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돋보기 1 | 예수님이 한국인에게 물으실 때
나는 소위, 모태신앙이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교회를 다녔고, 이름 같이 ‘사도 요한처럼, 세례 요한처럼’ 훌륭한 사역자가 되기 위해 청운의 꿈을 품고 신학대학에 입학했고, 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그 후에 이런 저런 공부를 더 한 후에 지금은 모교에서 동서양 철학과 신학을 가르치며 배우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오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내가 이 글을 쓰려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기독교적인 학생으로 찍혔던 사연
14년 전, 나는 몇몇 선배들에게 ‘잘 나가다가 인생을 조지려하는(!) 안타까운 후배’ 로 낙인찍힌 적이 있었다. 신학공부 7년을 마친 후,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혀 엉뚱한 전공인 ‘유교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성균관대학교 석사과정에 입학한 것. 그래도 똘똘하고 반듯하다는 소리를 선배들로부터 듣기도 하던 내가 그만 반기독교적인 사건을 저질러 버린 게 된 것이다. 평소에 저를 아끼던 한 선배가 가까이에서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면서 반은 안타까움으로, 반은 경멸하듯이 “요한아, 너 왜 이러니? 정신 차려라. 왜 그따위 전공을 하려고 하냐?” 하며 말했더랬다. 그러나 나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던 그 선배의 말을 뒤로 하고 기어이 나는 유교철학으로 석사를 졸업했고, 박사 과정까지, 그것도 최고 성적으로 진학하고 말았다.
여전히 내가 중보기도의 대상인가?
왜 성균관대학교를 가게 되었을까? 나에게는 학부 시절부터 늘 마음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기독교인이면서 한국 사람인데, 더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인이기 전에 이미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왜 신학교에서는 기독교에 대해서만 가르칠까?’, ‘난 훌륭한 목사가 되고 싶은데, 왜 내가 목회할 대상인 한국 사람들의 사상이나 문화는 신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을까?’ 이 고민은 신학교 7년 동안 늘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단단히 결심하고는,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 최소한 500년을 지배해 온 유교부터 제대로 공부해 보자 한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유교를 공부한 후에 더 반듯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생각한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나의 고백도 더 선명해졌다. 이쯤 되면 한국 문화를 공부해 보겠다던 것이 의미 있는 선택 아니었을까? 돌이켜 보면, 한국 문화를 공부하지 않게 하기 위한 중보 기도가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한국 문화를 더 잘 이해하는 훌륭한 목사가 되게 해달라는 중보기도가 필요한 것 아니었나 싶다.
우리는 한국 사람이다
이제 이 지면을 통해 단군신화도, 한국의 다양한 종교적 전통들에 대한 이야기도 해보려 한다. 이때 중요한 두 가지 태도가 있는데 첫째는, 우리는 기독교인이면서 한국 사람이므로 한국 문화인과 한국 문화에 대해서 열린 마음으로 생각해 보자는 태도이다. 둘째는, 사실 기독교만이 아니라 한국의 다양한 종교적 전통들(예를 들어 무교, 불교, 유교 등)은 여전히 현재의 우리들의 문화에 ‘축적되어 있고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종교적 전통들’(accumulated living religious traditions)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태도이다. 우리나라에 무교가 전래된 것이 약 5천 년, 불교와 유교가 대략 2500년 전이다. 기독교 복음이 전래 된 것은, 천주교까지 넓게 보아도 이제 갓 200년을 넘겼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인의 의식과 한국 문화의 저 깊은 곳에는, 부정하고 싶어도 위와 같은 다양한 종교적 전통이 여전히 우리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예수님이 물으시면 우리는 무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나는 하나님께서 한국 땅에 태어난 한국 사람으로 만드신 특별한 뜻이 있으시고, 그러한 하나님의 배려에 응답하는 아름다운 고백을 하는 것이 바른 태도라 생각한다. 이제 우리에게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함께 고민하며 마련해 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아닐까.
배요한|넉넉한 덩치와 땀 흘리는 운동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목사. 성경책 말고도 논어나 도덕경을 읽으면 마음이 흐뭇해져서 즐겨 읽다보니 어느덧 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장신대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