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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먹을거리, 대안은 없을까

문화선교연구원 2008. 12. 15. 17:10


연초에 국제적으로 떠들썩하게 한 일본과 중국 사이에 농약 만두 파동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생쥐가 들어간 새우깡과 수입 냉동 유기농 야채로 인하여 먹을거리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높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먹을거리의 안전성과 신뢰성의 문제는 요즈음의 일만도 아니고, 우리나라에만 한정된 일만도 아니다. 늘 그렇듯이 한번 떠들썩하게 떠들고 나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잊어버리는 것이 이 세상의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러한 일은 또 다시 일어난다. 왜 그런 것일까?


누군지 모르는 생산자와 소비자

필자는 그 근본 원인을 생산자가 누군지, 소비자가 누군지 알지 못하는 상품 시장 경제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생산자는 누가 먹는 지를 전혀 모른 채 먹을거리를 상품으로 생산하고 있고, 소비자는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그것을 파는 곳의 브랜드만 보고 소비를 하고 있다. 그 속에서는 생산하는 사람과 소비하는 사람의 인격, 즉 수고와 고마움이 들어갈 틈이 없다. 시장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먹을거리는 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어떤 여타 상품과는 달리 인간의 건강과 생명과 관계가 있는 재화이기 때문에 상품이되, 단순한 상품의 가치를 넘는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먹을거리를 단지 이윤의 창출과 외형적인 겉모습 그리고 편리성을 최고의 가치로 하는 시장 경제에만 맡겨 놓을 수만은 없다.

이것은 우리의 밥상과 건강을, 심지어 생산자들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문제들이다. 문제들 대부분은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것을 찾고 편리성만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의 기호에 영합해야지만 생존할 수 있는 시장의 경제적 논리에 따라 발생한다. 더구나 소비자와 생산자의 인격적 관계가 사상된 곳에서는 그러한 첨가물의 투입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인격적 관계

그리하여 먹을거리에 있어서의 이러한 상품 시장 경제의 문제를 극복하여 생산자와 소비자가 얼굴이 보이는 관계, 즉 소비자는 누가 어떠한 수고를 하여 생산하는지를 알고, 생산자는 내가 생산하는 것을 어떠한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을 아는 인격적 관계를 만들자는 운동이 소비자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 운동이다. 즉 생협은 소비자들이 유통업체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협동을 통하여 대표자와 실무자를 선임하여 누가 어떻게 생산하는지를 알고, 또 거기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안전한 먹을거리를 공동으로 구입하는 운동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 인격적 관계가 있다. 식품의 안전에서 정작으로 중요한 것은 식품의 겉면에 표시된 관계와 인격이 사상된 유기농산물 등의 표기나 사진이나 식품의 표기가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인격적 관계인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이윤을 넘어선 서로에 대한 형제애적인 관심과 사랑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생활협동조합은 시장 경제와 운동을 넘어선 그리스도인들의 또 다른 삶의 선교의 장이다. 영국에서 로버트 오웬이라는 기독교 사회 운동가에 의해서 생활 협동조합이 씨가 뿌려지고,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코 목사에 의해서 일본에서 가장 큰 생협들로 자라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또한 무엇보다도 그 생협의 이념이 ‘이윤과 경제’가 아니라 ‘사랑과 협동’인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일반 생협들은 협동보다는 생협들 간의 경쟁에 골몰하고 있으며, 이제 막 시작하는 기독교계 생협들은 너무나 작은 규모이다.

이제 시장이라는, 인격이 사상된 제도에 먹을거리를 맡기고, 문제가 일어나면 호들갑을 떨면서 믿을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할 것이 아니라, 우리 함께 사랑과 믿음의 경제, 인격의 경제를 손잡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김재일|생산자는 자신의 노동의 산물에 대한 만족한 대가를 얻고, 소비자는 안심하고 맛난 먹거리를 즐기는 행복한 세상을 위해 대한예수교장로회 생활협동조합(www.yj-coop.or.kr)을 열심히 섬기시는 멋쟁이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