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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연재 종료

미안하다, 미안하다

그림 현


벌써 4년 전 이야기다. 여름방학 특기적성교육을 모두 마친 그날 밤이었다. 30일의 여름방학 기간 중에 24일을 학교에서 학생들과 씨름하느라 모두 허비한 후였다. 그나마 엿새간의 휴식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이제는 맘 놓고 앓아도 되는 상황을, 그동안 잘 버텨주었던 몸이 먼저 알았는지… 난 거리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심근경색…. 몇 시간 동안 거리에서 가슴을 움켜 쥔 채 죽음의 강 주변을 헤매던 나는 어렵사리 병원으로 옮겨졌고, 시술을 받은 후에야 겨우 세상을 둘러보고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일반계 고등학교 3학년 담임교사였다. 우리 반은 다른 반 학생들에 비해 성장통을 겪고 있는 친구들이 유난히 많았다. 인문계에서 제일 중요한 대학입시보다 졸업 자체가 버거운 친구들이 무척 많았다. 나를 더 슬프고 화나게 만들었던것은 그토록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가면서도 이 친구들이 화를 겉으로 드러낼 줄 모르고 그저 순종적이기만 했다는 것이다.
억울하다고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인정받고 싶다고 울 줄도 모르고, 외롭다고 통곡할 줄도 모르는…. 저렇게 곱기만한 마음결로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맨발로 밟고 살아갈까 라는 걱정이 늘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 친구라도 더보듬어주고 싶었고, 더 다독거리고 싶었고, 더 채찍질하고 싶었고, 더 많은 시간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열아홉의 강을 함께 건너고 싶었다. 그들에게는 스무 살 이후의 삶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대한민국의 많은 친구들이 스물을 위해 열아홉을 반납하고 있지만 이 친구들은 열아홉을 반납할 힘과 여유마저 없었다.‘ 지금 여기’를 건너는 게 우선순위였던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난 그들의 담임교사였다. 그런데 야전사령관의 역할을 해야 할 내가 그만 쓰러져 버린 것이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는 동안 망가진 장기가 심장만 아니란 것을 알았다. 간, 신장, 눈, 위장…. 병원에 근무하는 고등학교 동창인 의사 친구가 어느 날 밤에 병실에 와서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야! 인마! 너, 이러다 죽는다. 이 자식아. 너 죽으면 난 누구랑 비밀 얘기하고, 누구에게 속상한 것 털어놓냐! 인마! 학교 그만둬라. 치료만 해라. 응! 제발 학교 아이들 내려놓고 몸만 바라봐라!”

나는 아주 작은 소리로 느리게 말했다.
“너 의사 되려면 아직 멀었구나. 난 말야, 그 애들 없으면 못 산다.”

그 후 난 한 학기동안 휴직을 한 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집에서 요양을 했다. 그렇게 여름이 문을 닫고, 가을은 흘러가고, 저만치 겨울이 막 보이기 시작할 무렵,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면 수학능력시험을 보기 전 날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학교에 가서 우리 반 아이들에게 찹쌀떡과 귤을 나눠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일 가서 신나게 즐기고 와라. 너희들이 내일 만나는 수학능력시험이란 괴물은 사실 아주 작고 예쁜 강아지가 변신한 것이니까 살살 만져주고 잘 쓰다듬어 주고 와라. 너희들이 수학능력시험보다 훨씬 힘이 센 슈퍼맨들이니까 기죽지 말고 한바탕 잘 놀다 와라. 알았지!”
우리 반 친구들은 애써 웃음 지으며 말하고 있는 나를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동안 자주 병문안을 와서 익숙해진 담임교사의 모습이건만 교실에서 본 수척해진 내 얼굴이 아이들에게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선 모양이다. 나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찹쌀떡과 귤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친구들 뒤편에 있는 게시판을 보게 되었다. 게시판에는 ‘문경보 선생님을 위하여 우리 모두 대학가자!’는 큰 글씨와 함께 작은 종이 40장이 붙어 있었다. 자세히 다가가 보니각 종이마다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대학과 학과, 그리고 나에게 보내는 글들이 써 있었다. 대부분 나에게 죄송하다는 내용과 내 건강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글, 그리고 꼭 대학에 합격하겠다는 글이었다. 자신 때문에 선생님이 편찮으신 것같다, 꼭 대학에 가서 보답하겠다고 말하면서 학급 전원이 야간 자율학습에 참여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신 교감선생님의 말씀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말하려 했으나 도저히 목이 메어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 친구들 중에는 여전히 밤을 새워 편의점에서 일을 해야 하는 친구,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에게 시달리는 친구, 음악을 하고 싶어 가슴이 펄펄 끓어오르고 있지만 집에서 반대를 하여 가뜩 상처를 받고 있는 친구, 천식 때문에 시험에 대한 공포가 하나 가득인 친구,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아야 하는 친구, 이혼한 뒤 부모님이 다 떠나 버려서 어린 동생을 돌봐야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 모든 상황을 다 접고 병든 담임을 위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공부를 하고 아이들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그렇지만 도무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입술을 열고 싶었지만 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두 손가락으로 원을 만들고 이마에 대었다 펴면서 내렸다. 그 동작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평소에 나와 장난삼아 수화를 주고받은 적이 있던 친구들은 그 동작이 ‘미안하다’라는 뜻이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열아홉 청춘들은 하나 둘씩 나와 같은 동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모든 친구들이 그 동작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였다.
‘선생님, 죄송해요. 저희가 선생님을 아프게 했어요. 선생님, 죄송해요.’ ‘바보 같은 놈들아! 내가 아픈 것은 너희들 탓이 아니야. 너희들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할 필요 없어 이놈들아!’
마음속으로 바보 담임과 바보 학생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동작을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흐린 날씨 때문에 어두워진 교실에서 크게 소리 내어 함께 울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계속 울고 있을 때, 우리들의 울음보다 더 큰 천둥이 치더니 교실 밖에서 초겨울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번 호로 문경보 선생님의 연재는 마칩니다).


문경보|현재 대광고등학교에서 학생들과 국어를 매개체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을 나누는 사십대 중반의 교사. 학생들에게서 느끼는 매력과, 그들의 눈빛 앞에서 느끼는 부끄러움 때문에 늘 학교 탈출을 꿈꾸다가 번번이 포기하는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위해 학교를 벗어날 꿈을 늘 계획하는 이중적인 사람. 지금까지 만난 세상과 새롭게 만나기를 오늘도 기도하고 글 쓰고 수다를 떨면서 나날을 엮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