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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걷거나, 혹은 삼키거나

문화선교연구원 2009. 5. 15. 09:02

여기, 이름만 대도 누구나 알만한 두 명의 여성 보컬의 새 음반이 있다. 한 사람은 이십여년의 음악 인생을 “소리 위를 걷는 것”으로 정리한다.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만들어 왔던, 또는들어왔던 소리를 “삼키”고(swallow) 뱉는 작업을 계속한다. 목소리의 색깔도, 음악의 방향도 다르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소리라는 무형의 실체 위에서, 혹은 그 옆에서, 마주쳤다.



소리 위를 걷다 _이은미
이은미의 미니앨범 <소리 위를 걷다>는 요즘 한창 뜨고 있는 타이틀곡 '헤어지는 중입니다'를 포함하여 노래 다섯 곡과 그것들 중 세 곡의 반주(MR)를 담은 보너스 트랙으로 이루어져 있다. 앨범을 다 듣고 나서야 무릎을 쳤다. '이 앨범은 거꾸로 들었어야 하는데….' 사람의 목소리 없이 순수하게 악기로 연주된 잔잔한 소리 위에 그녀가 어떻게 가뿐하게 올라서서 자유로이 걷는지를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 이 미니앨범의 미덕이 아닐까 싶다. 피아노와 현악합주는 서로 모서리가 깎이고 섞여서, 사랑했던 이에 대한 “오래된 기억”처럼 “아른거려”올 때, 그녀는 그 기억 속의 집 앞에서 발걸음을 서성거린다('오래된 기억'). 피아노가 짧은 사분음표로 꽃잎들 하나하나를 연주하면, 그 위에 그녀가 긴 음표로 느리게 걸어가며 “그리운 내 꽃”을 자신의 손으로 잘라낸다('꽃'). 단정하게 울리는 가야금 소리를 담담히 딛고 와서 “결혼 안 하길 잘 했”다며 자신의 배우자가 될 뻔했던 옛 사랑이자 옛 친구와 “술 한 잔” 하자고 이야기한다('결혼 안 하길 잘했지'). 그러나 다시 생각해본다. 삶이든, 노래이든, 그 위를 이토록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걷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이 필요한 것인가.


Swallow_ 조원선
롤러코스터의 여성 보컬이었던 조원선의 첫 번째 솔로 음반은 한마디로 사색적이다. 인트로 다음 곡인 ‘천천히’는 그녀의 음반을 이해하는 작은 빛을 던져준다. "하루는 천천히 일그러져/어제는 겨우 오늘이 되고/오늘은 내일이 되어줄까" 묻는 그녀는 아마도 하루가 끝나는 무렵에 지는 태양을 마주하고 서 있는 듯하다. 이 시간은 "참을 수 없던 모든것 천천히 무뎌지"는 시간인 동시에 "아주 조금씩 조금씩", "잃어버렸던 모든 꿈"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너무 많은 소리를 들"었던 하루는 지는 해처럼 일그러져 삼켜지고 새로운 꿈으로 조금씩 회복되어간다. 그러나 그녀는 '천천히'에서 다룬 이 주제를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삼킨 채로, 매 곡마다 여러 가지 소리로 채워진 그녀의 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낸다. 그리고 마지막 곡에 이르러서야 다시금 "또 하루는 지나가고 빨갛게 하늘이 물드"는 "베란다"에 선다('베란다에서'). 여기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비로소 가벼워진다. 건너편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뚱뚱한 고양이"친구처럼, 소리를 삼키고 뱉는 그녀의 하루는이제 그녀의 소소한 일상이자 반가운 친구로 수용된 셈이다. 

The Beyonders_Stone Jazz
국악화된 재즈, 혹은 재즈화된 국악을 연주하는 크로스오버 그룹 Stone Jazz 의 아홉 번째 앨범. 스탠더드 팝의 베스트 넘버들로 이루어져 있다. 가야금과 해금의 음계는 색동저고리를 벗고 평균율의 옷을 입느라 본래 색깔을 잃는다. 그러나 그들은 새 친구들이 만들어준
리듬감 위에서 신나게 널뛰기를 한다. 이 양면적인 경계에서 익숙한 스탠더드 팝의‘ 멜로디’는 생경하고 아름다운‘ 소리’가 된다. 경계 너머로(beyond) 오가는 것은 늘 위험하고도 즐겁다.

Animation Quartet Jiburi _ Chocolat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웃집 토토로>등 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에 나왔던 주요 테마들을 현악 사중주로 편곡한 앨범이다.
현악사중주단 Chocolat(쇼콜라)가 연주했다. (추상적으로는) 단정하고, 깔끔하고, 우아하다. (비유적으로는) 봄날처럼 편안하다. 클래식 소품들을 모아 놓은 느낌이 들어서, 애니메이션을 굳이 몰라도 충분히 그 느낌에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