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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2011 01-02 문 열자, 깃들다

문 열자, 깃들다 6│손님으로 사는 집, 공간과 삶을 공유하다 - 공동주거 공간 ‘빈집’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에 대한 우리의 애착은 대단하다. 없으면 가질 수 있을 때까지 온갖 희생과 투자를 아끼지 않고, 하나를 가진 후에도 더 갖고 싶어 한다. 소유에 대한 욕구는 넓이와 개수로 끝없이 이어진다. 집을 곧 화폐이자 투자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런 통념을 무시하고, 집은 그저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그것을 갖기 위해 안달복달 하지 말고 여기 함께 살자고 권하는 집이 있다. 이름조차 비어 있는 빈집이라 불리는 곳. 철저히 개인의 소유이자 사생활 공간인 집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는 그들의
발상과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글·사진 정미희


함께 살기로 결심하다
MBC 드라마 <역전의 여왕>에 등장하는 구용식(박시후 분)은 드넓은 아파트에 혼자 산다. 33세 나이에 대기업 본부장 자리에 앉은 그는 누군가를 집에 들이는 게 싫어서, 도우미도 쓰지 않는다. 그의 하나뿐인 친구가‘ 서울에 친척도 없고, 방도 남아도니까’ 같이 좀 있자고 해도 딱 잘라 거절한다. 그렇게 혼자 있으려고 애쓰지만, 그는 고립을 즐기지도 못한다. 그러던 그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오갈 데 없는 기러기 아빠 목영철 부장(김창완 분)을 집에 들여 함께 살면서 삶의 변화가 찾아온다. 발에서는 된장 냄새가 나고, 남의 칫솔을 태연히 사용하는 위생 관념 제로인사람과 함께 산 후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행복에 가까워진다. 33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알게 되고, 자기답게 표현하는 방법을 깨달은 것이다.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함께 산다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찾는 일임을 새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빈집의 장기투숙자 김디온 씨도 부모님을 떠나 독립은 했지만 철저히 혼자 사는 것을 추구했었다. 빈집이 처음 생길 때부터 곁에서 지켜보며, 때론 그곳에 머무르며 지냈지만 함께 사는 일은 망설여졌다. 그렇게 1년을 빈집 주위를 맴돌다 고민끝에 합류를 결정했다.“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하고 집에 들어와서 또다시 사람이랑 부대끼며 산다는 것이 피곤하게 느껴졌어요. 사람은 혼자만의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었거든요.

빈가게’는 ‘빈마을’ 사람들이 1년
반의 고심 끝에, 지난 11월에 오픈한 가게다. 카페 겸 상점으로 맛있는 차와 핸드드립 커피, 간단한 식사가 가능하며, 직접 만든 집 반찬과 생협 상품 등 직거래 상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놀이꾼’이라 불리며,
놀이하듯 일하며 사는 것 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제 잠버릇이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될까봐 걱정도 됐죠. 그런데 막상 빈집에 오니 제 잠버릇이 제일 얌전한 편에 속하더라고요. 하하” 자신만의 울타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디온 씨는 빈집에 살며 사생활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과연 필요한 것일까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고시텔의 좁은 공간일지언정 타인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던 순간보다 때론 혼자 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이 공간이 더 낫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같이 살면, 청소도 덜하고, 물건도 나눠 쓰고, 커플끼리 싸우면 완충지대도 생겨요. 미운 사람을 같이 험담하고 나면 속이 후련한 것처럼, 내 속을 나눌 사람들이 곁에 있을 때 커플 간의 관계도 빨리 회복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서로 부족한 것들을 자연스레 채워주고, 채움 받으며 살게 되는 것 같아요.” 혼자 다 가지려고, 더 많이 가지려고 움켜쥐려는 오늘이 함께 나누는 것보다 행복한 오늘인가를 되묻게 한다“. 여기를 나가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면, 답이 나오질 않아요. 대출하여 집을 얻을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함께 복작거리는 이곳에서 사는 게 좋아요.” 빈집, 그 안이 더 궁금해진다.

굄이 아닌 순환의 공간
서울 용산구 용산동 2가. 남산 아래 첫 동네, 해방촌에 손님賓들의, 가난貧한 이들의 빈집들이 모여 있다. 2008년 2월, 다세대 주택 4층에 첫 둥지를 튼 빈집(아랫집)은 인근에 앞집, 옆집 등으로 늘어나 빈집이라는 형태로 다섯 집이 만들어졌다. 2008년 3명으로 시작한 빈집의 가족은 20여명의 장기투숙객과 셀 수 없이 많은 단기투수객들로 늘어났다. 빈집들은 엄연히 빈집 가족 누군가가 출자한 돈, 누군가에게 대출한 돈이 전월세 보증금으로 들어가 있다. 하지만 출자에 따른 보상이나 의무는 전혀없다. 누구나 빈집의 식구가 될 수 있도록 문턱을 없애기 위함이다. 그렇게 마련한 집을 게스츠하우스Guests' house라 명하고, 손님들에게 방을 내어준다. 보통의 게스트하우스Guesthouse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들러서 먹고, 마시고, 놀고, 쉬고, 자는 공간이지만 서비스를 해주는 주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한다. 빈집은 누구나가 손님이자 주인이며 가족인 것이다.


사람이 사는 데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돈의 문제는 각자 분담금을 내는 것으로 해결한다. 집에 머무르는 사람의 수에 따라 달라지지만, 보통 4~5명이 한 방을 함께 쓰면 이에 대한공간부담금으로 손님의 경우 하루 3천 원, 장기투숙자의 경우 한 달에 12만 원 정도(식비 포함)의 분담금을 낸다. 혼자 집을 구해 사는 것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한 달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턱없이 비싼 원룸이나 숨 막히는 고시원 쪽방 대신에 여럿이 함께 사는 삶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집 문제에 대해 자유로워지자 다른 선택의 문이 열렸다. 주거에 들어가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일을 하는 대신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선택의 자유를 얻은 것이다.

살림, 살기
빈집은 어느 누가 책임지고 운영하는 곳이 아니기에 집별로 월 2~3회, 마을 단위로는 월 1~2회 회의를 열어 빈집에 모든 것에 대해 함께 고민한다. 이런 소통과 합의의 과정을 통해서 서로 이야기한 것들을 지켜나가고, 지켜지지 않을 때는 당당히 요구한다. 이들이 함께 살며 부딪치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살림을 사는 것이다.
아랫집을 방문한 날, 디온 씨는 남자들이 살림을 너무 못한다며 운을 뗐다. 누군가 감자를 삶겠다며, 새카맣게 태워버린 냄비를 보여주며 속상해하는 것도 잠시, 처음 왔을 때는 아무것도 못하던 녀석이 이제는 제법 요리를 할 줄 안다며 칭찬을 한다. 처음 왔을 때 살림에 젬병이던 사람이 시간이 지날수록 살림꾼이 되어가는 것만큼 뿌듯한 것이 또 없단다. 그게 바로 함께 살아가는 맛이라면서…. 우리는 누구나 일방적인 희생과 돌봄에 머물러 있을 때 방기되어 있던 자신의 책임을 마주할 때에야 비로소 제대로 배우게 된다“. 혼자 일 잘하고, 조용한 사람보다 시끄럽고 지저분한 사람이 함께 살기 더 편해요. 고시형 인간은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고, 자기 할 일은 알아서 잘하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과 소통하며 함께 처리해 할 것들에는 서투르거나 무관심하죠. 시끄럽고 지저분한 사람들은 소통이 가능하고, 충고를 하면 변화하려고 해요.” 혼자서도 잘해요가 늘 칭찬인 건 아니구나 싶다.
빈집 안 곳곳에는 쪽지들이 붙어 있다. 단기투숙객들이 빈집을 방문했을 때, 지켜야할 규칙들과 이용방법들을 적은 쪽지들이다. 손님을 언제나 환대하지만, 손님들이 사소한 책임을 회피할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장기투숙객들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좋은 시스템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빈집 사람들은 오늘도 손님을 환대하고, 고스 란히 드러나는 개인 삶을 공유하며, 기꺼이 서로 부대끼며 살림을 살아내고 있다.

공동체를 말하는 나는, 과연 얼마나 순환형 인간으로 살고 있는가를 되묻게 된다. 빈
집이라는 커다란 빵을 겨우 손톱만큼 살짝 떼어 맛본 후 ‘빈집 맛은 이래요’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살아보지 않고 쓴 글이기에 더욱 그렇다. 빈집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면, 빈집에 들려볼 일이다. 잠깐 방문해도, 하룻밤 묵어도, 아예 눌러 살아도, 내가 문을 연만큼 빈집도 문을 연다. 취하려고만 하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눌 때 더 풍성해지는 원리는 이곳에서도 명확히 적용된다. 그곳만 활짝 열려 있기를 기대하지 말고, 그대의 문부터 여시길 바라며.


빈집
binzib.net
070-8242-16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