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서 유를 창조한 도시, 캐나다 던컨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본능적으로 그림을 그려왔고 그 오래된 그림들은 후손들에게 역사를 공부하고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어왔다. 우리가 흔히 아는 벽화들은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나 색 바랜 느낌의 벽화들로 기나긴 세월의 역사를 알게 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런 벽화들을 보며 오래전 조상들의 생활상을 엿보게 되었다. 조상들은 그림을 통해 생활상을 남겨주었고 그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후손들이 해야 할 몫이다.
벽화가 마을을 살리다
벽화하면 우선 오래된 과거의 역사를 떠올리게 되지만 캐나다의 나나이모 던컨의 슈메이너스 벽화마을은 인위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고 아담한 도시다. 밴쿠버 섬에 있는 빅토리아와 나나이모 사이에 위치한 이 도시는 면적이 1.6km 정도로 작다. 전에는 제재소가 번성하던 마을이었는데, 제재소가 점차 폐쇄되면서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지고, 활기를 잃어갔다고 한다. 더 이상 이 지역을 방치 할 수 없다고 판단한 주민들은 1982년부터 일치단결해 도시 재건에 나섰다. ‘The Little Town That Did’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주정부의 원조와 동네 유지들의 노력으로 벽화에 의한 도시 이미지 살리기에 나선 것이다. 온 도시를 벽화로 채우기 시작했고, 벽화를 위해 거리도 정비하고, 도시의 이미지에 맞는 상점과 관광객들을 위해 편의시설 등을 새로 만들었다. 사실 변변한 공장도 없고, 관광객도 많지 않았던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하고 절박한 사업이었으며, 그 결과 요즘은 나나이모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한번은 꼭 거쳐 가야할 명소로 여겨지게 되었다.
인디언의 애수가 서려있는 도시
이 도시에서 벽화를 즐기는 방법은 간단하다. 벽화를 감상하기 편하도록 길가에는 노란 발자국 표시가 있는데, 그 표시된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순서대로 벽화를 감상할 수 있다. 발자국이 멈추면 벽화가 없다는 뜻이니 돌아서도 좋을 듯. 벽화의 그림으로는 오스트리아 탐험가의 모습부터 마을의 역사에 대한 소소한 얘기들을 다루었으며 이 지역이 과거 인디언의 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그림들도 많이 있다. 결국 그림은 말없이 역사를 나타내 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그림을 보며 오래전 이곳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의 전통양식을 구경할 수도 있고, 스스로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보는 느낌을 맛볼 수도 있다. 간혹 벽화 밑을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림속의 사람인지 아니면 실제로 걸어가는 사람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는데, 그 그림 앞에서 멋진 포즈로 사진을 찍는 즐거움을 느껴보면 더욱 행복한 여행이 될 것 같다.
벽화마을을 걷다가 어디선가 구슬픈 노래 소리가 들려 가봤더니 소나무 숲 속에 작은 야외 공연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한 남자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인디오였다. 인디언의 아픈 역사를 느껴서일까? 노래하는 목소리와 세상을 향한 그의 눈빛이 너무 슬퍼 보였다. 인디오의 전통 노래가 아닌 팝송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가 왜 그토록 내 마음을 흔들리게 했는지 모른다. 차라리 인디오의 전통노래를 불렀다면 덜 아팠을지도 모르겠다. 혼신을 다하는 그의 몸짓과 정성이,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이 나를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결국 난 <태오만시니>라는 그의 이름이 적힌 시디를 가방에 챙겨 넣고서야 마음의 부담이 덜해졌다. 여행에 돌아와 집에서 가끔 그의 노래를 듣지만 사실 그때의 감홍과는 다른 느낌이 들 때가 많은데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어서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도 인디언들의 삶이 곳곳에 배어 있는 벽화마을에서 인디언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들의 역사를 되새겨 본 시간들은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여행
지금의 던컨은 분명 이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창작품이다. 도시 구석구석에 스며든 정성들은 이 도시를 사랑하는,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자하는 마을 사람들의 노력의 산실인 셈이다.
이곳을 나오면서 나는 ‘우리가 여행을 하는 목적은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해 봤다. 단순히 벽화마을이라는 이름에 이끌려 이곳을 찾았는데, 그곳을 떠나오며 난 더 많은 것들을 가슴에 담아 올 수 있었다. 이곳을 근거지로 살아가던 인디오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느꼈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볼 수 있었다. 주어진 것과 만들어가는 차이는 무척 크다. 없다고 좌절하지 않고 그 부족한 상황에서 만들어가려는 정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여행은 그런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들을 알게 해주는 것, 그것이 여행이 갖고 있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