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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사람과 사람

무대 위 이야기꾼 l 극단 하늘연어 조재국 대표

5월의 화창한 봄 날씨!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이다. 5월에는 자연도 좋지만 문화계 행사도 많다. 특히 기독교 문화계에는 부활절을 전후하여 뮤지컬, 연극 등 다양한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유럽에서는 부활절을 전후하여 ‘수난극’이라는 이름으로 각 지역마다 며칠씩 공연을 계속하는 축제의 전통이 있다. 드라마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들은 우리에게 삶의 풍성한 에너지를 준다. 그 매력적인 무대 위에 이야기꾼, 극단 ‘하늘연어’의 조재국 대표를 만났다. 
이재윤 |사진 김준영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
조재국 대표가 이끄는 극단 하늘연어는 요즈음 대학로에서 국악 뮤지컬 <햇님달님>을 공연하고 있다.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소재로 한 가족 뮤지컬인데, 마당극 형식으로 조명, 장치, 음향 효과는 최소화하고 배우와 관객이 추임새를 직접 넣는다. “아이들에게 좋은 공연을 보여 줘서 정서를 풍부하게 키워주려는 엄마들이 아이와 손잡고, 찾아서 오는 편이에요. 배우들이 직접 사물놀이를 하며, 노래까지 하니 흥겨운 분위기가 연출되어 즐거워하시죠.” 요즈음 중고등학교만 가도 학생들이 너무 바빠서 공연 한 편 볼 만한 여유가 없다며 안타까워한다. 팍팍한 현실, 건조한 성품은 자연스럽게 안착하여 이 시대 젊은이들의 성품 상相이 되었다. 좋은 공연은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정서적으로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는 크리스천으로서 뮤지컬 업계에 종사한다는 것에 큰 소명의식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른 장르도 그렇지만 뮤지컬의 경우도 꼭 성경을 직접 인용해야 기독교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번에 공연하는 <햇님달님> 같은 경우도 성경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적으로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극본을 쓰신 분도 목사님이구요,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이미 깔려 있는 작품이죠.”

빚진 마음으로 기독교 문화를 위해
조재국 대표는 한국 기독교 뮤지컬의 신화라고도 할 수 있는 <더플레이>의 원년 멤버였다. 뮤지컬 <더플레이>는 국내 창작뮤지컬로서 십계명 중 제 1계명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를 주제로 처음부터 기독교 작품으로 기획되었다. ‘우상’이라는 키워드로 현대인의 공허한 현실 인식에 크게 어필하여 엄청난 흥행을 이룩한 뮤지컬이다. 2002년 제8회 한국뮤지컬대상 5개 부문(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여우조연상, 극본상)을 휩쓸며 한국 뮤지컬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더플레이>의 초창기부터 배우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제작 스텝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의 중심부에 있었다. “그 때는 대단했죠. 기독교적 정신으로 시작한 작품인데 일반 대학로 뮤지컬을 통틀어 최고의 자리에 올랐으니까요. 당시 교회들이 한참 문화사역에 관심을 쏟던 초창기라서 목사님들도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더플레이>는 큰 돈을 추가로 투자를 받아 더 큰 공연을 시도했다. 그렇게 하며 과도하게 비용을 지출했고 공연을 계속하기가어렵게 됐다. “지금 돌아보면 저희가 너무 쉽게 교만해졌던 것 같아요. 그동안 고생한걸 한 번에 보상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도 같구요. 너무 큰 걸 바라보고 지출을 하다 보니 공연은 점점 힘들어졌죠.” 당시를 회상하며 도움을 주셨던 많은 손길에 감사한다고 했다. “기독교 작품이라는 이유로 저희에게 기대를 걸고, 믿고 큰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이 계세요. 그분들에게 너무 감사했고, 또 죄송한 마음도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 도와주신 손길들에 빚진 마음으로 기독교문화를 위해 섬겨야겠다는 일종의 긍정적인 부담감이 있어요.”

방황과 고민이 사라진 순간
그는 20대에 들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교회는 나름대로 열심히 출석하고 있었지만 30세가 되었을 무렵 정신적으로 큰 방황이 찾아왔다. “계속 무대에는 서고 있었지만 인생에 많은 회의 가 몰려왔어요. 내가 누굴까부터 시작해서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도. 정서적으로 가장 밑바닥의 시기였죠.” 그때 우연치 않게 <He>라는 기독교 뮤지컬 작품에 출연 제의가 들어왔다. 그리 크지 않은 배역이었는데 그것이 조 대표에게는 신앙의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 선일이형 탤런트 정선일이 예수님 역할을 맡았어요. 예수님의 모습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금식도하고, 실제 엄청난 체중감량을 해 앙상한 모습으로 무대 위에 섰던 생각이 납니다. 선일이 형이 무대 위에 예수님으로 분해 십자가에 달려있는 장면이 있었죠. 그 십자가의 예수님, 거기서 저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강렬한 경험이었고 그 한 순간으로 제 방황과 고민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이후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뮤지컬 배우의 제 2의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시간의 십일조를 드리자는 생각으로 동료 배우들과 자비량 지방 공연도 다녔다. 작은 교회, 군부대 등 문화적으로 소외된 곳을 직접 찾아갔다. “찾아가 보면 마이크 한 개가 없는 곳도 있었어요. 카세트 스피커에 맞추어 뮤지컬을 공연한 적도 있었죠. 처음에는 섬기는 마음으로 동참했던 배우들도 너무 열악한 환경이라 여기서는 공연할 수 없다고 말리기도 했었죠. 하지만 차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는 나눠주려고 간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채움을 받기 시작했거든요.” 그 때 무대 세트를 싸들고 지방을 찾아가면서 얻은 뿌듯한 느낌은 다른 데서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신만 신고 두 벌의 옷도 가지지 말라’는 말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그야말로 생생한 채움의 체험이었다.

치열하고, 치밀하게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던 조재국 대표는 극단 하늘연어를 창단하면서 이제 뮤지컬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하늘연어는 <엄마의 약속>, <베짱이와 바이올린> 등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좋은 뮤지컬을 대학로 무대에 계속해서 올리고 있다. “큰 공연도 좋지만 작아도 알찬 공연들이 많이 생겨야 한다고 봐요. 제 꿈은 좋은 공연을 올리는 직업공동체, 신앙공동체로서 극단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문화 공간을 마련해서 기독교적 작품을 계속 올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좋겠어요.” 기독교문화사역에 대한 소명감도 놓치지 않고 싶다고 말한다. “ 문화선교연구원에서 진행하는 부활절 뮤지컬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있어요. 우리 곁에 살다간 성자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의 이야기로 만든 뮤지컬 <그사람, 바보의사 장기려>의 제작 감독로 섬기고 있습니다. 대학로 공연을 마치고 이제 전국 초청공연 기간인데 이 작품을 통해 한국 교회에 선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다. “흔히 뮤지컬의 화려한 이면만 보고 쉽게 달려드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본질에 충실하지 않으면 버텨내기 힘든 분야입니다. 0.1%의 화려함에 현혹되어서는 안 될 거예요. 특별히 신앙인으로서 배우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는 전문성과 영성, 둘 다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배우에게는 연기자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무서우리만큼 치열하고, 치밀하게 연기 수업에 몰두해야죠. 이런 모습이 요즘은 크게 부족한 것 같아요. 배우라는 본질에 충실할 때 하나님께서 제공해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를 체험할 수 있을 겁니다.”



조재국 대표는 뮤지컬 배우인 아내 김명희 씨와 사랑
스러운 두 자녀를 키우며 도란도란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최근 뮤지컬 <천국의 눈물>에 출연중인 아내 김명희 씨는 공연 일정으로 바쁘고, 조재국 대표 역시 극단의 <햇님달님>공연을 꾸려가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가족의 사랑을 중심으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며 뮤지컬이라는 소명의 길을 걸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