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봬도, 맛있다!ㅣ커피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한 여름에 태어나기로 약속을 했던 아이는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 이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엄마는 아이가 까만색 일까봐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하얀 얼굴에 발그스레한 볼을 가진 조금 작은 아기였습니다. 그녀가 이런 엉뚱한 걱정을 했던 이유는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입니다. 커피광인 그녀는 아기와 가장 가깝게 지내는 동안 나름대로 절제를 했지만 그래도 커피를 끊기가 너무 어려워서 임산부로서 치사량에 가까운 양의 커피를 마셨습니다. 아기는 걱정했던 커피의 후유증은 없는 듯 잘 자라주었지만, 다섯 살 전후부터 어른들의 커피 잔을 몰래 홀짝이며 강한 집착을 보이기 시작했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카페인의 후예인 듯 잠도 잘 자지 않았습니다.
고백하건데 커피는 저의 가장 오래된 기호품이며 취향입니다. 제가 경험한 첫 번째 커피는 엄마의 따뜻한 뱃속에서 함께 나누어 마신 커피입니다. 흐린 가을 오후에 연하게 뽑아낸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 편집이 되지 않은 오래된 기억들이 떠오르는 아련한 기분이 듭니다. 저는 이 느낌을 엄마와 함께 마신 첫 번째 커피의 여운이라고 상상합니다. 어머니와 쌍벽을 이루는 커피광인 아버지 덕분에 우리 집은 쌀은 떨어져도 커피는 늘 떨어지지 않습니다. 인스턴트커피와 신제품 커피믹스, 갈아놓은 원두커피와 커피콩까지 골고루 갖추어놓고 사는, 커피에 관한 세 식구의 취향은 넓고도 깊습니다.
지금 떠올려보면, 백 년 전처럼 아득한, 실패한 연애의 끝에는 세상에서 가장 쓴 커피가 나와 함께 묵묵히 있어주었습니다. 일 때문에 떠났던 여행의 마지막 날 오후, 일본의 어느 평화로운 시골마을 뒷골목에서 만났던 할아버지 바리스타의 고소하고 달콤한 커피는 산들바람을 마시는 것 같은 위로의 맛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완성했던 가장 긴 이야기의 원고에 마침표를 찍었던 고된 아침, 밤 새 글을 쓴 탓에 떨리는 손으로 굳게 잡았던 머그컵 안에는 터널의 끝처럼 환한 빛이 가득했습니다.
하늘의 햇빛과 땅의 열기, 커피콩을 고르고 볶은 사람의 손길에 실린 정성과 집중력이 그 작고 까만 점 안에서 반짝입니다. 커피는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커피가 들어간 쌀 팬케이크>
■ 재료(다섯 조각 분량)
불린 쌀(다섯 큰 술 정도), 달걀(1개), 소금, 설탕, 버터 약간, 우유(100ml 내외), 메이플 시럽(꿀이나 잼, 올리고당 등), 블랙커피원액(3분의 1잔, 원두커피를 진하게 뽑거나 인스턴트커피를 블랙으로 타서 만든다), 호두와 해바라기씨 등의 견과류
■ 요리방법
1. 불린 쌀을 믹서기에 넣고 간다.
2. 1에 계란과 약간의 우유, 커피원액을 넣고 잘 섞는다(너무 묽거나 되지 않도록 적당한 양의 우유와 커피원액을 넣는다).
3. 2에 입맛에 따라 약간의 소금과 설탕으로 간을 맞추어 알맞게 반죽을 한다(거품기나 커다란 숟가락으로 저어서 편안하게 반죽하는 것이 간편하다).
4. 프라이팬을 불에 올려놓고 약간의 버터나 포도씨유 등을 넣은 후, 3의 반죽을 알맞은 크기로 동그랗게 올려놓아 잘 익을 때까지 부친다.
5. 접시에 완성된 팬케이크 몇 장을 보기 좋게 겹쳐서 놓고 시럽을 뿌린 후에 잘게 부순 호두와 해바라기 씨 등을 곁들이는 마무리로 완성한다.
송유경|이야기와 사진, 요리와 노래 만들기를 좋아하며 이와 관련된 다양한 작업들을 하고 있다. 작가주의 애니메이션 배급을 하며 책을 만드는 회사인 라바에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