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2010 01-02 나는 내 나이가 좋다

나는 내 나이가 좋다 ㅣ 딴 짓 하는 삶, 적령기는 없다!

문화선교연구원 2010. 2. 16. 10:30
‘30대, 고학력자 남성이 꿈꾸는 판타지는 무얼까?’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부풀대로 부풀어오른 채 2009년 6월에 발표한 그의 소설<타워>를 펼쳐들었다. 그가 지은 높이 2,408m, 647층 규모의 도시, 빈스토크’에는 5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그 곳에서는 고급 양주가 오가는 경로를 통해 권력 분포 지도가 그려지고, 평주의자(평파)와 수직주의자(직파) 간의 첨예한 이념갈등이 벌어지며, 인기 영화배우로 활동하는 개(네 발 달린)가 권력의 중심이 서있다. 이 형이상학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마치 2009년 한국의 모습을 보는 듯.
글 ·사진 정미희


현실에 뿌리박은 판타지
“요즘 책이 어렵다는 반응들이 간혹 있어요. 광장에 있던 분들은 아무래도 공감하시는 부분이 많은 것 같고,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는 좀 생소하게 읽히는 것 같아요.” 그의 소설이 SF소설로 분류되지만, 철저히 현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소설은 날카로운 풍자로 가득해, 읽고 있노라면 숨이 가빠질 정도로 소설과 현실을 끊임없이 대비하게 된다.  사회과학도 과학이라고 주장하지만, 막상 사회과학 개념을 넣으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저는 사회현상을 과학적으로 많이 다루고 있어요. 이른바 문학을 전공한 사람과 과학을 전공한 사람들 사이, 틈새시장에 있는 것 같아요.”
그는 환상문학웹진<거울>, 월간지<판타스틱> 등 장르문학잡지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오며 통찰력을 갖춘 상상력과 날카로운 풍자, 능청맞은 유머로 주목을 받고 있다. 대학 전공과 직업이 상관 없어진지 오래라지만, 외교학과 석사과정까지 마친 그가 SF작가가 된 이유가 궁금했다. “SF를 쓰는 사람들은 세계관을 잘 세워야 해요. 그래서 제가 했던 공부가 글 쓰는데 굉장히 도움이 됐어요. 외교학은 세계관에 대한 학문이거든요. 외교관이 된다고, 전공 공부가 쓰이는 건 아니에요. 제가 소설을 쓰면서 전공을 제일 잘 살리는 것 같아요.(웃음)” 20년 동안 모범생으로 살아왔던 그에게, 글쓰기는 딴전 피우기용 취미활동이었다. 그러던 2005년, <스마트 D>가‘ 과학기술창작문예 단편 문예’에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7~8년 간 한 달에
소설 한 편씩을 써내는 성실한 다작이 계속 되었다. 그의 말로 하면, 직업으로써의 공부보다 취미였던 글쓰기가 더 잘 풀려갔다.

‘하고 싶다’와 ‘하고 살다’
친구들이 졸업 후 하나 둘 취업을 할 때, 그는 대학원을 다니며 글을 썼다.“ 친구들이 자유롭고 편해 보인다고들 했죠. 저는 ‘넌 왜 안 해?’라고 물었어요. 제가 취직을 안 하고 글을 쓰기로 한 건 그로 인한 마이너스를 감수하고 하는 건데, 친구들은 그런 걸 잘 모르고 막연히 부러워만 했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에요. 답을 정해놓고 내가 정답을 쓰기를 강요하는 사람들 틈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니까요. 자기 적성과는 관계없이 월급만 보고 들어갔을 때 처음에는 옳은 선택이었다고 할 지 모르지만, 결국 평생 자신 만의 답을 찾아가야 하잖아요.”
그 길을 가보지 않았기에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동경은 커져만 가는 것 같다. 그가 20대에 찾은 하고 싶은 일, 공부와 소설쓰기 역시 만만한 길은 아니었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독자들의 반응에 처음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이 사람들이 확 실망해서 떠나버리면 어쩌나 싶은 공포감에 능숙해져야 해요. 그럼에도 이 길을 선택한 건 좋아서죠. 직업으로써의 공부를 포기한 건 유학을 가야하고 학업계획을 짜야하는데, 제가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 학교에서 필요한 공부를 해야 했어요. 서른이나 돼서 하고 싶지 않은 공부를 하며 살고 싶진 않다고 생각했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게 해주면 돈 별로 안 주고 그냥 먹고 살만큼만 딱 줘도 하겠는데(웃음).” 흔히 말하는 성공 법칙 중 ‘하고 싶은 일을 하라’라는 말도 있지만, 현실 속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사이의 격차는 나이가 들수록 커져만 간다. “30대는 뭔가 정리해야 할 나이라고, 적어도 10년 동안 할 직업을 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들 해요. 그런데 실제로 그걸 구했다 싶은 사람들은 직장에서 나오려고 하잖아요. 자기 직장에 대해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고 만족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저 역시도 전업 작가라는게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라 누가 시켜줘야 하는 거니까. 작가 생활을 길게 하려면 직업이 있긴 있어야겠다 싶어요.”

30대, 다음을 생각해야할 책임

소설 <타워>에서 ‘나는 기성세대를 욕하고 비난했다. 열정을 가지고 부딪치고 도전하라는 말에, 열정을 바쳐 일한 만큼 돌려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두었냐고 반문했다’라고 했던 그였지만 이제는 마냥 기성세대를 욕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닌, 책임이 조금씩 늘어가는 나이인 것 같단다. “개인적으로는 30대가 되면서, 나를 둘러싸고 있던 보호막들이 없어지고 뭔가 개인적으로 사회에 나가니까 무섭기도 해요. 제 이름으로 책을 내면서 뭔가 책임져야 하는 부담이 생겼어요. 사회적으로는 20대는 기성세대를 탓하면 되지만, 30대는 마냥 남 탓만 할 수는 없어요. 우리는 앞으로 다음 세대한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요. 다음 세대에게 말을 하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에 대해 생각해요.” 조금 무거운 듯한 그의 고민이 반가운 건 왜였을까. “저는 50대 이후 남들 퇴직하고 불쌍해질 나이에 그 때까지 글을 쓰면 지금 쓰는 것보다 좋은 글이 나올 것 같고, 더 행복해질 것 같아요. 지금은 그 중간 과정을 고민하고 있어요.” 뭘 하면 자신이 즐거운 지 아는 사람의 미래는 명쾌했다. 이제 A4 7장만 쓰면, 첫 장편소설이 마무리된다며 돌아서던 그의 뒷모습에 벌써 기대가 생긴다. 잠시 뒤 그는 어떤 세상을 통해 우리를 보여줄까?

타워  배명훈 | 오멜라스

배명훈의 첫 번째 소설집. 연작소설로, 전 시민이 초고층 빌딩에 사는 도시국가인 '빈스토크'라는 가상의 공간을 배경으로 한 여섯 편의 이야기를 담았다. 정치, 경제, 외교, 전쟁, 연구, 연애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이 19층 비무장지대에서부터 670층 전망대에 이르기까지 빈스토크 곳곳을 샅샅이 훑으며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