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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오늘의 생각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놀기

논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특별히 신앙인들이 사회에서 잘 노는 것은 참 쉽지 않은 과제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놀이문화를 형성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요즈음 새롭게 깨달은 사실은 우리 신앙인들은 ‘ 노는’ 것을 특별히 어려워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성경 ‘공부’를 하고, 설교를 ‘듣고’, ‘기도’를 드리는 것에는 그리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함께 노는 시간이 되면 매우 어려워한다. 과연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 혹시 이런 노래를 부르면 남들이 내 신앙인 됨을 의심하지 않을까? 저런 노래를 부르면 답답하게 꽉 막힌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놀이를 하면 너무 세상적이라고 판단 받지는 않을까?

직장과 일터에서 놀이 문화에 대한 갈등은 더욱 그 정도가 심하다 하겠다. 화투 같은 것은 치면 절대 안 되는 것인지(혹 어떤 그리스도인은 화투 면에 성경의 인물을 넣고 치면 되지 않을까라는 웃지 못할 제안을 하기도 한다), 나이트클럽 같은 곳엔 절대 가면 안 되는 것인지, 혹은 와인 바에 가서 가볍게 와인 한 잔 하는 것은 괜찮은지 등등, 신앙인들 중에는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제법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놀이와 교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었다. 예수께서는 사역 기간 동안 식사 교제와 친교 모임에 참석하신 일이 많았다. 심지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눅 7: 34)라는 비난의 소리도 들을 정도였으니. 이쯤이면 우리가 왜 놀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어느 정도 성경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자연스레 관심을 옮겨 보자. 사실 ‘잘 노는’ 것은 신앙인들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성도의 교제가 신앙적 삶의 핵심적 부분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성도의 교제 중 중요한 부분은 바로 함께 잘 노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 신앙 공동체구성원들 사이의 교제의 성숙도는 그들이 얼마나 함께 일을 잘 하는 것뿐만 아니라, 함께 잘 노는 정도에 의해서도 가늠될 수 있다. 잘 놀지 못하는 공동체는 결코 좋은 공동체, 예수님의 정신을 이어받은 공동체가 될 수 없다.

잘 놀기 위해서는 서로의 눈높이를 잘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만의 유아론有我論적인 문화만 고집한다면 그곳에는 어울림이 없게되고, 어울림이 없으면 함께 놀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으로 무례히 행치 않아야 잘 놀 수 있다. 신앙 공동체 내부에 존재하는 차별의식은 결코 교회를 놀이와 축제 그리고 소통의 장으로 만들어 낼 수 없다. 차별의식이 있는 한결코 참다운 놀이를 담은 교제란 있을 수 없다. 교회가 진정한 놀이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하나’의식을 공유해야 한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 3 : 28).

결국, 잘 놀 수 있으려면 우리는 참 자유 속에 거해야 한다. 이 자유는 진리 안에 거하는 것이며, 이 진리는 우리가 우리 주님 사랑 안에서 마음껏 향유하는 것임을 잊지 말자 ! 발행인 임성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