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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인디 : 구름에 달 가듯이 산다

이분들은 뼛속까지 락커입니다! ㅣ 게이트 플라워즈

시대별로 음악의 유행은 변한다. 록밴드의 모습도 그러하다. 1970-1980년대 록음악이 저항의 상징이며 마초적이었다면 오늘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모던’ 록은 달달하며 말랑말랑하다.
얼마 전 KBS가 <TOP밴드>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의대유행을 따라 밴드가 서바이벌 형식의 경쟁을 펼치는 프로그램이었다. 첫 회가 방영된 후 네티즌들의 수다꺼리는 예상치 못한 여성 진행자의 옷차림이었다. 왠지 조금은 어색한 듯한 검은 가죽 자켓에 가죽 바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록하면 검은 가죽
자켓이냐,’ ‘PD가 요새 음악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무대 디자인이 1980년대 후진바 같다’ 등등 프로그램에 대한 불만 섞인 반응이 나왔다. 확실히 음악은 유행이 중요하다! 어쨌거나 초반 혹평을 거치며 TOP 밴드는 점점 나름의 자리를 잡아나갔다. 눈에 띄는 몇몇 팀이 주목받으면서 평소 밴드 음악을 좋아했던 마니아에게는 약간의 갈증을 해소해 주는 역할마저 해내고 있다. 그 와중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야생마 같은 팀이 튀어 나왔으니, 바로 게이트 플라워즈!
그들은 정말 원초적 에너지를 소유하
고 있었다. 1990년대 세계를 휩쓸었던 얼터너티브록의 대표 주자 <펄잼>의 ‘에디 베더’와 흡사한 보컬, 지미 헨드릭스의 투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듯한 기타, 베이스와 드럼의 탄탄한 리듬 파트. 1980년대, 90년대 록에 푹 빠져 살았던 본인은 알아 볼 수 있었다. ‘저 인간들은 정말 락커다’ 물론 그들의 등장 초반에는 비호감 정서가 팽배했다. 보컬의 알아듣기 힘든 발음,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듯한 의상, 또 건반 없이 기타 한 대로 이끌어가는 구성에 대한 생소함 등, 대중이 보기에는 누구의 말대로 ‘정말 좋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할만 했다. 하지만 오디션이 지속될수록 신대철을 비롯한 멘토들의 극찬을 받으며(한번은 신대철이 ‘이 분들은 뼛속까지 락커입니다’라는 한마디로 무한지지를 표시한 바 있다) 게이트 플라워즈는 승승장구 했다. 온라인상의 관심도 ‘한국에 이런 밴드가 있었다니!’라는 호감으로 급변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CD가 다시 품귀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이들은 아마추어가 아니다. 이미 지난해 발표한 첫 미니앨범(EP) <게이트플라워즈>로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신인과 최우수 록 노래 부문을 수상했다. 앞서 2009년에는 교육방송 <스페이스 공감>의 신인 발굴 프로젝트 ‘이달의 헬로 루키’로 선정됐다.
그런 그들이 왜 TOP 밴드에 출
연을 결심하게 되었을까. 보컬 박근홍은 블로그에 TOP밴드 출연에 대한 변명(?)의 글을 올렸다. 그들의 앨범은 화려한 수상에도 불구하고 300장 밖에 팔리지 않았고 공연도 그다지 신통치 않다. 출판사에 다니는 박근홍은 업무가 많으면 그날 저녁 공연도 펑크를 낼 수밖에 없다. 기타 염승식은 영어 강사로 생활비를 벌고,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드러머는 시간 문제로 연습에 오기도 쉽지 않다. 아직 학생인 베이시스트는 학교 졸업 후 진로가 막막해 휴학을 한 상태다. 밴드가 살아남는 마지막 수단으로 TOP밴드 출전을 결정한 건지 모르겠다. 혹자는 그들의 음악 스타일이 너무 마니아적이라서 그런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개성 있는 음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게이트 플라워즈를 알릴 수 있는 통로가 너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비록 전 국민이 그들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이번 기회로 그들의 음악을 열렬히 지지하는 새로운 마니아층을 얻은 것은 환영할 만하다.
본인도 뒤늦게 구입한 그들의 CD는 록의 저항적이며 원초적인 에너지가 가득한 짜릿한 음반이었다. 건반, 또는 샘플하나 없이 우직하게 까랑까랑한 전자기타 하나로 끌고 가는 사운드가 일품이며 보컬의 무한한 에너지는 기존 한국 음악계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다. 게이트 플라워즈, 과연 파트타임 투잡밴드를 벗어나 전업음악인(?)이 될 수 있을까.
*이들의 또 다른 매력은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변신하는 태도이다. 무서운 눈빛으로 야생마의 모습을 보여주던 보컬 박근홍은 곱게 빗은 긴 생머리 사이에 검은색 뿔테안경을 쓰고 흡사 소녀처럼 조심스럽게 말하곤 한다. 마초적인 하드록과 말랑한 모던록사이의 시대적인 하이브리드랄까. 글 이재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