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하늘소와 김치 냉장고

문화선교연구원 2008. 12. 6. 13:43
 

날이 더워 창을 열어 놓고 있자니, 무언가 전등갓에 날아와 탁 소리를 내며 부딪칩니다. 방바닥에 떨어져 버둥거리는 소리가 요란하여, 처음에는 참새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큼지막한 하늘소입니다. 제 몸보다 더 긴 더듬이를 점잖게 늘어뜨리고 등에는 구릿빛으로 번쩍거리는 갑옷을 뒤집어 쓴 채, 방바닥에서 붕붕거리며 맴을 도는 하늘소는 얼핏 한 뼘이나 되어 보입니다.

곤충도감을 가져다 이리저리 뒤져보니, 황동빛을 띤 등껍질이며 십 센티미터를 웃도는 몸집이 영락없는 장수하늘소와 닮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바로 산 너머가 장수하늘소가 자생한다는, 광릉 숲에서 멀지 않은 철마산자락이고, 그것이 붙어산다는 서어나무가 집 주변의 숲에서도 눈에 띠곤 했습니다. 장수하늘소라면 요즘 보기 힘들다는 천연기념물이 아니겠습니까.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바로는, 일본에서는 살아 있는 장수하늘소가 일억 원의 값으로 거래가 된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일억 원이라는 황금빛 욕심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합니다. 다른 집은 다 있다는 김치 냉장고를 사달라고 조르다 못해, 그것이 없으면 김장도 담그지 않겠다고 엄포를 하던 아내의 얼굴도 눈앞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일억 원이면 최신형 김치 냉장고 몇 십 대를 사고도 남습니다.


어려서 나는 유난히 곤충을 좋아했습니다. 언 땅이 풀리고, 산자락에 파릇하니 새싹이 돋기 무섭게 우선 개미부터 잡아다 헌 어항에 넣어 길렀습니다. 미로처럼 뚫린 개미굴 속에서 일개미들이 제 머리보다 큰 흙덩이를 집게로 나르는 모습이며, 여왕개미가 하얀 알을 낳는 것을 온종일 어항에 코를 들이밀고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아카시아 꽃이 하얗게 필 무렵이면 아침부터 메뚜기를 잡으러 다니느라 아침부터 이슬에 발목을 적시곤 했습니다. 여름이면 방아깨비를 잡아다 다리에 실을 묶어 마당의 분꽃에 매어 놓기도 했습니다. 여치를 잡아다 밀짚으로 엮은 우리에 담아 문설주에 매달아 놓고, 가을이면 귀뚜라미를 잡아다 필통에 넣어 베개 머리에 두고는 방울이 굴러가는 소리를 듣기를 즐겼습니다.

내 장난감이 된 것은 그뿐이 아닙니다. 갈퀴 같은 앞발로 두더지보다 땅을 더 잘 파던 땅강아지며, 꽁무니에 짚을 꽂아 시집을 보내던 고추잠자리며, 참나무 등걸에 다닥다닥 들러붙어 나를 황홀하게 했던 사슴벌레며, 온갖 풍뎅이와, 산길을 걸을 때마다 어디선가 나타나 길을 일러 주던 알록달록 화장을 한 비단길앞잡이, 쇠똥을 먹음직스러운 수수경단처럼 빚던 쇠똥구리며, 개구리밥이 잔뜩 덮인 웅덩이에서 온종일 맴을 돌던 방개까지 철마다 번갈아 가며 나타나 나를 즐겁게 했습니다.

곤충만 좋아했던 것도 아닙니다. 가시나무 등걸에서 꺼낸 때까치 새끼부터 잡으면 꼬리를 끊고 달아나던 도마뱀과, 흰 셔츠를 흔들면 날아와 붙던 박쥐에 이르기까지 들에서 자라는 모든 것들이 친구이고, 장난감이었습니다. 한때는 개구리를 잡아 강아지풀 줄기로 코뚜레를 꿰어 어디를 가나 소처럼 끌고 다니기도 했고, 털도 나지 않은 들쥐 새끼들을 셔츠 속에 넣고 학교에 데리고 가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준 적도 있습니다.

내가 그런 생명들을 붙잡아오면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잠든 사이에 그것들을 숲에다 풀어 주시곤 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게, “내 메뚜기? 내 개구리 어디 갔어요?” 라고 찾으면 할아버지께서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르치셨습니다. 방아깨비를 묶어 놓았던 분꽃 줄거리에는 실에 묶인 방아깨비 다리 한 짝만이 덜렁 달려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개구리나 도마뱀을 상상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곤 했습니다.


나는 방안에 날아든 하늘소를 들여다보며, 오랜만에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에 흠뻑 젖었습니다. 하늘소를 고추장 빈 통에 넣고 오이며, 사과 조각을 먹이로 넣어 주었습니다. 평소에 벌레를 무서워하던 아이도 신기한 듯, 이 장갑차처럼 우직한 갑충에 넋을 뺏기고 들여다봅니다. 일억이라는 소리에 아이는 금세 하늘소를 길러 새끼를 열 마리쯤 낳게 하잡니다. 욕심이 욕심을 낳습니다.

불을 끄고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무언가 찍찍거리며 애절하게 우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를 가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애절하게 호소하는 울음소리 같기도 합니다. 잠에서 깨어 주변을 살펴보니 그 소리는 하늘소가 든 통에서 들려왔습니다. 불을 켜고 들여다보니, 쥐들도 잠을 잘 만큼 깊은 밤중에 하늘소가 긴 다리를 허우적거리며 직각으로 선 플라스틱 고추장통 벽에 달라붙어 기어오르려 애쓰지만 미끄러져 굴러 떨어질 뿐입니다. 그때마다 하늘소는 하늘을 바라보며 소처럼 애처롭게 울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불현듯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님의 말씀이 머리를 스칩니다.

“그것도 살려고 버둥거리는데 살려주려무나.”

마음이 흔들리긴 했지만 하늘소를 길러보겠다던 아이의 한껏 들뜬 얼굴과, 일억 원의 돈다발과 김치 냉장고와 기뻐하는 아내의 모습이 그 위를 어지럽게 덮쳤습니다. 하늘소는 잠시도 잠을 안자고 밤새도록 울어대는 바람에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이리저리 뒤척이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삑삑거리며 울어대는 하늘소를 들고 마당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하늘엔 푸른 별들이 꿈꾸듯 몽롱이 빛나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고추장 통 안에서 허우적거리는 하늘소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하늘로 돌려보내기로 했습니다. 긴 더듬이로 손등을 더듬던 하늘소는 구릿빛 등껍질을 벗겨내고 그 안에 숨겼던 날개를 활짝 펼쳤습니다. 그리고는 꿀풀 향내가 풍기는 여름밤의 하늘로 꿈처럼 날아갔습니다. 일억 원이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김치냉장고도 함께.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고추장 통을 들여다 본 아이가 놀라서 외쳤습니다. “하늘소가 없어졌어요.” 나는 태연히 예전의 내 할아버지께서 하신 것처럼 가만히 손가락으로 하늘만 가리켰습니다.


한참 뒤에 곤충에 조예가 깊은 분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내가 만난 하늘소는 장수하늘소가 아닐 것이라고 하더군요. 장수하늘소는 그보다 더 크고, 우람하답니다. 실제로 장수하늘소를 보았다는 신고가 한 해에도 수십 건이 들어오는데, 아직까지 장수하늘소로 밝혀진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것이 장수하늘소이든, 그저 흔한 졸병하늘소이든, 제 이름대로 하늘소는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아직도 우리 집에는 김치 냉장고가 없어 김장철마다 마당에 독을 묻을 구덩이를 파느라 땀을 흘리곤 합니다. 비록 김치 냉장고는 그렇게 하늘로 날아갔지만, 나는 여름밤만 되면 내가 날려 보낸 하늘소가 푸른 밤하늘 한가운데로 소처럼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는 걸 꿈꾸듯 바라보길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시백남양주 수동에서 텃밭을 일구며 세 마리 강아지들과 열 마리의 닭과 한 마리의 거위와 주경야독하며 ‘시골로 가는 마지막 기차’라는 홈페이지를 일기 적듯 꾸리고 있는 소설가이다. 주요 저서로는 <시골은 즐겁다><890만번 주사위 던지기>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