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PECIAL/2011 05-06 마음의 쉼표

마음의 쉼표 3│멈출 것, 두려움 없이

자, 극장입니다. 사람들은 좌석을 살피기 위해 돌아다니고, 앉은 사람들은 팝콘과 콜라를 먹고 마시며 떠듭니다. 이에 질세라 큰 스크린에선 현란한 광고와 심장을 들뜨게 하는 (편집한) 예고편이 당신의 눈과 귀를 어지럽게 만듭니다(물론, 참 재미있어요). 시간이 되어 ‘비상시 행동요령’을 설명하는 영상이 나오고 그리고 이제 드디어 본 영화가 시작하려고 하는 순간…
있는 조명은 다 꺼지고 소리마저 사라집니다. 남은 건 어둠과 어둠과 어둠과 고요. 어! 여기저기서 핸드폰 화면이 켜집니다. 핸드폰을 끄시는 건가요?(왜 하필 지금?) 아니면, 무심결에 핸드폰을 드신 건가요? 몇 신지, 문자가 온 건 없는지?(그러니까 왜 하필 지금!)
그렇다면, 멈추세요, 그리고 즐기세요.
이 어둠을, 이 암전을!

사건劇과 사건劇사이
암전暗轉, dark change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아 낯설긴 해도 우리에겐 꽤 친숙한 것입니다. 본래는 무대공연에서 한 장면을 마친 후에 다음 장면을 위해 막을 내리지 않고 어둡게 하여 무대장치나 구성을 바꾸는 것을 말하는데요, 집에서 TV나 모니터를 통해 형광등을 꺼서 어둡게 하는 것도 일종의 암전이라 할 수 있겠지요. 그래요, 잠! 잠이야 말로 하루를 마감하고 내일을 시작하기 전에 맞는‘ 암전’입니다. 참 기능적이죠? 마치, 음식의 맛을 평가하는 자리에서 입 안의 잔 맛을 없애기 위해 레몬수를 마시는 것처럼, 앞서 진행되는 사건을 끝내고 다음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니, 핸드폰은 내려놓으시고 현실을 영화로 바꿔놓는 이 시간을 즐기셔야 해요. 아아, 저 쪽에 또 하나 켜졌네요. 아직 몇 초 지나지 않았을 뿐인데요. 왜, 왜 우리는 그 사이를 참지 못하는 것일까요? 설마 빛과 소리가 사라지고, 진행되던 사건이 끝나고 생기는 나와 남이 서로를 확인할 수 없게 되는 순간, 다시 말해 관계와 생활이 멈춰버리는 그 순간을 견딜 수 없어서인가요? 뭐 어때요, 우린 사람이잖아요. 본능적으로 외롭고, 생득적으로 소외되길 두려워하는, 약한 존재.

암전으로 끝나는 영화는 없기에
이런 순간은 종종, 예외 없이 찾아옵니다. 영화관이나 극장같이 정한 시간에서부터 예상치 못해 대비할 수 없는 때까지. 때마다 우린 무척이나 당황하고(계획에 암전을 넣는 사람은 많지 않죠), 어찌할 바를 몰라 무엇이든 해서 채워 넣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 상황은 두려울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잠’과 같으니까요. 밤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장담할 순 없지만 우리는 잠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요? 잠시 후에 또 어김없이 떠오를 태양과 넉넉히 주어질 내일을 의심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암전’의 순간들도 그 자체로 끝이 아니기 때문에 곧 펼쳐질 새로운 이야기와 사건을 기대하게 해줍니다. 그러니 나를 비울 때 채우시는 하늘의 은총을 기다리듯이 이 암전의 순간을 도리어 즐기세요. 암전으로 시작해 암전으로 끝나는 영화는, 연극은, 아니 삶은 없으니까요. 암전, 필요하다면 눈을 감아도 상관없습니다. 왜냐면 암전 동안에는 아무도 당신을 볼 수 없거든요. 심지어 빛이 내 눈을 자극한다 해도 못할 리 없습니다. 빛은 숨길 수 없는 거잖아요. 이젠 할머니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듣던 그 때처럼 영화를 즐기십시오.

자, 영화가 끝났습니다. 우린 이제 자리를 벗어나 다시 일상에 걸어 들어가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영화를 보는 일은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것입니다. 암전을 통해서요. 긴 하루의 일상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일, 하나의 모임, 하나의 회의 등으로 잘게 나누어 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하루를 시작하기 전, 어떤 한 사건을 맞닥 뜨리기 전 각자의 암전을 두는 것, 누리는 것, 받아 들이는 것은 어떨까요? 잠깐 멈춰서 다음에 벌어질 일을 기대하는 거죠. 그래요, 두려울 것은 없습니다. 그걸로 끝이 아니니까요. 글 원유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