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맘·싱글대디가 꿈꾸는 세상 3 | 자발적 싱글맘,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에 이어 <싱글즈>(2003)가 나왔을 때, 난 이미 알아봤다. 세상은 유교적 가부장제에 찌든 우리의 관념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그로부터 다시 세월이 흘러 <가족의 탄생>(2006)이 나오자, 완전히 ‘게임 끝’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도발적인 영화는 가족 구성의 필수 조건이라 할 ‘혈연’을 발랄하게 제거함으로써,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도 희한하게 잘 살더라 식의 새로운 가족문화를 도도히 선언하였던 것이다.
전통적 가부장제에 대한 반란
<싱글즈>에서 룸메이트 남자친구와 술김에 동침하고 임신까지 하게 된 동미(엄정화 역)가 싱글맘이 되기로 선택했을 때, 난 솔직히 그의 당당함이 부럽기 짝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책임져라, 결혼해 달라’며 구질구질하게 매달릴 판이다. 하지만 요즘 여자들은 그런 신파조 결혼관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왜냐하면 과거처럼 남자에게 생계를 의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돈=자유’의 공식은 이 부분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한다. 그렇다면 내가 동미에게서 느낀 부러움은 사실상 그의 경제력이라는 뜻일까? (에고, 이 속물!)
가족이란 자고로 돈 버는 남편에 살림하는 아내, 그리고 그들의 염색체가 절반씩 섞인 자녀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정상 가족’ 내지 ‘규범 가족’의 신화에 균열이 생긴 지 꽤 되었다. 보수적인 사람들 입에서 ‘가족 해체’ 운운하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앞으로 여성의 사회참여가 더 활발해지고, 국가가 보육 및 복지 부문에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된다면, 이른바 가부장적 가족의 이상은 고리타분한 왕년의 추억이 되고 말 것이다. 아버지의 역할이 국가로 이양된 마당에, 스스로 생계벌이 능력을 갖춘 여성이 굳이 가부장적 가족 속으로 들어갈 이유가 뭐란 말인가? 이제 자녀의 성까지도 부계가 아닌 모계를 따를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
가족을 이루는 것은 사랑
이 대목에서 짚고 넘어가자. 분명 해체 조짐이 완연한 건 가부장적 가족이랬다. 부계혈통에 입각하여 ‘남성=생계부양자, 여성=가사전담자’로 못 박고,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시집’갈 것을 강요하는 전통적인 가족관이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는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이는 갖고 싶지만 결혼은 하지 않겠다, 기왕이면 사랑하는 남자의 아이를 낳고 싶지만 혹시라도 그 남자가 마음이 변해 친권 소송을 벌이면 곤란하니 정자은행을 이용 하겠다, 이렇게 마음먹는 여성을 이기적인 가족 해체론자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된다. 그들이 거부하는 것은 여성의 진화 속도에 훨씬 못 미치는 가부장적 가족 제도요 이념이지, 가족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비혼모, 혹은 자발적 싱글맘 현상은 가족 해체가 아니라 ‘가족 다양성’의 일부로 보는 게 타당하리라. 더욱이 그러한 선택을 하는 여성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빵빵한 경제력과 남의 시선 따위를 간단히 능멸해버릴 만큼의 자신감(!)을 겸비한 소수에 국한되지, 여성 일반에 해당되는 사안이 아니기에 과민반응을 보일 필요도 없다고 본다.
아,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찜찜한가 모르겠다.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가 어쩐지 불안하게 여겨진다. 인류가 자연발생적으로 가족을 이루게 된 배경에는 사랑이 있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 사랑하여 몸을 섞고 자식을 만들어 함께 키우며 오순도순 사는 모양새를 일컬어 가족이라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사랑을 믿을 수 없게 된 거다. 아니 가족을 이루는 데 사랑이 아닌 다른 요소들이 너무 많이 개입되어 버린 거다. 싱글맘 현상은 그에 대한 반동인고로, 이참에 우리 안의 사랑부터 회복할 일이 아닌지.
구미정 | 여성과 생명을 화두로 신(神)나게 강의하고 글 쓰고 목회한다.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겸임교수, 여성목회연구소 연구실장, 한국여성신학회 총무로 섬기는 중이다. <이제는 생명의 노래를 불러라>, <생태여성주의와 기독교윤리>, <한글자로 신학하기> 등의 책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