는 삶의 대부분을 조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조금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조금 더 좋은 것을 가지기 위해 산다. 그런 것들을 위해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시간을 낭비하는지 생각해 보면 회의감이 들 때가 많지만, 다른 길이나 대안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엔 그렇게 자신이 별로 원하지도 않는 일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하고, 공부를 하고, 삶을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노력하면 일부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 있고, 돈을 벌고,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그 삶이 얼마나 나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리 특별한 것은 없다.

난 내가 정말 원하고 좋아하며,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한다. 물론 자신만 좋은 일을 해서는 안되겠지만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만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텃밭이나 화단을 가꾸면 난 정말 아름답게 채소와 꽃들을 키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내가 잘하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아름답게, 소박하지만 스스로 만족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로가 되는 정갈한 텃밭과 화단으로 만들고 싶다. 그렇게 나는 대단하진 않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텃밭에서 위로를 받고 작은 화단에서 꿈꿀 수 있다. 그렇게 나를 표현하고 즐길 수만 있다면 충분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흙냄새, 풀냄새 맡으며 농사짓는다. 할 것이 없어서 농사짓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어 농사짓는 것도아니다. 난 그렇게 내가 좋아라 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내가 직접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통해 나를 드러내고 그것이 내 삶을 지속하게 해준다면 조금 가난해도 조금 더뎌도 괜찮다.

김진하|지리산 산청 골짜기에서 흙냄새, 풀냄새 맡으며 농사짓는 서툰 풋내기 농사꾼. 민들레공동체에서 생활하며 민들레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함께 일하며, 매일매일 농사일로 머리가 꽉 차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느낀 대로 사는 고민 많고 속 편한 스무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