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추의 커피 이야기 1ㅣ커피를 안다는 것
진정한 앎이란
옛날 직접 목장을 경영하기 전, 일본에서 목장 실습을 할 때는 우유가 어떠한 상태가 되어야 마실 수 있는지 알지 못했다. 몇 달이 지나서야 어떤 우유가 마실 수 있는 우유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좋은 소와 그렇지 못한 소를 구분 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때 목장을 오랫동안 경영한 사람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었다.
“소를 아는데 10년, 목초 재배법을 배우는데 10년, 땅을 아는데 10년, 모두 30년을 보내야만 목장경영에 프로가 될 수 있다.”
그 후 한국에서 직접 목장을 경영하면서 목부(牧夫)를 키울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소를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보니 기술만을 가르쳤다.
커피로 통하는 문
우연히 맺은 커피와의 인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 구주(九州)에 갔을 때, 한 사람을 50년 아는 만큼의 시간을 보냈더니 커피로 통하는 문이 열렸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커피로 통하는 문이 아직 저 멀리에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아직까지 모래시계를 맞춰놓고 커피를 뽑고 있다. 그런 나에게 한 선배는 모래시계는 필요 없다고, 단지 커피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마 나는 시간에 집착하고 있나 보다.
나에게는 선배가 미국에 한 분, 우리나라에 한 분, 일본 동경에 한 분, 구주에 한 분, 그리고 지방도시에 한 분이 있다. 그 중 한 분의 선배님과는 얼굴은 본 적 없지만 커피와 마음으로 만난다. 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그 분은 과거 동경 시내에서 커피숍을 운영했고 지금은 커피와 함께 조용한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다.
커피와의 거리
소를 키우고 우유를 짜면서, 그리고 커피를 뽑으면서 느낀 것은 ‘거리’였다. 너무 가까이 하게 되면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젖소는 젖소의 마음으로, 커피는 커피의 마음으로 볼 때 진정으로 그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닐까? 커피를 뽑는 방법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중요한 것은 결과라고도 하지만 혀끝으로 전해진 한 잔의 커피는 마시는 사람만 알 것이다. 그리고 혀는 그 정직을 알고 있다.
커피의 마음은 자연 속에서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언젠가부터 강렬하게 나의 마음을 끌었다. 지금 나는 인적이 드물고 평온한 바다 가까이에서 살고 있다.
박이추|강릉 바닷가가 보이는 곳에 자리한 ‘카페 보헤미안’의 대표. 우리나라 커피 1세대로 꼽히며, 자가 로스팅의 대가인 ‘3박(朴)1서(徐)’중의 한 명이다. “몸과 마음과 커피가 하나가 될 때 맛있는 커피가 된다.”, “커피가 맛이 없다면 그건 사람의 죄지 커피의 죄가 아니다”라며, 커피 속에서 인생의 진실을 찾는 커피 철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