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살아가라, 두려움 없이 l 비폭력주의 래퍼 박하재홍 씨

에디터 노영신
 


오랜만에 찾은 신촌기차역 앞에 서서 깜짝 놀랐다. 금방이라도 어디론가 나를 데려갈 것 같았던 설레는 추억의 기차역은 거대한 쇼핑센터극장 괴물에 가려져, 마치 멋스러운 그림에 먹물을 휙 끼어 얹은 모양새다. 깨끗하게는 복원 됐는지 모르지만 느림과 멈춤, 그 여백의 미는 상실한 채, 꾸역꾸역 불편하게 꽉 들어찬 공간은 여기가 ‘도시’라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기차역이라는 이름표가 무색해지는 순간. 이렇게 사라져가는 것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 가슴을 쓸어내리며 기차역 근처의 후미진 골목으로 들어서니, 도시가 아닌 듯한 한옥의 정겨운 풍경 끝에 아름다운 책방 ‘뿌리와 새싹’이 수줍게 자태를 드러낸다. 붙잡아야 할 것들을 온 몸으로 놓치지 않으려 살아내는 한 젊은이, 비폭력주의 래퍼 박하재홍 씨가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곳이다.


뿌리가 내리고 새싹이 움트는

‘일하는 사람과 그 공간이 이렇게 닮을 수도 있구나.’ 그와 이야기를 나누기도 전, 책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여기저기 쌓아 놓은 책들,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나 있을 법한 앙증맞은 나무의자, 녹차와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작은 바까지. 어디서고 털썩 주저앉아 책을 읽어도 좋을, 헌책방 특유의 고풍스러움과 편안함이 물씬 풍긴다.

“가장 정직하게 돈을 버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었어요. 자기소개서에 딱 서너 줄, 그 고민을 적었죠.” 6년 전, 간단하고도 솔직한 자기소개서를 쓴 덕분인지, 아름다운 가게에 처음 입사하게 된 매니저 박하재홍 씨. 2005년 10월, 책을 통한 나눔의 정신이 뿌리 내리고, 이웃과 자연을 연결하는 예술 감수성의 새싹이 움트는 책방, ‘뿌리와 새싹’을 맡아 오픈하게 되었다. “기증과 판매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순환과 작은 것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재활용의 예술이 ‘뿌리와 새싹’의 큰 자랑이죠. 방문하는 누구든지 창작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곳이에요.” 저녁 이후에는 공연, 전시, 모임 등이 펼쳐지는 문화 공간으로서 늘 함께 꾸미고 만들어 나가는 터가 된다고.


직업을 넘어선 자신을 만나다
서점 매니저라는 것 말고도, 그에게는 이름표가 많다. 평화운동 진영에서는 꽤 알려진 ‘실버라이닝’ 그룹의 래퍼이자 채식주의자, 환경운동가 등이 그렇다. 자신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무엇일까. “비폭력주의 래퍼요.” 인사동 길바닥평화행동 거리공연도 했고, 대학로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무대에 서기도 했다. 평화와 환경에 대한 관심, 그리고 음악에 대한 열정을 ‘거리공연’이라는 출구와 ‘랩’이라는 장르를 통해 소통하고 나눈다. ‘실버라이닝’이란 ‘먹구름 뒤 해가 비치면 생기는 은빛 테두리 모양’을 뜻하는 것으로, 절망 속 희망을 갈망하는 마음을 담았다. 먹구름의 가장자리가 빛난다는 것은 그 뒤에 해가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라고. 작사·작곡한 곳은 모두 인터넷에 올려 누구나 내려 받을 수 있게 했다. 무대에서 불러지기 원하는 노래이기에, 저작권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서이다.

서태지 세대로 보이는 이 젊은이, 이렇게 철이 든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90년대 홍대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뮤지션들과 콘텐츠를 처음 접하면서 내 삶에 다른 시선이 꽂혔어요. 그 때,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런 그가 군대에 들어가서 보낸 시간들은 혹독하리만큼 숨이 막혔다. 군대에서의 힘들었던 삶은 제대 이후, ‘나’다운 삶을 살아가고픈 열망을 불타오르게 했다. 이름을 바꾸고, 채식주의를 선언하고, 다니던 대학을 그만 두고서 래퍼로 음악을 시작했던 시점은 바로 이때였다. “이러이러한 ‘직업’을 갖겠다는 꿈이 없었어요. 그저 하고 싶은 일이 있었을 뿐이죠. 전 국어를 참 잘했거든요? 근데 남자는 이공계를 가야 한다는 전설 때문에 건축학과를 갔어요. 참 재미가 없었죠. 돈을 벌기 위한 직업, 직업을 갖기 위한 공부였으니까요.”


도시에서 채식주의자로 산다는 것
그의 비폭력주의는 이제 채식주의 삶으로 이어진다. “제게 있어 채식은, 그저 삶의 방식이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행복하기 위한 삶의 가치에요.” 보통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한다고 하는데, 본질적 행복 운운하는 채식이란 대체 무엇일까. “채식을 하는 이유는, 제가 도살을 못할 것 같기 때문이에요. 도살은 제가 하기 싫은 일인 거죠. 만약 육식을 한다면, 내가 하기 싫은 도살을 다른 사람이 하도록 제가 스스로 허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살아 왔듯이, 스스로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미루지 않는다는 것. 그의 삶의 가치에는 언제나 자신, 그리고 이웃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참 많은 직업을 만들어내지만, 스스로 애착과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직업은 많지 않아요. 경제적 우위에 있는 사람이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미뤄서 만들어지는 직업이 많잖아요.” 돈 때문에, 무슨 일이든 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서민들의 눈물 뒤에는, 직업의 귀천이 없는 것처럼 포장하는 자본주의 사회구조가 있다. 그 구조를 거스르며 살아간다는 것 또한 힘에 부치는 일이리라. “가을에 골목이 낙엽으로 그득해지면 그 멋진 낙엽들을 쓱쓱 청소해 쓰레기봉투에 담아 가지고 가요. 낙엽을 쓰레기로 만들어버리는 곳, 청결을 위해서는 자연도 폐기물이 되는 곳이 도시에요.”

문화적 욕구를 버릴 수 없는 딜레마가 있기에 도시를 떠나지 못했던 그는 결국, 도시에서의 대안적 삶은 태생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단다. “얼마 전 시골에 사시는 어머니가 ‘감 장아찌’를 해오셨는데 참 신기하더군요. 감을 따서 말리고, 일정한 시간을 보내고 장아찌로 담가 이런 음식을 만들다니. 어머니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음식이잖아요. 배우고 전수받아야 할 지혜인데, 전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싶어요.” 맞다. 요즘 젊은 도시인들은 식물을 잘 키울 줄 모른다. 텃밭을 가꾸는 일도 서툴다. 김장 하고, 된장 담그는 젊은 엄마들이 얼마나 되겠나. 어쩌면 앞으로 김치와 된장을 수입해야 할 지경에 이를지도 모를 일이다. 도시에 살면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은 정작 이 삶의 지혜가 아닌지. 


애매한 경계를 살고 싶다 

이렇게 자기 생각이 확고한 사람, 자신과 다른 생각의 사람들과는 어떤 조화를 이루어 갈까. “충돌이 일어나게 마련이죠. 그 충돌을 피하기 위해 잘 안 만나게 되기도 하구요. 제가 관심 갖는 분야의 사람들은 새롭게 알게 되는 동시에, 그렇지 않은 사회적 의미의 친구는 점점 없어지더라구요.” 하다못해, 친구들과의 식사 자리에서조차 삐딱한 시선을 감내하며 육식을 거부해야 하니 말이다. 무엇이든 ‘운동’을 할 때는 찬성과 반대가 있게 마련이다. 가상의 선이 생기는 거다. 그러나 비폭력주의는 달랐다. “제가 처음 비폭력주의를 따르게 된 건, 이것이 선을 없애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무언가 애매해서 좋았어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오히려 선을 긋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네요.” 나와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포용과 관대를 베풀며 살고자 했는데, 어느 샌가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뭉쳐서 지내고 있더라는 그의 솔직한 고백이 가슴에 큰 숙제를 안겨 준다.


그는 직업에 매여 있지 않다. 그저, 자신의 삶을 이끄는 가치를 향해 오늘 이 순간을 살아갈 뿐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평화? 환경? 채식? 음악? “자기만족이요.” 대답은 역시 명쾌하다. “나 스스로 내 삶에 만족하지 않으면 다 소용 없어요. 내면의 충만함에서 나오는 진정한 만족을 누리며 두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 두려움은 두려움을 낳는다. 그러나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에, 비로소 두려움의 대상은 사라질 수 있다. 이대로는 아니다 싶은 지점에서 과감히 삶의 방향을 전환하고, 내면을 물들이는 두려움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지기 위한 용기를 낼 줄 아는 사람. 이제, 그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생각하면 밀려드는 이 두려움이 더 이상 두렵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