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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사람과 사람

할머니 손이 아이를 살린다ㅣ 홀트아동복지회 부속의원 전 원장 조병국

제공 : 삼성출판사 편집부


이재윤|사진 삼성출판사 편집부 제공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항상 나오는 말, ‘다사 다난했던 한 해’. 정말 올해는 많은 일들이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아침에 컴퓨터를 켜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그 많은 뉴스 중에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이야기는 얼마나 있을까. 순진한 눈망울의 천사 같은 아이들, 6만 입양아의 주치의이자 엄마였던 조병국전 원장의 50년 이야기는 흔하지 않은 감동을 준다. 백발의 할머니 의사가 들려준 삶의 이야기는 때론 눈시울이 시린 아픔으로, 때론 가슴 뜨거운 감동으로, 마음이 밝아지는 기쁨으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흘렀어요
그녀는 50년 동안 버려진 아이들, 입양아들과 함께 했다. 아니 그들은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발견된 아이라고 하는 것이 옳겠다. “‘버려진 아이’와 ‘발견된 아이’, 그 차이는 엄청나다. ‘버려진 아이’는 슬프지만 ‘발견된 아이’는 희망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입양서류에 ‘OO에 버려졌음’이라 쓰지 않고, ‘OO에서 발견되었음’이라 쓴다” (<할머니의사 청진기를 놓다>, p.140). 처음에 ‘발견된 아이들’과 만난 것은 단기 파견 근무였다. 시립아동병원에서 근무하다 홀트아동복지회의 부속의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루하루 발견돼 들어오는 아이들의 병치레를 돌보다 보니 어느덧반세기가 흘렀다. “그 시절 어려운 건 말로 다 못해요. 2천명의 아이들이 있는 곳에 수도꼭지 한 개가 없었어요. 그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아픈 건 어찌 보면 당연하죠.” 그렇게 매일매일 만난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기적을 자주 만났다. 의사는 가장 이성적이고 냉철한 직업이지만, 너무 절박한 상황에서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한계를 느낄 때 간절한 기도가 나온다. 병든 고아들에게 일어난, 의학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기적은 바로 그런 것이리라. 그렇게 건강을 되찾은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어 잘 정착하고, 한 명의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난 소식을 전해들을 때면이루 말할 수 없는 벅찬 보람이 그녀의 작은 몸 모든 곳을 울리게 했다. “엄마가 두 살배기 아이를 안고 철로에 뛰어든 일이 있었어요. 기적적으로 아이만 목숨을 건졌는데, 대수술 후에 양쪽 다리가 절단된 거예요. 당시 한국에서 입양되기 힘든 상황이라 미국 보스턴의 한 부부에게 연결되었지요. 몇 년 후, 그 아이가 의족을 하고 밝은 표정으로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사진을 보내왔더군요. 나도 모르게 감사한 마음에 눈물이 흘렀어요.” 입양 부모가 보내온 사진에서 밝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그 때 이야기와 사진을 떠올리며 다시금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녀. 조병국 원장의 진정 아름다운 기억들이다. 입양아들은 성인이 되면 본인의 의지에 따라 모국 방문을 할 수 있다. 아직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 모국 방문을 원하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자신의 뿌리를 찾아 고향을 방문하는 경우가 꽤 많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이 한국 방문 시 자신이 입양 전 앓던 똑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아이를 보면 차마 뒤돌아서지 못하고 입양하여 데려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말하는 자신이 받은 사랑을 그대로 나누어 주는 ‘사랑보존법칙’이다. 한 번 시작된 사랑은 다른 대상으로 옮겨가도 그 총량이 변하지 않는 법칙. 어깨통증으로 2008년도 완전히 퇴직한 이후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진료를 계속하기 위해 일산으로 향하는 조병국 원장의 열정,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소아과의사가 되어서 아픈 아이들을 돕겠다
조병국 원장은 이제 5대째 신앙의 가문을 이어오고 있다. 할아버지부터 기독교 신앙을 받아 들였고 이제 손자를 보았으니 5대째가 되었다. 일제시대 평양에서 살던 시절,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투옥되었던 장로였다. 당시 신사참배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던 그 어린 꼬마는 그저 할아버지가 풀려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더 잘 들어 주신다고 생각했던지 신사에 올라가서 기도했던 기억이 나요. 외할아버지가 신사참배 반대로 잡혀 들어가셨는데 손녀딸은 일본 신사에 가서 기도하는 철부지 어린 소녀였나봐요.” 광복이 되고 전쟁이 나고, 그렇게 가족들은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 때의 어려운 기억들이 조병국 원장에게 의사의 꿈을 품게 했는지도 모른다. 동생이 병으로 죽게 되었으나크게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오빠도 전쟁 중에 파편을 맞아 고생을 했다. 그리고 조병국 원장 본인도 몸이 많이 아파서 어릴 때부터 병원 신세를 많이 졌다. “어릴 적 의사 선생님의 하얀 가운이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의대에 진학했는지도 몰라요. 연대 의대 시험을 볼 때 면접관이 제 주치의셨어요. 왜 의사가 되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소아과의사가 되어서 아픈 아이들을 돕겠다는 대답을 했죠.”그 때부터 의료 봉사를 시작했다. 당시 어떤 선교 단체에서 토요일마다 무의촌 진료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금요일 저녁이면 조병국 원장은 구할 수 있는 각종 약을 교회에 준비해 놓았다. 그 약을 가지고 의료시설이 없는 마을을 찾아다니며 진료를 해주었다.

제공 : 삼성출판사 편집부



서울시립아동병원을 거쳐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일하게 되면서 때로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1960,70년대 한국의 현실은 지금과는 너무 달랐다. 거리에는 고아들이 넘쳐 났고 그에 반해 도움의 손길은 너무 부족했다. 그때부터 조원장은 불평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싫은 소리를 도맡아 했던 거 같아요. 조고집이라는 별명도 있었고요. 그래도 나 잘 살자고 그런 게 아니니까…. 내가 그렇게 불평하면 이 아이들이 조금 더 낳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1960년대 녹번에 아동보호소가 있었는데 너무 열악했어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숫자의 아이들이 있었고 위생시설은 너무 빈약했죠. 당시에 미세스 맥이라는 분을 알고 지냈는데, 이분이 육영수 여사를 알고 지내던 분이셨어요. 이분을 통해 육영수 여사에게 도움을 청한 적도 있었어요.” 다양한 도움의 손길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왔다. 50년간 아이들을 진료하면서 가장 감사한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제가 다른 일을 했더라면 절대 알 수 없었을 거 같은 분들이 감사한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미국대사, 유명대학 총장 등 세계 각지에서 도움을 받았죠. 최근엔 스위스의 한 젊은이가 큰 액수의 돈을 기부 해주었어요.” 그래도 도움이 필요한 곳은 아직도 너무나 많다는 그의 설명이다.

지속적으로 꾸준히 돕는 손길이 있으면 좋겠어요.
정확히 말하면 1993년 그녀는 정년을 맞아 퇴임했다. 하지만 그이후 15년을 더 일했다. 전 원장이라는 직함으로 말이다. 적은 보수에 고된 일을 하기에 그에 맞는 후임자를 선뜻 구할 수 없었기때문이다. 하루하루 어제처럼 오늘을 사니 15년의 세월이 흘러정말 할머니 의사가 되었다. 어깨 통증이 심해져 더 이상 진료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다행히 후임자가 정해졌다. 사람이 많은 것 같아도 여전히 세상에는 사람이 부족하다. 이웃을 위해 섬김의 자리에서 묵묵히 수고하는 손길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요즈음은 입양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져서 다행이에요. 시설도 많이 생긴 것 같고요. 하지만 지속적으로 꾸준히 돕는 손길이 있으면 좋겠어요. 일회성이나 이름을 내기 위한 것 말고요. 한국 와서 17년 동안 함께 일한 미스 바라라는 영국 아가씨가 있었어요. 늘 검소한 옷을 입고 다녔는데 힐 신고 스커트 입고 남을어떻게 돕겠냐는 말을 자주 했어요. 남을 돕는 사람은 쓰고 싶은 것 다 쓰고 할 수 없다는 말이 기억나네요.” 특별히 신앙인으로서 약한 자를 섬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성경 지식만 많이 알면 뭐해요. 남을 섬기려고 열심히 뛸 때 예비하시고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어요.”

조병국 전 원장은 50년간의 의료생활을 경험하며 깨달은 진리는 가정의 소중함이라고 말한다. “젊은 사람들이 부부라는 말의 의미, 결혼, 가정 이런 것들에 대해 진지하고 깊이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자신들은 헤어지지만,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되나요.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너무 소중한 거예요. 결혼, 가족 그 자체가 너무 즐거운 축복이에요. 그걸 잃으면 안돼요.”
오래된 기억을 하나씩 꺼내 놓으면서 괜한 옛날 시름을 늘어놓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을 털어놓지만 그 시절 그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할머니 의사. 어렵고 힘든 시간도 많았지만 그동안 만난 좋은 사람들, 후원해준 사람들, 기도해준 사람들, 그 만남이 가장 감사한 기억이라는 불평 많은 할머니 의사. 무엇보다 건강하게 자라준 그때의 아이들, 초창기에 돌보았던 아이들과 함께 늙어가는 것이 행복하다는 할머니 의사. 각박한 세상에 삶의 작은 기적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할머니 의사 청진기를 놓다
조병국 | 삼성출판사

6만 입양아의 주치의이자 엄마였던 홀트아동병원 조병국 원장의 50년 의료일기를 고스란히 담은 기적같이 감동적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