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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클래식/국악의 숲을 거닐다

마음의 벽을 뚫고 들어오다

알토 랩소디 J. Brahms, Alt Rhapsodie , 1833~1897

마음이 울적할 때가 있습니다. 날씨마저
궂을라치면 마음의 울적함을 달래기가 여간 쉽지 않을 때가 있지요. 그럴 때 잠시나마 기분을 전환하여 주는 것은 제겐 아무래도 음악입니다. 음악이 주는 일종의 위안이랄까요. 하지만 그럴 때면 왠지 슬프고 비극적인 곡조에 더욱 더 끌립니다.
람스(J. Brahms 1833~1897)의 알토 랩소디(Alt Rhapsodie, op.153)에 이끌리는 것처럼 말이지요. 알토 랩소디, 이 곡은 참 묘한 데가 있습니다. 제목 그대로 알토 특유의 중저음이 주를 이루는 브람스 특유의 침통함에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다가도 어느덧 곡의 후반부, 알토 여성독창과 남성합창이 어우러지는 웅장한 콘트랄토 부분에 이르면 어떤 종교적 희열마저 느끼게 하는 정말 매혹적인 곡입니다. 마치 음 하나하나가 비수처럼 마음의 벽을 뚫고 들어와 잊고 있던 삶의 아름다운 순간을 일깨워주는 신비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곡이랄까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알토 랩소디를 우울증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의 치료 음악으로 사용한다는 군요. 또 무엇보다도 브람스 자신의 고통스러운 체험이 이 치유와 회복의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구요.
알토 랩소디는 브람스가 괴테의 시 “겨울의 하르츠 여행”에 곡을 붙인 음악입니다. 이 시는 괴테가 자신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절망에 빠진 젊은 친구, 프레싱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시였습니다. 알려진 대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한여인에 대한 사랑과 실연의 아픔을 비극적으로 그린 연애 소설로 당시 유럽의 젊은이들에게 자살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괴테에게 고민을 담은 편지를 보냈고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프레싱이었죠.
괴테는 실연의 절망에 빠져 있던 그를 돕지 않을 수 없었고 그와 하르츠 산을 여행하며 인생의 지혜로 그를 위로하고자 신의 위안을 구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이 괴테의 시에 바로 브람스가 곡을 붙였지요. 거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듯합니다.
아시듯 브람스는 스승인 슈만의 아내 클라라를 평생 연모했습니다. 그 사랑은 그야말로 숭고한 것이었으며 정결한 것이었지요. 급기야 그의 연모의 마음은 클라라의 아름다움과 기품을 그대로 간직한 딸 율리에게 운명처럼 향했습니다. 여전히 클라라에 대한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일까요. 이 때 브람스의 나이 36살이었고 율리는 24살이었습니다. 하지만 브람스는 이번에도 클라라에게 그리하였듯 말없이 율리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애절한 사랑을 알 리 없던 율리는 이탈리아의 젊은 백작과 약혼하였고 브람스는 실연의 아픔으로 처절한 고통을 느낍니다. 그는 남모르는 이 실연의 아픔을 이겨내고자 작곡에만 몰두하지요. 율리의 결혼식이 치러진 후 브람스는 클라라에게 힘겹게 곡을 건냅니다. 바로 그 곡이 클라라가 “음악에 스민 깊은 고통과 감동이 느껴지는” 작품이라고 극찬했던 알토 랩소디였습니다.
알토 랩소디는 그야말로 브람스 자신의 영혼을 위한 곡이었습니다. 평생 지속한 이루지 못한 사랑과 회한, 아픔이 이 곡에 고스란히 담긴 셈이니까요. 그러나 이 곡을 그만 아닌 우리를 위한 것으로 느끼는 까닭은 그 고통마저 음악을 통해 승화하려 한 인간의 고뇌와 갈망 그리고 신의 위로가 우리의 영혼에 있는 그 무엇과 깊이 공명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게 아마도 음악의 신비겠지요. 절망의 사막을 건너 수천의 샘을 발견한 영혼이 들려주는 깊은 신비 같은 것 말입니다.

당신의 시편에
사랑의 아버지시여
그가 들을 수 있는 하나의 소리가 있다면
그것으로 그의 마음을 위로하소서
그의 흐려진 시야를 맑게 하시어
수천의 샘물을 발견하게 하소서
사막에서 목말라하는 그에게
(알토 랩소디 마지막 3부 중에서)

백광훈|따사로운 창가에서 클래식과 커피한잔을 즐길 것 같지만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열혈 애청자인 문선연의 책임연구원이자 두 아이의 아빠고 목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