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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08 05-06 싱글맘 · 싱글대디가 꿈꾸는 세상

싱글맘·싱글대디가 꿈꾸는 세상 6 | 교회는 대안가정이다

 

21세기 가족해체의 현상은 비단 한국사회뿐 아니라 선진국과 후진국 할 것 없이 보편적인 현상이다. 조금 특이할만한 점이라면 한국의 가족해체의 속도가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결혼은 이제 필수가 아닌 선택 중에 하나가 되었고, 많은 여성들에게 결혼은 자아성취라는 욕구에서 밀려나고 있는 현실이다. 남성들 또한 가장이라는 이름 아래 겪어내야 하는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한다. 이러한 한국사회 현실에서 교회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가정의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현대가족을 바라보는 두 가지 견해

현대사회 가족문제를 바라보는 데에는 두 가지 큰 흐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한부모가족, 재혼가족, 별거가족, 독신가족, 입양가족, 조손가속, 기러기가족, 딩크족(DINK), 여피족(Yuppie), 소년소녀 가장, 대안가족 등 다양한 가족의 출현으로 부모와 그 자녀로 구성되는 전통적 핵가족 개념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1세기는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가족 개념을 재구성하면서 다양한 가족 형태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보다 포괄적 가족의 정의를 재정립할 것을 주장하는 입장이며, 가족 해체를 단순히 부정적인 현상으로 이해되는 것을 비판한다. 최근 학자들은 이론적으로는 전통적인 핵가족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미래사회에 ‘가족’이라는 개념이 존재 할 수 있는지 회의하는 학자들도 있다.

둘째, 이혼과 별거, 저출산과 가정폭력, 또한 경제적 문제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는 가족의 해체현상을 우리사회의 중요한 위기로 판단하고, 다시 전통적 핵가족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사회의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문제의 근간으로 가족의 해체를 지적하면서 가족의 회복과 가정의 가치를 강조한다. 특별히 이혼에 대해 부정적이고 전통적 가정의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대부분 이 입장에 서고 있고, 가족해체가 가족가치의 붕괴와 직결되는 것으로 이해하며, 정상가정 이데올로기를 지지한다.


정상가정으로부터 받은 상처

3년 전부터 조그마한 교회를 섬기게 되었다. 가족과 부모와 남편에게 상처받은 청소녀들과 어머니들이 모이는 교회이다. 청소녀들은 중학교 2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함께 공동체 생활을 한다. 이들은 가정과 부모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가정이 해체되거나 장기간 지속적으로 아버지로부터 폭력 또는 극심한 구타를 경험하여 도저히 가정에서 자랄 수 없는 이들이다. 주일예배 때 아직도 맞은 자국이 선명하여 고개를 숙이시고 있는 분들도 있고, 너무 심하게 구타당하여 걸을 수 없으신 분도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기초적인 친밀감, 신뢰를 경험해야 하는 가정과 부모, 아버지와 남편으로부터 고통을 당해온 이들이다. 이들에게 정상가정은 정서적 안식처도 아니고, 천국 같은 가정은 더군다나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에게 정상가족은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곳이다. 한 아이는 어릴 적에 어머니가 도망을 갔다. 그렇게 무서운 아버지 옆에 자신을 버리고 간 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하고 세상의 모든 어른들을 미워하며 이곳 쉼터까지 흘러왔다. 그 아이의 눈은 항상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어머니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왜 어머니가 자신을 버리고 갔는지를 깨닫고 자신의 어머니를 용서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머니들에게 얼마나 따뜻하게 이야기하는지 모른다. “힘들어하지 마세요. 꼭 씩씩하게 사세요.” 말 한마디에도 애절한 사랑이 느껴진다. ‘보금자리’의 어머니들은 이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우신다. 두고 온 자녀들 생각에 조금이라도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노력한다. 아픔과 아픔이 만나 서로를 싸매주고 치유하는 일이 교회 공동체를 통해 일어나고 있다.

단순히 정상가정이라는 형태가 아름다운 가정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유독 정상가족이라는 개념에 집착하는 한국교회는 자칫 이러한 현실에서 진정으로 복음의 위로와 영적인 치유가 시급히 필요한 돌봄의 일차적 대상자들을 적극적으로 섬길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또한 오히려 그들에게 상처를 주어 교회를 떠나게 하는 결과를 발생시키지 않는지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전혜선 그림

교회, 한부모가정의 가정이 되어야

우리는 여전히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 ‘가족’하면 밖에서 일하시는 가장 아버지, 살림을 하시는 인자하신 어머니, 행복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가정의 달, 교회에서 가족 설교를 할 때나 가족에 대한 예화를 소개할 때에도 이런 이미지가 등장하기 마련이다. 가족의 회복은 대단히 중요한 선교이다. 그리고 결혼을 통한 혈연중심의 가족이 어려가지 이유로 해체되지 않도록 사회와 교회가 관심을 가지고 교육해야 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이 현대사회에 출현하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부정하거나 비정상의 의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아니 된다.

성서에서는 하나의 보편적 가족형태를 찾기가 대단히 어렵고, 2000년 전의 구약의 가족 형태를 현대사회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예수님은 그 당시 지배적인 혈통중심주의 비판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가족의 개념으로 확대하시며 형제, 자매라 부르신다. 가족의 형태가 꼭 가족의 가치를 실현시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가족이 마땅히 누려야 할 아름다운 기독교 가정의 가치를 가족 구성원들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 더 중요한다. 예수님은 건강한 가족을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가족 중심주의로 인해 이웃사랑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실현하지 못하는 가족을 비판하신다. 한부모가정은 문제가정도, 결핍된 가족도, 비정상가족도 아니며, 더군다나 범죄 집단도 아니다. 한부모가정이 현실적으로 겪는 다양한 어려움들을 사회가 외면해도, 교회는 그들의 빈 곳을 채울 수 있는 대안가정이 되어야 한다.


따뜻한 방 한 칸이 필요하다

현재 예지교회는 ‘방 한 칸 프로젝트’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6개월이 지나면 충분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쉼터를 나가야 하는 어머니들과, 돌아갈 가정도, 돌보아줄 사람도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이곳을 떠나야 하는 청소녀들을 위해 작은 나눔으로 방 한 칸을 마련하자는 취지이다. 이는 이들을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고 섬기기 위한 생활공동체 운동이며, 혈연 중심의 가족 개념을 초월한 예수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대안가정운동이다. 그 결과, 지난 2월에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두 학생이 방 한 칸을 마련해 한 가족이 되어 생활하고 있다. 방 한 칸이 없으셔서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주님.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가정이 해체되어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을 예수의 사랑으로 회복시킬 수 있다면, 이것이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 아닐까? 내 자식, 남의 자식 구분하지 않고 진정으로 그리스도 사랑을 실천할 때 교회가 천국 같은 가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한국교회는 진정한 가족공동체로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장애인도, 마음이 상한 자들도, 가정이 해체된 자들도, 온전한 가정을 소유한 자들도, 가난한 자들도, 부요한 자들도, 실업자들도, 전문인들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뿌리 깊은 영성은 삶의 자리에서 배우고 훈련하게 되는 것이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물이 아래로부터 채워지듯 그렇게 말이다.


김은혜숭실대 교수. 예지교회를 담임하면서 청소녀, 어머니들을 위한 생활공동체 운동, 대안가정운동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