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많이 불리는 노래 중에 ‘성령이 오셨네’라는 곡이 있다.

허무한 시절 지날 때 깊은 한숨 내 쉴 때
그런 풍경 보시며 탄식하는 분 있네
고아같이 너희를 버려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영원히 함께 하리라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 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억눌린 자 갇힌 자 자유함이 없는 자
피난처가 되시는 성령님 계시네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참 자유가 있다네
진리의 영이신 성령이 오셨네

얼핏 제목만 들었을 때는 어린 시절 부흥회 때 열렬히 손뼉을 치며 부르던 찬송가가 생각이 나고, 실제로 바로 그 찬송 ‘이 기쁜 소식을’의 가사를 일부 인용했다. 그러나 음악 분위기는 그 곡과는 사뭇 다른 세련미로 젊은이들에게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게 하는 노래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는 바로 그 지점에 물음표를 던지고자 한다. 과연 이 노래가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는 노래로 불리는 것이 온당한가 말이다. 굳이 성령론의 예민한 논제들을 거론하며, 소위 말하는 중생, 성령세례, 성령은사, 성령충만 등을 단계로 구분하느냐 마느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미 구원받은 순간부터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인격적인 성령님을 예배 때마다 “오쉬옵쏘서~” 부르짖는 건 어쩐지 부자연스럽지 않은가? 구원파 류의 이단들이 매일 영접기도를 새롭게 해야 한다는 어리석은 믿음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더란 거다. 특히 수련회나 캠프, 부흥회 같은 연례행사 때면 성령을 ‘갈구’하는 이런 후끈한 분위기는 극에 다다른다. 그리고 그 때마다 이 노래는 억울하게(?) 오도된 채로 사람들을 울리고 있다. 원작자의 의도를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인용한 찬송가의 가사를 찬찬히 살펴보면 이 노래는 성령세례, 성령은사, 성령충만 등과는 거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1.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큰 환난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주 믿는 성도들 다 전할 소식은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이 기쁜 소식을 온 세상 전하세 성령이 오셨네

2. 만왕의 왕께서 저 사로 잡힌 자
다 구원하시고 참 자유 주셨네
승리의 노래가 온 성에 들리니 성령이 오셨네

3. 한없는 사랑과 그 크신 은혜를
늘 의심 하면서 안 믿는 자에게
내 작은 입으로 곧 증거 하리니 성령이 오셨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찬송가는 ‘성령의 임재’로 대표되는 ‘구원의 감격’을 노래하며, 세상을 향해 복음의 증거와 선포로 ‘성령이 오셨네’를 외치겠다는 결단의 표현이다. 그래서 ‘오소서’가 아니라 ‘오셨네!!!’다. 비교를 통해 이해를 돕고자 찬송가 한 곡을 더 소개한다.

1. 내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길 행함은 주의 팔이 나를 안보함이요
내가 주의 큰 복을 받는 참된 비결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2. 전에 죄에 빠져서 평안함이 없을 때 예수 십자가의 공로 힘입어
그 발아래 엎드려 참된 평화 얻음은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3. 세상 모든 정욕과 나의 모든 욕망은 십자가에 이미 못을 박았네
어둔 밤이 지나고 무거운 짐 벗으니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이 노래 역시 ‘불 받아라’ 류의 ‘성령에의 갈구’로 부르는 많은 사람들의 무지한 의도와는 애초에 거리가 있다.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명쾌한 가사는 이미 구원받은 성도가 일상의 삶 속에서 성령과의 동행을 감사하며 노래하는 것이다. 다시 한 번 확인하자면, 그래서 ‘오소서’가 아니라 ‘계시네!!!’다.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향해 자주 하시던 표현은 ‘오라’ 혹은 ‘거하라’다. 구원이 필요한 죄인을 향해서는 ‘내게로 오라’고 하셨지만, 이미 믿는 신자에게는 ‘내 안에 거하라’고 하셨다.

진리를 분별하는 지혜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서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다. 제임스 맥콘기의 표현을 빌자면, 이미 성령을 받은 사람이라면 성령받기를 위해 기도하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미 임재 해 계신 그 분을 찬양하고 그 분께 순종하고 헌신하는 태도로 마땅히 바뀌어야 한다. 음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감성적인 면이 부각될 수밖에 없는 경배와 찬양 예배의 특성상 성령의 역사나 강조는 일면 당연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말씀과 성령의 균형감을 상실한 모습들은 매우 위태해 보인다. 근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더더욱(혹은 공교롭게도) 은사주의, 신비주의적 경향이 강한 예배모임들이 주목받는 경향들이 있는데,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진리를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찬양사역, 예배사역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사역에서 성령의 은사나 역사 등을 기대하는 교회들도 종종 만나게 되는데, 그 때마다 곤란함을 느낀다. 오히려 나의 성령론은 아주 보수적인 쪽에 가깝다. ‘은사 중지론’까지는 아니더라도 성령의 ‘은사’보다는 성령의 ‘열매’에 더 관심이 많다. 내가 맺어가기를 원하는 성령의 열매란 ‘성령이 오셨네’의 기쁨과 감격으로, ‘성령이 계시네’의 삶을 살며, 다시 세상을 향해 ‘성령이 오셨네’를 외쳐 전하는 것이다. 부디 이 이름다운 노래 ‘성령이 오셨네’가 한국 교회 곳곳에 올바른 성령의 열매를 익어가게 하는 좋은 거름이 되어주길 기도하고 또 바란다.

민호기|소망의 바다 사역과 함께 찬미선교단 리더로, 대신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로, 오늘도 세상과 소통하는 음악을 위해 밤새워 고민한다.



Posted by 문화선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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