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공간과 사람 사이, 문화꽃이 피었습니다 l 감자꽃스튜디오 이선철 대표

문화선교연구원 2009. 3. 29. 18:51
‘스튜디오’라는 낱말로부터 펼쳐낼 수 있는 의미란 많지 않다. 사진관을 좀 멋스럽게 부른 느낌 정도랄까. “실제로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 찾아오실 때가 간혹 있으세요, 사진 찍으러 왔다고.”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 이선철 대표(44)는 강원도 산골에 자리한 ‘감자꽃스튜디오’라는 이 공간의 쓰임새를 딱히 정의내릴 생각도 없는 듯 보인다. 알쏭달쏭 들을수록 더 궁금한, 늙지 않는 40대 청년의 열정어린 삶의 이야기만이 이곳을 잘 설명해줄 뿐이다.


산 골 에  꽃 이 피 다
감자꽃스튜디오는 강원도 평창군의 한 폐교를 임대하여 리모델링한 문화예술교육공간이다. 서울에서 지내던 이 대표가 2000년 건강 악화를 이유로 강원도에 내려갔을 때, 마침 이곳 노산분교를 입찰에 부친다는 공지를 교육청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다. 자연 속에 살고 싶다던 막연한 꿈을 이루게 된 그는 처음에는 교실 한 칸만 고쳐서 지내다가, 조금씩 공간의 탈
바꿈을 꾀하였고, 그와 더불어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문화 프로그램 또한 기획하기 시작했다.
“학교건물의 원형을 보존하고 테라스처럼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를 겉에 붙인 격으로 리모델링 했어요.” 그래서인지 감자꽃교실, 감자꽃교무실, 감자꽃도서관 등 추억을 불러 오는 이름표가 공간 곳곳에 걸려 있다. 2층 교실이었던 넓은 방은 사람들이둘러앉아 교육도 받고 수다도 떨지만 간단한 공연이 가능하도록 악기들도 마련해 두었다. 심지어 녹음도 가능해서, 이 지역의명물인 아라리를 보존, 채집하는 작업도 이 공간에서 이뤄졌다. 평창읍내 초, 중고등학교와 연계한 국악 프로그램은 행정적인 면에서도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봄이 찾아오면 새 학기 시작과 함께 감자꽃스튜디오는 일주일단위로 요일마다 각기 다른 프로그램이 빼곡히 들어찬다.
월요일은 미술치료, 화요일은 다문화 가정의 며느리들을 위한 수업, 수요일은 방과 후 미술공부,
그 외에 장애인 프로그램과 노인 프로그램 같은 식이다. 철마다 열리는 옥수수 축제나 국악캠프도 제법 인기몰이를 한다.
“처음에는 주민들의 이해를 얻기가 쉽지 않았죠. 동네 목사님이 연배가 저랑 비슷하신데, 일부러 심방 오시고 친해지면서 많은 도움을 얻었어요.” 주일이면 예배드리고, 밥 먹고, 하루 종일 놀다 가는 공동체로서의 교회가 그곳에 있었고, 그런 교회와 연계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잠잠하던 폐교에 어느덧 시끌벅적한 동네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찾아들었다.



소 유 하 지 않 고 나 누 고 자 할 때
쓰러져가던 폐교에서 무언가 살아있는 소리와 움직임이 나타날 무렵, 군청에서 감자꽃스튜디오를 지원하겠다는 반가운 요청을 받게 되었다. 이 대표가 폐교를 임대하던 형식이었다면, 군청이 폐교를 매입하여 주인이 되고, 이 대표는 그것을 관리하는 차원의 형식으로 바꿔 지역 문화 활성화를 위해 힘을 모으자는 것이었다.“ 만약에 이 폐교는 내가 고쳤으니 내 것이라는 생각으로 닫혀 있었다면, 금의 더 많은 좋은 기회들은 만나지 했을 겁니다. 소유에 너무 집착하지 으면 오히려 기회는 많아요.” 언제라 이곳을 떠날 수 있으면서도, 지역주민보다 더 지역주민처럼 살아가는 그에게는 분명 남다른 넉넉한 여유가 있다.
교회에서 만난 지체장애인 김상덕 씨에게 감자꽃스튜디오의 사무직을 맡겨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뿐만 아니라, 한글을 가르치며 정서적인 돌봄을 자처하고 있다.“ 이제는 제가 자리를 비워도 사무실을 잘 지켜요. 최소한의 사무도 잘 처리하구요. 가끔 동네 개랑 놀다가 늦게 들어오기도 하지만요. 하하!” 때문에 상덕 씨의 가족들에게는 이 대표가 은인인 셈“. 때때로 스튜디오 앞에 이것저것 먹을 거리들과 생필품 등을 놓고 가는 분들이 계세요.” 인터뷰를 하고 있던 중, 사과 한 박스를 슬쩍 놓고 가려다 마주친 지역 주민을 바라보며 하는 말이다. 외부 프로그램을 위해 장소를 대관하는 일도 꽤 많다. 기업 등지에서 연수를 오면 워크숍을 비롯한 이런저런 체험은 감자꽃스튜디오에서 하고, 숙식은 마을 주민이 운영하는 지역의 펜션과 식당으로 안내한다. 몸에 좋고 꿀맛 같은 강원도식 산채식사와 눈앞이 훤히 뚫린 기막힌 숙소의 고도에 입이 저절로 벌어지는 곳이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거죠. 문화로 유인하여 관광으로 돈 벌자 하는 게 이런 거죠. 하하.”


뼈 속 까 지 기 획 자 인 사 람

그는 본래 잘 나가는 공연기획자였다. 공연을 보러 다니는 것을 무척 좋아했던 그는 대학교 4학년 때부터 초창기의 김덕수 사물놀이패 기획팀을 맡았다. 공연에 앞서 행정업무를 챙기고 소소한 사무를 보는 정도였지만 일을 배우는 과정이 너무나 신나서 오랜 시간을 푹 빠져 지냈다. 소통방법과 문화적인 패러다임, 무엇보다 중요한 인맥을 배워가는 동안 자신이 가장 좋아하고 잘 하는 것이 이 분야라는 것을 확신하게 했던 때였다.
4년 여 동안 영국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하고 온 그는 잠시 사물놀이패에 몸담았다가 96년 직접 회사를 차렸다.“ 폴리미디어라는 공연기획사였는데, 자우림, 긱스, 롤러코스터 등의 음반을 제작했어요. 99년에 이승환 전국 투어 콘서트를 기획, 진행했어요.” 그러나 막바지 제주도 공연을 앞두고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인생의 또다른 전환이 이루어졌다. 40대가 되면 생태나 농촌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건강이 악화되자 도시를 벗어나기로 마음먹은 것.“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경험, 언제 또 쓰러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삶 덕에 매일 눈 뜨는 아침이 더욱 새롭게 되었습니다.” 평창에 들어와 건강해진 그는 여전히 기획자로서 미처 발견되지 못한 가치를 엮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얼마 전에는 주문진 수산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맡아 일을 하다가, 근처에 기거할 곳이 필요해 사용하지 않는 노인회관을 임대했는데, 그것이 지금 제2의 감자꽃스튜디오가 되어 가고 있단다. 산에 하나, 바다에 하나 만들었으니, 이참에 다음에는 섬에 만들어보고 싶다고. 그동안 평창에서 마을의 사진을 찍어 달력을 만들어 왔는데, 주문진 수산시장의 살아있는 모습도 그처럼 찍어 멋스럽게 담아 달력으로 제작했다. 매일 보는 달력 하나에도 문화적 감수성은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저기 뒷집에 사는 아저씨, 아주머니가 양봉을 하시는데 상품으로 기획해 보려구요.” 언제나 주변 일상의 삶 속에서 활용할만한 지원 사례가 없나 안테나가 곤두세워져 있는 그가 말한다“. 삶이 기획이죠. 제가 생각해도 뼈 속까지 기획자인가보다 싶어요.”

예 술 경 영 , 사 람 이 중 요 하 다
차곡차곡 다져온 길이 지역문화공간을 활용한 성공적인 사례로 주목받으면서 이 대표는 점점 더 바빠졌다. 문화기획이나 예술경영 관련으로 출강하는 대학교도 여러 곳인데다 문화관광부의 무수한 사업들에도 종종 참여해 자문과 컨설팅도 하고 있다. 이 대표가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기획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핵심을 관계망에 두고 이를 백분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간 그가 만났던 많은 업계 사람들은 고스란히 새로운 활동을 엮는 고리가 되었다.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작은 학습에서도 사소한 대화에 일일이 신경 쓰고 만족도를 높이려고 애쓴다. 지역 공무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에서다.“ 이런사업을 할 때 그 대상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길목에 있는 사람들의 만족도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술가나 교육가들
은 무엇을 하겠다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과정을 세심하게 디자인한다든가, 과정의 길목에 있는 사람들을 만족시킨다든가 하는 게 부족해요. 당연히 파트너가 되어야 할 사람들이 적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길목에 있는 사람들이라! 문화 마케 팅도 결국엔 소통의 문제라는 깨달음이 온다.

“삶을 되돌아보면 언제나 그분은 저에게 여러 가지 사인을 주시면서 인도하셨던 것 같아요.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도시와 지방간의 문화적 격차를 줄여가는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지만, 나이가 좀 더 들면 더욱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 일이 무엇이 될 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요.” 다른 것은 잘 기획하는데,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유독 미리 계획하며 확신 속에 움직이는 것이 어색하단다. 그저 좋아하는 것, 잘 하는 것을 찾아 자연스럽게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욕심 없이 흘러 온 것이 아닐까.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아름다운 가치를 실현시키는 문화 기획자로서 살아가는 그의 삶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제 또 그가 틀을 깨고 만들어갈 새로운 공간은 또 어떤 아름다운 사람을 담아낼까.


감자꽃 스튜디오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이곡리 333
033-332-5337
www.potatostudio.org

글 이은정, 사진 노영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