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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길에게 길을 묻다

스코틀랜드의 자존심, 북방의 아테네 ㅣ 에딘버러(Edinburgh)




선물 상자 같은 도시

흔히 에딘버러를 북방의 아테네라고 한다. 지금은 스코틀랜드의 수도이며 인구 550만의 결코 작지 않은 도시,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에딘버러는 스코틀랜드인들의 자존심이며 상징으로 존재하는 도시다. 이곳은 잉글랜드와의 국경에 인접하여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났던 아픈 역사적인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소박하고 인정 많은 삶의 마음이 묻어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Scotch Mist라고 불리는 부슬부슬 내리는 비와 혹독한 기후에서 생활하여 고집이 매우 세며, 술을 즐기고 인생을 사랑하는 이곳 사람들은 대범하면서도 소박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정이 두텁다. 스코틀랜드의 방언이 정겹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 번 방문을 하면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 곳, 그곳이 바로 스코틀랜드이다.

에딘버러로 가기 위해서는 비싼 가격의 기차보다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빅토리아 코치스테이션에서 야간버스를 왕복 25파운드에 이용할 수 있다. 7시간의 지리한 여행을 알리는 푸른빛의 아침 햇살이 닫힌 차창사이로 살며시 들어와 지친 몸을 흔들어 깨운다. 새벽에 이곳에 도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다. 에딘버러는 온 도시를 이런 여행자를 위해 선물로 포장해 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초입에서부터 밤 여행의 피곤을 떨쳐버리기에 충분히 아름답고 예쁜 상점들이 여행자를 반긴다. 온 도시가 영화세트처럼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모습에, 차창 커튼을 삐죽이 열어제낀 여행자들은 입 안 가득 가벼운 탄성을 삼킨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가게마다 뽐내듯이 걸려있는 옷과 신발들을 보고 있자니 흡사 인형의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버스에서 내리자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건네며 커다란 노트 한 권을 손에 쥐어주며 읽어보란다. 노트에는 각 나라의 언어가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내게 한글로 된 페이지를 보여주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민박업을 하는데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요량으로 자기 집을 다녀갔던 손님들에게 방명록을 받아놨던 것이다. 그 중에 한국 사람이 남겨 놓은 글을 읽는데 재밌는 내용이 있었다. “이 할아버지는 바가지를 많이 씌우니 최대한 가격을 흥정해야 한다.”는 글이었다. 적정 가격까지 제시해 놓으면서.


에든버러 성이 간직한 역사

에딘버러 성은 엘리자베스 1세와 왕위를 놓고 싸우다 참수형에 처해진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와 관련된 성이다. 성 입구에는 멋진 군복차림의 군인들이 늠름한 모습으로 성의 입구를 지키고 있다. 그 옛날 들판을 누비며 조국을 위해 초개와 같이 목숨을 내던진 용감했던 전사들의 후예들이라 생각하니 자못 진지해 진다. 성안에는 국립전쟁기념관과 여러 종류의 무기가 소장된 유나이티드 서비스 박물관 등이 있다. 성안은 이른 시간인데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인해 혼잡하다. 성안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이른 아침의 투명한 햇살과 어울려 아름다움이 극에 달했다. 어쩌면 너무나 변하지 않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여서 타임머신을 타고 몇 백 년 전을 거슬러 올라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성을 둘러본 후, 볼만한 곳이 많은 시내로 나섰다. 홀리루드 궁전, 존녹스 하우스, 헌틀레이 하우스, 작가기념관, 스코트 탑 등, 온 도시가 관광 상품으로 치장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딘버러 성에서 홀리루드 궁전까지 약 1.6㎞ 에 이르는 로얄마일(Royal Mail)거리를 걸으며 잠시나마 스코틀랜드인이 되는 상념에 잠겨본다. 거리에는 토산물 상점과 부티크 카페, 박물관 등이 늘어서 있어 값싸고 좋은 물건을 살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에딘버러에서의 여행은 세월을 잊고 살아온 바쁜 일상을 돌이키는 시간이 되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 영국에 속해 있으면서 스코틀랜드만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로 인해 여전히 독특한 그들만의 문화가 보존되고 있다. 낯선 도시를 새롭게 사랑한다는 것. 결코 익숙한 일이 아니지만, 난 이미 며칠간의 여행으로 에딘버러를 가슴 한 켠에 묻어버렸다. 새로운 여행지를 향해 떠나면서도 도저히 눈을 뗄 수 없는 아쉬움으로 뜨거운 사랑의 숨결을 도시 곳곳에 뿌려놓고서야 겨우 발걸음을 뗄 수 있었으니…. 글 사진 신미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