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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UALITY/두 손을 모으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던 삶의 자리를 찾아가다 ㅣ 박귀용 목사


산을 오르거나, 길을 걸을 때 먼저 걸어간 사람이 있다는 건, 아니 누군가 먼저 걸어간 길을 따른다는 것은 뒤 따르는 자에겐 축복이요, 은혜다. 우리는 종종 예수를 따른다고 표현한다. 신앙은 길을 걷는 것이기에 예수님을 따르고자 한다는 고백과 동시에 예수님에게서 보고 들은 것을 말하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기도하려는 방식을 따르려는 선택인 것이다. 삶의 자리에 그분을 따르는 방식이 자리를 잡아, 본디부터 그러하게 드러난다면 이것이야 말로 영성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그분을 따르기로 한 방식을 그 어떤 순간에도 놓지 않았던 순교자의 자리를 직접 찾아가 살피고 묵상하는 일을 통해 영성을 고양하는 일에 힘쓰는 누가성지교육원 원장인 안양교회 박귀용 목사를 만났다. 글·사진 김준영

순교자의 삶과 신앙, 즉 그들의 영성에 다가가신 것이 흥미롭다 1992년일 게다. 담임 목사로 섬기기에 앞서 고민이 참 많았던 시간이었다. 주님께서 마음에 던져주시는 묵직한 음성이 필요했던 시간처럼 느꼈다. 나에게 어떤 준비를 원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중 성지 순례 기회가 와서 떠났는데 정작 이스라엘 성지에서는 평범하게 보냈다. 여정 중 로마에 도착하여 카타콤 앞에 섰을 때다. 보통 날과 특별한 무엇을 준비한 것도 아니었다. 돌아서 나오는데 그 안에서 살았던 신앙의 선배들의 삶이 내 심중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예수를 믿는 신앙, 예수를 따르는 그 신앙을 그 무엇과 바꿀 수 없다고 고백하고 그 방법대로 산 그들의 삶이 나를 깨웠다. 두 무릎의 힘이 빠지더니 꿇고 말았다. 꿇렸다고 해야 맞을 거다. 그리고 그들이 살았고, 묻혔던 그 땅바닥에 입을 맞추었다. ‘너도 이들처럼 살 수 있겠는가’에 응답하고 싶었다.

손양원 목사님의 애양원 (위) 문준경 전도사의 증동리교회 (아래)

순교자의 정신을 내재화한 순간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 거기서 담담히 이렇게 고백했다.‘ 주님, 제가 앞으로 세상의 허탄한, 다른 말로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기복신앙을 포기하겠습니다. 카타콤의 신앙인들의 삶을 따르도록 노력하겠습니다’고 조아려 묵상했다. 그리고 내가 앞으로 목회를 하면 함께 삶을 나누어야 할 성도들과 이곳에 꼭 와서 같은 감동을 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순교지를 찾아다닌 동기다. 거창한 것도 아니다. 그리고 돌아와 안양교회를 만난 것이다.
그 후 국내 순교지를 가기로 한 것인가
돌아와서 2년 후에 담임하
고 있던 안양교회 일꾼 20여 명과 함께 이스라엘과 로마 등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특히 카타콤에서 내가 받았던 주님의 은혜를 전하고 함께 다짐하고 그렇게 살자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듬해 입소문을 타고 40여 명이 함께 가기로 하고 준비를 했는데 그만 IMF를 만났다(웃음). 그래서 고민하던 차, 국내 순교 지역을 연구하시던 감신대 교수 한 분이 교회 출석하고 있었는데 그분의 제안으로 처음 국내 순교 사적지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한에 있는 기독교 순교 사적지를 훑으며 유형별로 묶어 시작을 했다. 대표적 사건 등을 연구하고 자료를 찾았다. 기독교 교육을 전공한 탓에 좀 더 교육적 효과를 주고 싶었다. 연구하고 돌아보며 오히려내가 우리나라 순교자들의 삶에 말할 수 없는 은혜를 경험했다.
국내 순교지를여행하는 것은 큰 유익이 있겠다
그렇다. 이스라엘, 혹은
초대교회, 로마시대, 터키 지역의 순교 지역은 조금 먼 이야기처럼 느끼기 쉽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앙의 선배들의 이야기는 시간적으로도 큰 차이가 없고, 바로 내 선배의 이야기이니까 오히려 찾아간 우리에게 그렇게 살겠노라고, 그 삶의 방식을 선택하겠노라고, 그 정신으로 오늘의 삶을 살아내겠노라는 용기를 더 심어준다고 할 수 있겠다.
순교자하면 한편으로 감당하기 힘든 의미를 성도에게
던져준다고 하겠다 그들을 교회의 사역, 일 중심으로 부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어떻게 일할 것인지를 심어주고 싶었다. 교회가 많고, 성도라 불리는 사람은 많지만 기복적 신앙에 빠져 주님이 원하시는 뜻에는 관심이 없다. 영성은 다른 것이 아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매순간 묻고 그 물음에 진지하게 응답하고, 그 응답에 현재를 살아내는 것이다. 그곳이 순교자의 정신, 그분들의 삶이 수렴하는 지점이다.
순교자의 영성은 어쩌면
현재 한국 교회에 더 필요하다 하겠다 내가 순교자의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주기철 목사님, 손양원 목사님이 하신 말씀과 맥을 같이 한다. 순교 신앙하면 죽는 것, 목숨을 내던지는 것만 자꾸 생각하는데 두 분을 연구해 보면 거기에 방점을 두었다기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에 두었다. 그렇게 살면 어떤 때는 칭찬도 받고 평안하기도 하지만 시대에 따라서는 박해를 받고 때론 목숨을 내 놓아야 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뜻인 말씀대로 사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순교자 정신이고 영성이다. 그렇다 한다면 기독교가 타 문화권에 처음 들어갔을 때 이 순교 신앙을 따르면 박해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기에 그 박해에서 생명을 걸고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다. 현재는 구별되어 사는 것에 대한 선택이다. 극한 이기심에서 진정한 이타심,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내가 아닌 이웃을 하나님 사랑함으로 드러내는 것이 순교신앙이다. 이 점이 더욱 순교자의 삶에 천착하게 했다. 사랑은 동기다. 이 사랑으로 우리가 내 삶을 그 사랑을 주신 분께 아낌없이 드리는 것이다. 내 삶에 먼저 부으셨기 때문이다.
언뜻 쉬워보여도 결코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목회자를 결코 환영(?)하지 않는다(웃음). 어쩌니 저쩌니 해도 성도에게 가장 큰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주는 목회자의 역할이

77인의 순교자의 영산교회 설도포구(위) 주기철 목사가 기도하러 다녔던 십자바위(아래)

그래서 크다 하겠다. 어
쩌면 세속적 그리스도인을 키운 원인에는 목회자가 세속적이다가 그 핵심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주 심각한 고민과 절절하고 통절한 고민과 책임 의식, 그리고 영성이 필요하다. 순교자들을 연구하고 순교지를 방문하면 천국을 향한 재림적 영성이 독특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상황이 그러했기에 당연하다 할 수 없지만, 어떻게 자신의 생명, 심지어 가족을 포기하며 살아낼 수 있었는가. 결국 하나님 말씀을 내 몸에서 온전히 세우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내 욕망을 맞대어 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꺼이 따르는 것이 바로 그들의 영성이고, 내가 추구하는 영성이다.
국내 순교자 영성의 독특한 점은 무엇인가
국내 순교자들을 보
면 내가 무엇을 하겠다가 출발점이 아니다. 내가 아니고 그 시대, 그 상황에서 내게 원하시는 것을 따름이다. 그 따름에 희생이 오고, 어려움이 와도 그저 주님을 따랐던 것이다. 처음부터 순교를 하겠다 혹은 무엇인가 위대한 일을 남기겠다가 아니었다. 그런 사람 아무도 없다. 사실 이런 영향은 그들에게 복음을 주었던 초기 선교사들의 영향도 크다 하겠다. 순교지를 방문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의 신앙 선배는 그 하나님을 온몸으로 사랑하고, 오로지 예수의 길만 좇았고, 그 유산을 오늘 내가 받아 그대로 내 삶에 드러내는 것이 이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영성일 것이다.

이 시대에 순교자의 영성과 신앙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자칫 난센스인 듯 보이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시대와 환경을 넘어 누구에게나 동일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눈에 드러나는 육체적 고통보다 더 심한 이 시대 기독교가 처한 상황에 순교자적 영성은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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