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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희망사항

문화선교연구원 2008. 12. 6. 14:59
 

“진희야! <조강지처클럽> 한다!!” 거실에 계신 엄마가 소리쳐 부르신다. 즐겨보시는 TV프로그램 시간이 되었으니 같이 보자는 거다.

어렸을 적부터 나와 동생은 엄마와 친구처럼 지냈다. 엄마가 우리 자매와 세대차이가 덜 나서도 아니고 우리 고민에 특별히 이렇다 할 결정을 내려주시는 건 아니지만, 우리 자매는 애교 많고 상냥한 엄마와 이야기하며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한다. 작년 봄에 동생은 언니인 나보다 먼저 결혼을 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티가 난다’라는 말이 있듯이 생각보다 동생의 빈자리는 컸다. 그래서 였을까. 직장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유난히 나를 반기셨다. 딸과 함께 하기를 원하셨던 것인데 나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인터넷도 하고 싶고 공부도 해야 했던 나는 밥만 먹고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뭔가를 같이 하자고 부르셔도 나는 무반응이었다.

가끔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올 때면 엄마는 그렇게 반가워하실 수 없는 거였다. 하루는 엄마가 나에게 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그것도 전화상으로 동생에게 하소연 하듯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런 일이 있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속상하기도 하고 내심 죄송스러웠다. 나는 자기중심적이라 혼자 모든 결정을 내려서 부모님의 마음을 종종 아프게 해드렸지만, 동생은 인생의 굵직굵직한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부모님과 함께 했다. 그래서 엄마는 당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잘 따르는 자식을 더 의지했었나 보다. 그 후, 나는 지난날의 내 모습들을 회상하게 되었다. 파스 붙여달라고 하시는 모습을 귀찮아 한 것, 핸드폰으로 전화하는 것 가르쳐 드렸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답답해했던 것 등….

“진희야! <조강지처클럽> 시작했다!” 이제는 굳이 보자고 하시진 않지만 같이 봐드려야 겠다. 같이 보면 더 재미있다고 하시는 엄마에게 냉정하게 대하기가 싫어서다. 이제는 엄마가 원하시는 것들은 친절하게 가르쳐드리고 살뜰히 챙겨드리고 싶다. 내 나이 올해 서른하나. 이제서야 철이란 게 들어가는 모양이다.



서진희|언제 어디서나 지혜롭길 원하는 마음 여린 그녀. 현재 문화선교연구원 간사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