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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0 11-12 잡지, '여기'를 기록하다

잡지, ‘여기’를 기록하다 4│이들이 있어 대전이 맛있다 - 대전엔 <토마토>

서울에서 KTX로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는 대전. <토마토>를 취재하러 가는 길, 새삼 참 가깝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과 가까워진다는 건 생활면에서 더 편리해지는 것도 있겠지만, 그 뒤편에는 놓치는 것과 잃어버리는 것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얼마 전, KTX로 전국 주요 거점 도시들을 연결해 2020년까지 전국을 1시간 30분 대 생활권으로 만든다는 소식을 들으며, 꼭 그럴 필요가 있나 하는 마이너적인 생각이 들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서울과 거리가 짧아진다고 해서 서울을 향유할수 있는 것은 아닌데, 서울과 가까워지면 또 모든 것을 서울에 의지하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인천이 그런 것처럼. 글ㆍ사진 정미희


더 재밌는 일상을 꿈꾸며
“대전은 좀 지루한 도시예요. 속도감이 없다고 할까요? 일상적인 감동이 부족한 공간이라서 문화적으로 활력을 주고 싶었어요. 그냥 살아내는 것 말고 살아가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죠. 우리처럼 본성에 귀를 기울이면서 사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요.” 잡지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지역 문화 월간지 창간을 꿈꾸는 대전 청년 5명이 모였다. 오감을 자극할 수 있는 과일 이름을 잡지 제호로 만들기로 하고, 택한 것이 바로 <토마토>. 그리고 2007년 5월, 창간을 하기까지 1년여의 시간을 숱한 고민과 토론을 하며 보냈다.
“우리는 문화를 삶 전체로 정의했어요. 예술 전문 잡지가 아니라 사회학적 정의 그대로의 문화를 생각했죠. 그리고 그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진실, 또 그 이상을 바라보는 우리만의 시각은 좀 더 새로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을 누군가 던져주는 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자신만의 가치관으로 읽어내는 것은 가치가 있는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또 하나, 그들의 발목을 붙잡은 것은‘ 왜 이 시점에서 종이 잡지를 만드느냐’는 내부적인 질문이었다. 그들이 잡지 기획을 하던 때는 통신사 등에서 만들어 배포하던 무가지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폐간되는 침체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그들은 ‘감동’의 힘을 생각했다.
“눈에 일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작업을 진행하는 사람들을 내는 것을 상상했죠. 세상이 만들어낸 가치가 아닌 정말 있는 그대로의 가치와 진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런 가치는 <토마토>가 발간하면서 쭉 이어온 <대전여지도>라는 꼭지에서도 발견된다. 대전에 대한 철저한 기록이라는 기획 의도를 지니고 마을 단위로 주민들의 증언을 청취하는 것은 기본이고, 마을의 형태와 주로 자라는 수목, 들꽃, 역사 등을 담아냈다. 독자들로부터 꼭 해야 하는 작업인데, <토마토>가 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대흥동의 문화 아지트

그렇게 자라온 <토마토>는 올해 5월에 3주년을 맞이했다. “처음 6개월은 잡지만 만들었어요. 그렇게 정신없이 잡지만 만들었는데, 망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그 때부터 돈 되는 일을 하기 시작했죠. 포스터, 광고지, 사보, 책… 의뢰가 들어오는 건 거의 다 했어요.” 잡지에 쏟을 에너지도 늘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다른 일을 하는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래도 잡지만 계속 나올 수 있다면 다 괜찮았다.



그렇게 열정으로 잡지를 향해 달리던 이들은 대흥동으로 사무실을 옮기면서 새로운 가능성과 마주하게 됐다. 그 중 하나가 올해로 3회를 맞은 ‘대흥동립만세’다. 대흥동 일대에서 일주일간 진행된 이 축제는 외부 지원금 없이 대전에 있는 문화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기획하고 진행했다. “축제를 열자는 이야기가 <토마토>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어요. 연결고리가 없던, 숨어있던 예술인들이 모이는 구심점이 역할을 했던 거죠.” 대흥동의 문화공간들은 갖가지 문화행사를 열었고, 거리 곳곳에서는 아트프리마켓과 공연들이 펼쳐졌다. 그저 돗자리를 폈을 뿐인데, 예술가와 시민들은 반응은 뜨거웠다. “저희도 몰랐어요. 대전에 이렇게 많은 예술가들이 있었는지. 따로 홍보 하지 않고, 온라인 카페만 만들어서 참가팀을 모집했는데 어디서 알고 찾아왔는지 거기서만 30팀이 모였어요. 항상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죠.” <토마토>가 꿈꾸는 일들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일상에서 만나는 우연한 경험을 통해 감동을 경험하는 것 말이다.

2009년 7월부터는 어려운 형편에 1층에 카페 ‘이데’를 운영하면서 잡지와 함께 유기적인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매년 공모하는 ‘월간 토마토 문학상’(상금을 위해서 매년 적금을 든다)은 당선작이 쌓이면 책으로 묶어낼 예정이고, 11월에는 처음으로 재즈콘서트를 기획해 무대에 올린다. 잡지를 넘어서 다양한 문화 사업을 통해 신명나게 일하고 싶다는 애초의 꿈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대흥동에 가면, 북카페 ‘이데’가 있지. ‘이데’에 가면 이런 걸 할 거야 라는 기대감을 주고 싶어요. 이 건물 자체가 명소가 됐으면 하는 거죠. 지나가던 사람들이 ‘항상 여긴 뭘 하네’ ‘여기는 뭐하는 데야’라고 궁금해 할 거리들을 계속 만들고 싶어요.” <토마토>가 있는 한, 대흥동이 심심할 일은 없을 것 같다.


인터뷰 말미에 편집장 이용원 씨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은 진짜 재미있으려고 준비하는 시간 같아요. 이제 곧 정말 재미있어질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마음이 설레였다.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없다, 없다 불평만 하는 사이, 없는 것을 일구어내는 사람들을 만나니 마음에 새로운 꿈을 품게됐다. 지역을 일구는 건, 삶을 일구는 것과 같다는 <토마토> 독자의 말처럼 대전 문화를 일구는 <토마토>가 앞으로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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